매화를 닮은 물풀, 매화마름
[한동욱의 시민생태이야기 에코톡]
물 안팎 적응 잘 하는 식물계 능력자
물속 잎은 어린 물고기 키우는 요람
먹잇감 찾아온 저어새와 기막힌 동거
[고양신문] 말이라 불리는 물풀은 물속에 이리저리 흐느적거리면서 미끌거리고 느글느글한 존재들이다. 칙칙한 물속에 물풀이 많으면 물귀신이 산다고들 하기도 했다. 그러나 개중에는 매화라는 이름이 붙은 아름다운 식물도 있다. 바로 '매화마름이라는 담수 수생식물이다. 심지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매화(梅花)라는 순백의 아름다운 이름이 붙은 걸로 보아 꽃이 참 아름다울 것이라 미루어 짐작된다. 실제로 꽃은 ‘물매화’를 닮았고, 잎은 ‘붕어마름’을 닮았다. 실제로는 물매화 꽃보다는 작고 꽃잎에 노란색도 좀 빠졌지만 그럭저럭 닮은 꼴이다. 붕어마름 잎과도 비교하자면 물속 잎은 영락없이 닮았다. 다른 이름으로 매화마름을 ‘미나리마름’, ‘미나리말’이라 부르기도 했다.
매화마름 잎은 미나리와 완전히 다르게 생겼지만 아마도 생존전략이 같아서 붙여진 이름일 게다. 물 밖에 사는 돌미나리처럼 매화마름도 물 밖에 나오면 잎이 단단해지고 굵어지는 성질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매화마름의 특성을 보면 식물계의 양서류라는 별명이 나올 만하다. 성질이 전혀 다른 물속 잎과 물밖 잎, 두 종류의 생활형을 가지고 있고, 물이 많은 환경과 적은 환경에 잘 적응하니 능력자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유전자 연구를 하는 학자들은 매화마름 같은 두 종류의 잎을 가진 식물이 어떻게 유전자를 조절하는지 일찌감치 연구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매화마름은 오늘날 멸종위기에 처했다. 왜 그럴까.
매화마름 고향은 영등포
매화마름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기록된 것은 1960년대 영등포 수로이다. 그 뒤 서해안을 따라서 주로 해안가 논과 농수로에서 관찰되었다. 얼마 전에 서울 토박이인 박수택 환경기자는 1971~72년 무렵 가리봉오거리 논에서 봤다고 귀뜸해 주었다. 그즈음이면 서울의 영등포 일대는 물이 자연스럽게 들고 나는 한강하구역으로 지금의 장항습지와 비슷했을 것이다. 한강을 호수처럼 만든 물막이공사는 1985년 12월에 착공되어 88년 6월에서야 준공되었기 때문이다. 자생지였던 영등포나 가리봉오거리 하천습지는 호수화되면서 불과 30년 남짓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자연생태계 내에서 30년 정도 발견되지 않으면 멸종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그렇게 매화마름은 멸종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다가 90년대 이후 식물분류학자인 현진오박사가 강화도 초지리 논주변에서 매화마름을 발견하여 학계에 보고하였다. 이후 김포 용강리 논에서도 발견되어 한강하구의 물이 자연스럽게 넘나들던 때에는 강화도에서 김포, 고양, 영등포까지 매화마름 생육지가 이어져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고양시에서 매화마름군락이나 과거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이런 과학적 결과를 바탕으로 장항습지 무논에 매화마름을 복원하고 있다.
물고기들의 안성맞춤 산란터
매화마름이 복원된 장항습지 무논에는 생명이 넘쳐났다. 특히 메기, 잉어, 참붕어, 민물검정망둑, 꾹저구, 미꾸리, 미꾸라지같은 어린 물고기들과 작고 여린 대륙송사리들이 많았다. 매화마름의 물속 잎은 가늘고 가벼워 물속에서는 넓게 펴지며 빽빽하게 자란다. 이 잎은 알을 물풀에 붙이는 습성이 있는 물고기들의 산란터가 된다. 갓 부화한 치어들이나 몸집이 작은 물고기들은 매화마름이 피난처다. 천적의 눈을 피해 숨을 수 있고 먹이가 풍부하니 살이터로 안성맞춤이다.
매화마름과 같은 침수식물은 어린 물고기를 키우는 성육장(nursery ground)인 것이다. 비단 물고기뿐만 아니라 이곳에는 다양한 수서곤충과 양서류들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이런 먹잇감을 물새들이 놓칠 리가 있겠는가. 백로와 왜가리는 물론 저어새까지 찾아오는 것이다. 이것이 멸종위기종 I급 저어새와 멸종위기종 II급 매화마름이 같은 논에서 동거하는 이유다.
동북아 환경협력 꿈꾸며…
매화마름의 학명은 라눈큘러스 트리코필루스 카츄센시스(Ranunculus trichophyllus var. kadzusensis)다. 예전에는 다른 학명도 썼지만, 지금은 이 학명으로 통일되었는데 이것은 매화마름이 유럽원산 매화마름의 변종이란 뜻이다. 유럽원산이 동북아로 건너오면서 변이를 일으켰으며 그 와중에 여러 종으로 분화해 나갔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때 우리나라에 두 종류의 매화마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었지만 그 중 ‘민매화마름’이라는 종은 매화마름에 통합되어 한반도에는 1종이 자생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종을 포함해서 일본에는 대여섯종이 분포하고, 중국과 러시아에는 가까운 종들이 분포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 매화마름을 찾아서 여러 국가를 돌아 다닌 적이 있었다. 일본에는 동경 가까이 미시마에 바아카모(バイカモ, 梅花藻)라고 쓰는 매화마름이 있었고, 동북쪽 고산의 야마가타 수로에도 매화마름류가 살고 있었다. 중국 운남성 리장 근처 고산지대인 옥룡설산 입구에서 우연히 매화마름류를 만나기도 했고, 러시아 바이칼호수에서 알혼섬으로 넘어가는 배터 근처 습지에서도 예쁜 매화마름류를 만났다. 그런가 하면 내몽골의 후룬베이얼의 초원에서도 매화마름류와 만났다. 그야말로 한·중·일·러·몽의 과학자들이 공동으로 연구하기에 매화마름은 충분히 매력적인 식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북한의 매화마름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다. 정치적인 문제를 떠나서 남북한의 매화마름을 표본으로나마 교환하여 협력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강하구가 남북 공동 람사르습지로 지정된다면, 남북한의 시민과학자들이 손잡고 매화마름과 그 생육지인 습지를 함께 방문하고 서로 모니터링 결과도 발표하는 그런 날이 오기를 소망하고 또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