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현 칼럼] 김정은의 메시지

2022-05-05     백장현 한신대 초빙교수

[고양신문] 근래 북한의 도발이 격해지고 있다. 단거리 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에 이어 지난 3월에는 급기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은 한미가 설정한 레드 라인을 넘은 것이다. 한국 합참은 즉각 대응 미사일을 동해로 발사해 발사 원점과 지휘·지원 시설을 정밀 타격할 수 있음을 과시하였다. 다음 날에는 엘리펀트워크 훈련이란 이름으로 최첨단 전투기인 F-35A 28대를 동원해 위력 시위를 벌였다. 

또한 북한은 4월 25일 인민군 창건 90주년을 맞아 대규모 열병식을 거행하였다. 열병식은 대구경 장사정포를 비롯해 단거리 미사일, 중장거리 미사일, 잠수함발사미사일 등 미사일 종합세트를 선보이며 군사력을 과시하였다. 김정은은 연설에서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돼 있을 수는 없다”면서 “국가 근본이익 침탈 시도가 있을 때도 핵무기 사용이 가능하다”고 발언했다. 다음 날 북한군 장성들을 노동당 본부청사로 불러 격려하는 자리에서도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북한이 4월 25일 인민군 창건 90주년을 기념해 진행한 대규모 열병식 모습.

북한의 벼랑끝 전술

북한은 왜 이렇게 강경해지는 걸까?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올해 초 이미 예상되었다. 1월에 열렸던 노동당 제8기 제6차 정치국회의에서 “선결적으로 취했던 신뢰구축 조치를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을 재가동”할 것을 결의했던 것이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에 대해 한미 측은 김정은이 스스로 했던 약속을 위반했다고 맹비난했지만,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약속 위반이 아니다. 4년 전 노동당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김정은이 했던 발언은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추가 핵시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등 전략 도발을 재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미국 측의 무성의로 대화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북한은 작년 2월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계속된 대화 요청에 일체 응하지 않고 있다. 이는 북한이 거듭해 요구했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에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아무런 반응 없이 ‘조건 없는 대화’만 반복하고 있어 대화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을 고통에 빠뜨리고 있는 경제 제재에 대해 성의 있는 언급이 없다는 것은 북한을 진지한 협상 상대로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올 초 노동당 정치국 회의의 결의는 북미 간 타결 전망도 보이지 않는 실무협상으로 시간을 허비하느니 차라리 벼랑끝 전술로 한미의 태도를 바꾸는 게 더 낫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화전 양면 전술      

한편 북한은 지난 4월 22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북 정상 간 친서교환 사실과 친서 내용을 공개했다. 김정은은 친서에서 “북남 수뇌들이 역사적인 공동선언들을 발표하고 온 민족에게 앞날에 대한 희망을 안겨주었다”고 밝혔다. 또한 퇴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그간의 “고뇌와 노고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고 했는데, 조선중앙통신은 “북남 수뇌분들의 친서 교환은 깊은 신뢰심의 표시”라고 논평했다. 이건 갑자기 무슨 말인가? 강경한 군사적 대치 국면에서 북한은 왜 지난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를 강조하는 걸까? 북한이 아직 대화의 문을 닫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이다. 전형적인 화전(和戰) 양면전술인 것이다. 특히 5월 21일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을 겨냥한 메시지이다.  

북한의 최우선 과제는 파탄에 빠진 경제를 회생시키는 것이다. 김정은은 집권 후 경제 회복을 위해 지난 10여 년 동안 생산 현장에 자율권을 주는 독자경영제, 포전제 등 개혁 조치를 도입했고 원산 관광지구 건설, 삼지연 시범농업지구 사업 등을 추진했다. 또한 평양 등에 종합병원을 짓고 대규모 주택단지도 건설하는 등 민생에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경제는 나이지지 않았다. 전력·기계·화학공업 등 기간산업이 붕괴된 상태에서 농업·경공업 등 민생 분야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 회생을 위해서는 기간산업의 재건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대규모 외자 도입이 불가피하다. 외자 도입에는 IMF, ADB(아시아개발은행) 등의 참여가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서는 북미 관계 정상화가 선결돼야 한다. 김정은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국익과 실용에 의한 외교

한미정상회담이 보름 후에 열린다. 우리에게 한미정상회담은 언제나 중요했지만 이번에는 더욱 각별하다. 한미 정상 간 대화의 결론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향후 한반도가 갈등과 긴장의 상시화로 갈지, 아니면 평화 속 대화의 길로 갈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에서 한미 정상은 북한과의 대화 메시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북한이 요구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만약 이번 기회를 잡지 못하면 앞으로 한반도는 상당 기간 갈등과 긴장의 상시화로 갈 가능성이 높다. 

백장현 한신대 초빙교수

윤석열 당선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미정상회담이 어떻게 될지가 오롯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의 국력 신장으로 미국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존중하고 있다. 윤석열 당선자는 지난 3일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서 국정운영원칙으로 국익·실용·공정·상식을 제시하였다. 부디 발표대로 국익과 실용에 기반한 외교·안보를 기대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 현실에서 최우선 국익은 평화 유지이고, 남북관계에서 실용은 북한을 ‘보고 싶은 대로’가 아닌, ‘있는 그대로’ 보면서 해법을 찾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