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는 축제, 살리는 축제
높빛시론
[고양신문] 겨울이면 TV뉴스나 신문 사진보도에 단골로 소개되는 지역들이 있다. 다른 데 보다 눈 많고 추위가 더한 강원도 지자체들이다. 풀장 같은 대형 수조에 물고기를 풀어놓는다. 티셔츠 반바지 차림의 참가자들이 일제히 뛰어들어 첨벙거리며 앞다퉈 움켜쥔다. 산천어를 트로피처럼 들어올려 자랑하고 셔츠 안으로 불룩하게 채우거나 입으로 집어넣는 장면까지 연출한다. 잡은 물고기를 즉석에서 잡아 회를 떠 주거나 통으로 구워 주기도 한다. 빙판이 된 강엔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 얼음 구멍 낚시를 즐긴다. 물고기가 바늘에 꿰여 올라오면 빙판에 던져 놓고는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TV 화면과 신문, 온라인 매체에 이런 장면들이 뜨면 ‘좋아요, 엄지 척’ 표시가 몰린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대한민국 대표 축제로 인정했다고 내세워 유명세는 하늘을 찌른다
평창 송어축제, 인제 빙어축제, 홍천 꽁꽁축제 등이 화천과 비슷하게 겨울철에 방문객을 끌어 모은다. 지역 경제를 살리는 효과도 노리고 지자체장이 업적으로 자랑하고 싶은 유혹도 작용한다. 웃고, 떠들고, 잡으며 괴롭히고, 잡아서 죽을 때까지 방치하다 먹는 행위가 주로 벌어진다. 특히 물고기 맨손잡기 체험은 염려스럽다. 사람이 박테리아나 곰팡이에 감염될 위험도 있고, 산 물고기를 재미 삼아 함부로 다룰 경우 생명 경시 풍조를 당연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고은경 기자의 보도는 귀담아 들을 만하다. ‘산천어는 굶긴 채 옮겨지고 행사장에서 낚싯바늘에 상처를 입거나 맨손잡이 행사에 동원돼 질식사한다’면서 ‘산천어 축제는 비정한 동물 대량학살이자 시대를 거스르는 생명경시의 장’이라고 동물권 행동 카라의 비판을 전했다.
이런 지적이 거듭돼도 지자체는 귓등으로 넘길 뿐이다. 대다수의 언론 매체, 소위 인플루언서라는 파급력 있는 유투버나 블로거들도 무심하다. 생명 경시 축제의 뒤끝은 무덤이다. 벌써 9년 전, 지난 2014년 3월 4일 SBS뉴스에서 강원민방G1의 정동원 기자가 문제의 심각성을 짚었다. 화천군이 축제를 위해서 얼음 아래로 밀어 넣은 산천어 36만 마리 가운데 많은 수가 집단으로 폐사했다. 스트레스를 받아 면역력이 약해지고, 빼곡한 낚싯줄과 바늘에 입은 상처가 물속 세균에 감염됐기 때문이다. 물고기 사체가 수질 1급의 북한강을 오염하는 문제, 대관령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사는 산천어를 일본산과 교잡해 여러 양식장에서 키운 뒤 트럭으로 실어와 풀어놓는 문제도 있다. 올 겨울엔 1백만 마리, 전문가들은 유전자 오염, 생태 교란이라고 지적한다.
드물긴 하지만 생명을 존중하고 살리는 취지의 축제도 있다. 전북 고창군은 지난해 8월 지역 갯벌이 순천-보성, 신안, 서천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된 지 1주년을 기념해 ‘고창갯벌BBR’을 열었다. BBR은 Big Bird Race의 약자로 지역에 어떤 새가 사는지 살펴보는 탐조대회다. 전국에서 27팀 150여 명이 참가해 2박3일 동안 새뿐 아니라 자연 환경과 경관, 역사, 문화 자산을 두루 살폈다. 참가자들은 깊은 인상을 받아 다시 고창에 오는 건 물론 주위에도 널리 고창을 알리겠다고 입을 모았다. 전남 순천시는 해마다 11월 순천만 갈대축제를 연다. 순천만 갯벌과 갈대 습지는 4계절 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 탐방객들의 흥미를 높인다. 10여년 전 순천만 길목에 국가정원도 끌어들였다. 순천만 갈대습지공원과 함께 순천시가 자랑하는 생태 공간이다.
순천 갈대축제의 주제는 순천만의 풍광과 생태, 생명이다. 핵심 요소는 흑두루미다.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으로 지구에 1만7000마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순천시는 남다른 지혜를 발휘했다. 흑두루미와 순천만을 지키기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 흔하게 벌이는 토목사업이나 자연을 훼손하는 개발로는 지역 발전을 이어갈 수 없음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흑두루미가 전깃줄에 부딪쳐 죽거나 다치지 않도록 일찍이 14년 전, 2009년에 순천만 인접 농경지 대대들의 전봇대 282개와 전선 1만2000m를 철거했다. 농약을 치지 않는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벼를 흑두루미 먹이로 주기 시작했다. 전봇대 철거 전 300마리에 불과하던 흑두루미는 해마다 급증해 3년 전에 3000마리를 넘었다. 일본 이즈미에 이어 순천은 세계 제2위의 흑두루미 월동지로 자리를 굳혔다.
올 겨울 고병원성 AI로 일본에서 흑두루미가 1300마리나 폐사해 지구상 흑두루미의 7%가 사라졌다. 흑두루미가 떼를 지어 다시 순천만으로 날아와 1만 마리나 몰렸다. 철새 난민인 셈이다. 순천이 안전하게 지낼 만한 곳임을 새들도 알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평하지만, 이변이다. 순천만도 이젠 좁다. 노관규 순천시장은 순천만 서식지를 2배 더 넓히기로 결정하고 나아가 흑두루미가 날아오는 지역 시장 군수들에게 네트워크를 이뤄 한반도 흑두루미 벨트를 조성하자고 제의했다. 이완섭 충남 서산시장이 달려왔다. 전남 여수 광양 보성 고흥, 강원도 철원도 호응해 지난 12일 협력 협정에 서명했다. 머지 않아 이들 지역에서 생명 살리는 축제가 열리기를 기대한다. 고양시장, 파주시장은 생명 살리고 자연 지키는 대열에 동참할 의향이 있는가? 있으리라 믿는다.
글, 사진 – 박수택 생태환경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