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명 이웃의 삶에서 길어올린 ‘민주주의’
『민주시민백서』 펴낸 나경호 활동가 인터뷰
총 27개의 질문을 통해
각자의 민주주의 표현
고된 작업이었지만 뿌듯
기록작업 계속 이어갈 것
[고양신문] 장애인, 이주민, 대학생, 북한이탈주민, 군인 등. 고양시에 살고 있는 다양한 이웃들의 일상적 삶과 생각들을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묶어낸 인터뷰 모음집이 발간됐다. 책 제목은 『고양시 민주시민 백서』. 17명의 시민이 저마다 정치, 종교, 소속에 관계없이 순수하게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민주시민이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자신의 삶과 경험에 비춰 스스로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덕분에 자칫 뻔해 보일 수 있는 인터뷰 내용들이 인터뷰이의 삶과 연결되면서 훨씬 더 생동감 넘치고 풍부하게 느껴진다.
이번 민주시민백서를 기획하고 인터뷰를 진행한 이들은 지역 활동가인 나경호 씨<사진>와 이인영 고양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국장이다. 지난 5월부터 6개월간 17명의 시민들을 저녁 퇴근시간, 주말을 가리지 않고 한명 한명씩 만나가며 소중한 책으로 엮어 냈다. 인터뷰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많게는 두 달에 걸쳐 인터뷰이와의 소통과 수정작업을 거칠 정도로 애정과 정성을 쏟았다. 인터뷰를 주로 맡아 진행한 나경호씨를 지난 27일 한양문고에서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민주시민백서를 제작하게 된 배경은.
전부터 내가 살고 있는 동네주민들, 이웃들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동네 청년들과 사람책 인터뷰 형태로 8년 동안 작업을 해왔고 3년 전부터는 재단이나 경기도 등에서 지원을 받아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 각자의 생각을 들어보는 프로젝트도 진행한 바 있다. 그러던 중 올해 고양시 평생교육과에서 민주시민교육 일환으로 백서제작을 제안했고 나 또한 시민들이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알고 싶어서 흔쾌히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
❚민주시민교육을 인터뷰로 진행하는 게 다소 생소하다.
그동안 많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재밌는 점을 발견했는데 각자 쓰는 표현이나 단어는 달랐지만 다들 저마다 민주주의, 민주시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민주주의에 별로 관심이 없을 것 같은 평범한 시민들조차도 자신들의 삶과 정체성을 이야기하면서 각종 차별을 이야기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고 조금 더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꽤 중요하게 설명하려고 한다. 그래서 민주시민교육을 단순히 누군가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보다는 시민 당사자가 인터뷰를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백서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다면.
총 17명의 인터뷰를 진행했고 각 인터뷰는 3~4시간 분량의 총 27개의 질문으로 정리됐다. 인터뷰는 크게 어린 시절과 최근의 일과와 활동 등 개인의 서사를 확인하는 내용과 개인의 주체성을 확인하는 부분, 그리고 민주시민으로 얼마나 훈련이 되어 있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했다. 인터뷰 대상자가 평소 고민을 하지 않았더라면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로 다수 구성되어 있다. 질문과 답변의 난도가 상당히 높았음에도 인터뷰이들이 프로젝트의 취지와 의미를 높게 보시고 적극적으로 임해주셔서 좋은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
❚인터뷰 진행에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다.
대상자를 섭외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고 인터뷰에도 에너지가 많이 소모됐다. 아무래도 이런 질문을 받아보는 게 다들 처음이다 보니…. 그래도 나중에는 다들 자신들의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가 됐다고 좋아하셨다. 처음부터 민주주의에 대해 물어봤으면 뻔한 답변만 나왔을 것 같은데 먼저 각자의 삶의 경험에 대해 물어보고 그러한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다 보니 훨씬 더 내용이 풍부해져서 만족스러웠다.
❚가장 기억 남는 인터뷰가 있다면.
지역 시민사회 원로이신 고 유재덕 목사님을 돌아가시기 불과 2주 전에 인터뷰했다. 인상 깊었던 것은 과거 경험들에 대해 질문하는데 동요를 그렇게 많이 부르셨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야 해서 불가피하게 노래를 멈추고 인터뷰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나중에 동요의 의미를 여쭤보기 위해 연락드리려고 하던 차에 갑자기 부고 소식이 전해졌다. 안타깝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다음 인터뷰부터는 대상자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으려고 했고 더 꼼꼼하게 작업을 진행하고자 했다.
❚백서제작에 대한 소감이나 아쉬움이 있다면.
그동안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남발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민주시민백서를 만들면서 느낀 점은 각자의 삶을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이야기해보니 훨씬 더 다양하고 풍부하고 생각의 폭도 넓어지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러한 접근방식이 좀 더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면 좋을 것 같은데 아직 비주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방식의 기록 작업에 대해 공부를 더 하고 싶고 지역사회에 더 확산됐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에도 다양한 시민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는 작업은 꾸준히 이어나갈 예정이다.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평범한 이들의 일상적 삶과 생각을 동료시민들과 나누고 내 삶을 돌아보는, 그리고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보는 기회가 앞으로도 많았으면 좋겠다. 덧붙이자면 백서제작이라는 실험적인 시도에 대해 전폭적으로 지원해준 고양시 평생교육과 담당자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