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워 보이지만 참으로 쉬운

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2022-12-30     김한수 소설가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십이월 하순, 학사일정을 마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는 중학교의 요청을 받은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울금비누 만들기를 진행하기로 했다. 

얼핏 생각하면 수제비누 만들기가 꽤나 복잡하고 어려울 것 같지만 막상 해보면 너무나 간단하고 쉬워서 되레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다. 작년 이맘때, 나는 두어 차례 울금가루가 들어간 비누를 만들어서 여기저기 선물도 하고 집에서 쓰기도 했다.  내가 손수 비누 만들 생각을 하게 된 건 울금의 미백효능 때문인데 그 효능을 떠나서 스스로 모양과 색깔과 향을 디자인한 비누를 사용한다는 만족감이 대단히 컸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나는 아이들과 함께 울금비누 만들기를 하면 꽤나 흥미로운 반응이 나올 것이란 판단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은 반짝반짝 호기심을 빛내가며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완성된 울금비누를 포장지에 넣으면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그 아이들이 우리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많은 일들이 실제로 해보면 별 게 아니라는 사실과 우리 모두는 마음만 먹으면 놀라운 일들을 거뜬히 해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라는 깨달음을 얻길 간절히 빌었다. 

아이들과 함께 만든 울금비누

그동안 농사를 지어오면서 나는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지 못할 정도로 어렵고 힘든 일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았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의 삶을 보살필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나기 마련이다. 

내가 그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은 건 열 평 콩 농사를 짓고 나서였다. 서리태를 수확한 나는 까짓 것 안 되면 말고 하는 심정으로 두부 만들기에 도전했는데 너무 쉽게 두부가 만들어지는 바람에 하마터면 욕을 할 뻔했다. 

김치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해마다 열무김치부터 시작해서 깻잎김치, 총각김치, 갓김치, 오이소박이, 깍두기, 배추김치에서 파김치까지 손수 담가먹고 일부는 팔기도 하는데 내가 담근 김치를 먹어본 사람들은 다들 맛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그런데 정작 나는 총각시절 김장때마다 어머니 옆에서 보조역할을 한 것 말고는 김치 담그는 법을 따로 배워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처음 농사지은 배추를 수확해서 김치를 담그는데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단지 몸이 고될 뿐이었다. 

이런저런 장아찌를 담그거나, 다양한 종류의 청을 만들거나, 대량의 잼을 만들 때도 체력적으로 힘들어할 뿐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농장에서 농막과 하우스와 생태화장실을 뚝딱뚝딱 지으면서도 나는 내가 대단한 일을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더 대단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흔전만전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평생 만화를 가르친 선배가 있는데 그는 뒤에서 보면 초등학생으로 오해하기 딱 좋을 정도로 몸피가 작았다. 그런데 중년에 접어든 어느 날 그는 강화도에 땅을 사서 삼년에 걸쳐 동생과 둘이 삼십 평짜리 흙벽돌집을 근사하게 지었다. 삼년이란 시간이 걸린 것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집을 짓는데 필요한 모든 흙벽돌을 직접 찍었기 때문이다.

굳이 돈 들여 힘들게 찾아가서 배우지 않아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굉장한 일들을 가뿐히 실현해낼 수 있다. 새해에는 저마다 각자의 공간에서 몸을 매개로 이제껏 해보지 않았던 생산적 활동을 통해 그러한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의 존엄을 높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