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의 정치학

송원석 칼럼 [내일은 방학]

2023-02-07     송원석 문산고 교사
송원석 문산고 교사

[고양신문] 지난 1월, 10년 가까이 민주시민교육을 함께 고민 중인 교사 모임에 다녀왔다. 경기도 곳곳에서 근무하다 보니 코로나 이전에도 대면 모임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1년에 한 번은 꼭 얼굴을 확인하고 실천한 활동들을 공유하곤 했는데, 3년 만에 모였으니 천일야화가 여기서 꽃을 피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추억의 밤이 막을 내린 건 숫자 ‘0’ 때문이었다. 무한과 ‘0’의 만남, 운명이 느껴진다.  

“원석 샘~ 지금도 고양시 ‘친구야 책방 가자’ 사업은 잘 진행되고 있죠?” 
수원에 근무하는 S교사의 질문에 내 대답은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당연하죠,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다행이에요, 고양시가 요즘 예산 문제로 시끄럽다고 들었는데, 다행히 좋은 사업은 유지가 되는 모양이네요.”

아차 싶었다. 설마 하는 마음에 고양신문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기사 검색. 
관련 예산 ‘0’. 사업이 시작될 때부터 교사 위원으로 함께 했었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례를 전파한 사람으로서 적잖은 충격이었다. 이날 함께 했었던 교사 중 일부는 실제 자기 지역에서 이 사업을 준비하고 있던 터라 본점이 문을 닫은 격이었다. 

사업 평가를 통해 예산은 얼마든지 조정될 수 있다. 학교도 1년의 교육활동을 평가하면서 내년의 예산안을 준비한다. 학교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설문조사부터 관련 부서의 내부 평가를 초안으로 하는 전체 교직원 평가회까지 12월의 학교는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느라 늘 바쁘다. 교육의 기본활동 예산은 평가에 따라 증감은 있겠지만 사업 폐기는 없다. 그러니 ‘0’이라는 예산은 존재할 수가 없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은 사업은 확장하고 예산도 증액된다. 학교장 중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신규 사업이 생기기는 하지만 이를 위해 기본적으로 꼭 필요한 예산을 ‘0’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우리 학교의 경우 ‘사제동행 독서캠프’라는 교사-학생 책 읽기 활동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예산이 증액되었다. 2021년에 진행한 ‘2021년 친구야! 책방가자~’는 사업 종료 후 학생과 교사, 지역 서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만족도가 90%에 달했다. 

애쓴 사람들이 많다. 시청, 교육청, 학교, 서점. 일하는 목적과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일이 되게 하려면 ‘0’에서 시작해서 ‘-100000’까지 갔다가 다시 ‘0’을 찍고 매일 스무고개를 넘는다. 떡 하나 주면 살려주겠다는 호랑이도 만나지만 고개 넘어 친구와 함께 기다릴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온 길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떡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먹어버린 호랑이는 전래동화에도 없지 않았을까? 

친구와 함께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아이들로 북적대는 서점 주인들의 인터뷰 기사는 새 학기 문제집을 사러 오는 아이들로 붐빈다는 내용으로 바뀔 것이다. 더해도 빼도 최소한 그 자리는 지키게 하는 ‘0’이 정치의 영역에서는 판을 뒤집기도 한다.   

친구야~ 책방 가자! 
카톡을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고 있을 우리 아이들 가슴에 ‘0’이라는 멍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양시와 고양시의회의 진짜 민주주의를 기대해본다. 

※ 덧붙이는 글 : ‘친구야 책방가자’라는 프로그램을 모르시는 독자분도 있을 것 같아 간략한 내용을 덧붙입니다. 
‘친구야~ 책방가자!’는 초등학교 5·6학년과 중·고등학생, 학교 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다. 청소년에게 고양 Book(북)페이 도서교환권을 배부해 청소년이 동네 책방에서 책을 직접 고르고 독서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응원한다는 취지다.
‘친구야~ 책방가자!’는 단순히 도서 구입 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서점에서 지역 작가풀을 구축해 학교로 찾아가는 강연 프로그램과 차별화된 도서 추천 코너, 학교별 특색 있는 교과 연계 독서프로그램 등 다양한 독서 활동 지원 프로그램과 연계해 진행한다.

지난해 진행됐던 '친구야 책방가자' 사업 포스터. 학교-학생-지역서점 모두에게 호응이 좋았던 사업이었는데, 올해는 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