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과 고마움

송원석 칼럼 [내일은 방학]

2022-06-10     송원석 문산고 교사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이 화제다. 
“교육부는 과학기술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할 때만 의미가 있다. 그런 혁신을 수행하지 않으면 교육부가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교육에 대한 대통령의 철학을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도체 인력 부족에서 시작된 발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통령에게 교육은 산업인재 양성이다. 노태우 정권 시절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나에겐 아주 익숙한 교육 목표다.     

새롭게 경기 교육감이 된 임태희 당선자 역시 후보 시절부터 경기도 학생들의 학력 저하를 지적하면서 학습 능력 향상, 대학 진학률 제고를 중등 교육의 목표로 제시했다. 9시 등교 폐지, 방과 후 학교 강화 등의 공약이 왜 나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학력 향상을 통한 기업 맞춤형 인재 육성’, 앞으로 교육부와 경기 교육청의 공문에 자주 등장할 것 같은 제목이다. 공문의 제목은 신기하게도 하루 만에 하늘을 뚫고 나무로 자란 동화 속 콩처럼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만들어낸다. 하늘 위의 세상을 만날 수도 있으니 누군가에는 기회일 수 있겠지만, 학력이 능력이고, 능력주의는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이미 깨어나 버린 22년 차 교사는 아무래도 걱정이 앞선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에 ‘좋아요’ 하나도 누를 수 없는 정치적 금치산자지만, 정치의 풍랑에 늘 흔들리는 우리 교육을 보며 용기를 내본다. 내가 생각하는 교육이란 이렇다.     

강아지에게 말을 가르쳤다고 하는 소년에게 소녀가 묻는다.
“강아지는 짖기만 하는데 어떻게 된 거야?”
소년이 이야기한다.
“내가 강아지에게 말을 가르쳤다고 했지, 강아지가 말을 배웠다고 하진 않았잖아!”
공허한 가르침에 관해 생각하게 하는 유명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다. 

가르침은 삶과 만나야 한다. 
다양한 기회와 실패의 경험을 안전하게 제공하여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공교육의 목적이라고 할 때, 가르침의 내용이 파편화된 지식이어서야 되겠는가? ‘나’와 ‘우리’를 엮는 관계로 재구성되고 일상의 시공간과 연결될 때 가르침은 교문 앞에 멈추지 않는다.

배움은 자기 생각을 만들게 하고 그 생각은 표현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자기 생각이 없는 배움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씨앗이다. 설령 열매가 되어도 그 생명력은 온실 속에서만 유지된다.

교사로서 나의 교육 목표는 삶을 주제로 자기 생각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20년간 토론 수업을 진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실에서 토론수업을 하는 학생들. [사진제공=송원석]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기 시작하는 유아기, “엄마”라는 단어 다음으로 가장 많이 내뱉는 말이 “왜?”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고민을 던져 준다. “왜?”라는 물음에 수많은 대답이 이어져 왔다. 부모의 입에서는 “크면 다 알아”, 교사의 입에서는 “정답이 아니야”, 혹은 “쓸데없는 질문이야”, 친구들의 입에서는 “관종”이라는 상처와 공포의 언어가 대답으로 돌아왔다.

물음과 대답을 공포와 불안으로 인식하는 대한민국 학생들에게 토론 수업은 쉽지 않다. 지금은 이미 많은 커뮤니티에서 회의 기법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10여 년 전에는 너무도 낯설었던 게시판 토론, 월드까페, 서클 회의법 등을 학교에 처음으로 도입하여 토론 수업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혁신학교 운동이 나에게 준 선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중요한 건 기법이 아니었다.

여전히 학교는 자기 생각을 말하기에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고 말해도 소용없는 상황에 아이들은 다시 입을 닫았다. 돌이켜보니 그래도 끈질기게 실천했던 두 가지가 있었다. 

먼저 학생들에게 질문하고 나서 최소한 15초를 기다렸다. 생각보다 아주 긴 시간이다. 교사가 학생에게 질문하고 기다리는 평균 시간이 2.3초라고 하니 거의 인공지능급 대답을 해야 할 지경이다. 15초를 기다리는 이유는 질문이해 3초, 자신의 생각 정리 7초, 그리고 마지막, 대답할 수 있는 용기 5초. 기다림이 필요한 이유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15초까지 기다렸는데도 대답 없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어느 해에 교사 연수를 진행했는데, 선생님 한 분이 15초를 기다려도 결국 대답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이 있었다. “선생님~ 우리 아이들이 생각보다 착해요. 점점 쪽팔려가는 선생님의 얼굴을 볼 수 없어서 무조건 아무 이야기든 합니다.^^”

두 번째는 질문에 대한 그 어떤 대답도 고맙다고 반응한다. 대화의 초대에 흔쾌히 응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은 넘치니까.

송원석 문산고 교사

15초의 기다림(Waiting), 그리고 묻고 따지지도 않는 감사함(Thanks)의 표시!
이제는 너무 기계적이어서 “샘~ 영혼이 없어요”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어차피 좋은 기분이 태도가 된 것이니 그러려니 한다. 어떤 학력 향상과 누구를 위한 산업 인재 양성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위해서라도 난 오늘도, 내일도 기다림과 고마움으로 그들의 말문을 열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