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복지'넘어 사람친화적 '이동권' 확보로
[기고]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고양신문] 장애인 이동권 논쟁으로 지난 몇 개월간 시끌시끌하다. 특히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실제 ‘불편’을 경험하면서 화가 나기도 했을 것이다. “하필 왜 출근 시간에, 꼭 저렇게 과격해야 하나, 자기들만 힘든가?” 등등 많은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멈춘 지하철 안에서 지각을 걱정하면서 부아가 치밀어 오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일도 있다.
유아차(유모차)를 끌고서 조금도 양보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엘리베이터를 몇 번씩 그냥 보내야 한다. 지하 주차장 들어가는 입구에 버젓이 주차해 놓은 승용차 때문에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기다리기도 한다. ‘빨리빨리’와 자동차 중심 사고에 길들여진 우리 생활을 보면서 내린 결론이다. 장애인 이동권은 장애인복지에 머물지 않는다.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해 주면 장애인복지에 멈추지 않는다. 우리 모두의 이동권, 우리가 길거리에 나섰을 때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는 권리의 시작이다.
한국사회가 압축적 성장을 하면서 놓치고 잃어버린 게 있다. 비용-편익 사고 틀에 갇혀서 사람을 놓쳤다. 그렇게 누적된 결과를 2014년 세월호에서 보았지만 그 후 그렇게 변한 것이 없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길거리는 결코 사람친화적이지 않다. 자동차 중심, 더 큰 자동차 중심이면서 사람에게는 적대적이다. 학교 주변을 중심으로 여러가지 안전장치를 해놓았지만 그건 그냥 사람과 자동차를 분리해 놓았을 뿐 사람이 어떻게 쾌적하고 안전하게 걸어다닐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없다. 운전대를 잡은 순간 사람은 사라지고 자동차만 남는다.
횡단보도 앞에 섰을 때 저기 멀리서 차가 오면 어떻게들 하시는가? 그 차가 지나가는 느낌이 들기 전까지 그냥 스마트폰에 시선을 집중한다. 자동차가 사람에게 먼저 가라고 양보하는 경험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역시 ‘행여 사람이 먼저 지나갈까봐’ 가능한 서둘러서 횡단보도를 지나간다. 보행자로서 내 권리를 행사해보겠다고 먼저 횡단보도 위에 발을 딛고 자동차 쪽을 쳐다보면 그래도 마지못해(?) 자동차가 서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나는 저 사람을 피해 갈 수 있어.”라는 자신감(!)을 가진 운전자를 더 많이 본다. 그런 운전자들이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휠체어를 보고 정지할 리 없다. 휠체어를 보면 무조건 정지하라는 차원에서 이동권 확보 논쟁이 시작된다면 언젠가 모든 사람들이 자동차보다 우선 횡단보도를 통과할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다.
장애인을 ‘위한’ 저상버스 도입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저상버스를 도입하면 장애인보다 먼저 유아차를 끄는 부모들, 힘든 언덕길을 잠시 피해 올라가길 원하는 자전거 이용자들이 더 혜택을 보게 될 것이다. 휠체어, 유아차, 자전거를 늘 싣고 다니는 버스를 운전자가 슝슝하면서 몰 수도 없다. 모두에게 더 안전한 대중교통 환경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장애인 콜택시에 눈을 돌려 보자. 배기가스ㆍ미세먼지가 나오는 자동차 뒷문으로 휠체어를 싣고 장애인을 태운다. 엔진공회전 때문이다. 여러 경우를 봤지만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엔진을 끄는 경우는 한번도(!) 보지 못했다. 과태료 부과 대상인 엔진공회전을 장애인 교통수단을 우선으로 강력하게 단속한다면? 논쟁이 일 것이다. 이 소식이 점점 알려지게 되면 학교 앞에서 아이를 내려주고 태우는 부모들이 엔진공회전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주위 사람들 아랑곳 하지 않고 배기가스ㆍ미세먼지를 선사하는 행위를 멈출 것이다.
이동권 보장은 장애인복지를 넘어서는 요구다. 사람친화적 이동권 확보로 가는 길이다. 붐비는 지하철 안에 유아차와 함께 있는 어떤 엄마에게 보냈던 주변 사람들의 불편한 표정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는 선진국은 없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 덕에 사람친화적 길거리가 우리의 일상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