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생 신지혜] 반지하 주택 폐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들
[고양신문] 반지하 주택에 산다는 이유로 삶을 빼앗겼다. 기록적인 폭우에 집 안으로 물이 차올랐지만 대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사 소식에 온 국민이 가슴 아파했고, 반지하 주택의 재난 대책뿐만 아니라 반지하 주택의 존폐까지 논의 대상이 됐다.
반지하 주택에 사는 사람도 안다. 지상 주택이 지하보다 안전하고, 주거 환경도 쾌적하다는 것을. 그런데도, 반지하 주택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정치권은 ‘돈’에 주목했다. 보증금을 대출해주고, 이사비를 지원하고, 주거급여도 확대해 20년 동안 점차 반지하 주택을 없애겠다는 계획도 발표됐다. 하지만 반지하 주택 거주민은 환영하기보다 한숨부터 내쉰다. 반지하 주택 거주민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일회성 지원이나 한시적인 주거비 지원은 언 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다는 걸 가난한 사람들은 안다. 새롭게 이주한 집에서의 삶을 유지해 나갈 조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반지하 주택 침수 참변으로 그 안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도 일부 재조명됐다. 하지만 발달장애, 기초생활수급자 등 일부의 조건만 부각됐다. 재난불평등을 부각하는 조건이기는 하지만, 재난에서도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이게 하는 요인을 드러내기에는 부족했다.
동작구 반지하 주택에서 노모와 거주하며 침수 때문에 대피했다가 고양이를 구하러 다시 집으로 들어간 A씨의 사례도 마찬가지였다. A씨가 발달장애가 있고 기초생활수급자였던 것은 부각됐지만, A씨의 노모가 이른 새벽부터 빈 깡통을 모아 고물상에 팔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는 건 잘 드러나지 않았다. 기초생활수급비와 기초연금, 고물 판 수익으로 감당할 수 있는 보금자리는 반지하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20만 원 정도였다. 하지만 공공임대주택 중 이처럼 보증금과 월세가 저렴한 곳은 거의 없다.
공공임대주택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공공임대주택도 그림의 떡인 사람들이 반지하 주택에서 사는 경우가 많다. 공공임대주택 보증금 및 임차료를 대폭 낮추고 충분한 소득 보장 정책이 함께 가지 않는다면, 반지하 주택 거주민은 한 사람 눕기에도 벅찬 쪽방이나 고시원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단순히 공공임대주택 양만 늘린다고 재난취약계층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반지하 주택 폐지 소식에 한숨부터 나오는 것이다.
A씨의 부고 소식 중 더 안타까웠던 점은 현관 앞에 쌓아놓은 고물 더미로 인해 당시 구조 진입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정부보조금 외에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던 깡통과 고물들이 생명을 앗아가는 장벽이 된 셈이다.
가난한 이들의 삶의 조건이 이들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는데도 “반지하 주택에 계속 거주를 희망하는 사람은 집 고쳐 살게 해주겠다”고 하는 국토부 장관은 재난에서도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이다. 20년에 걸쳐 반지하 주택 거주민의 수에 맞는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약속하는 서울시장은 공공임대주택에서의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사람들을 기만하는 것이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외면과 기만을 넘어선 실질적인 대안을 논의해야 한다. 안전 보장은 정부가 외치는 ‘긴축’이나 ‘민간 중심’이라는 말과 함께 갈 수 없다는 사실부터 명확히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