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신동 ‘추억의 썰매장’을 아시나요?

[높빛시론]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행신2동 주민자치위원

2023-02-10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고양신문] 고양시에서 아이들과 놀러 갈 곳을 검색하면 창릉천과 행주산성이 만나는 천변에 ‘추억의 썰매장’이 나온다. 이제는 마무리되었지만, 행신2동 주민들이 운영하는 동네 썰매장이다. 원래 이 썰매장은 연꽃이 자라는 연못이다. 작년부터 행신2동 주민자치회가 동네 생태사업으로 조성한 연꽃밭이다. 

이곳은 강매석교를 지나 행주산성으로 이르는 천변이다. 봄가을에 유채꽃, 코스모스가 만발하여 예쁜 꽃밭을 이루는데 폭우에 취약하다보니 수시로 침수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날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던 주민들이 ‘물에 강한 수생식물, 연꽃’을 떠올리면서 이 천변에 새 장면이 연출되었다.

연꽃밭은 시작부터 ‘주민 참여’로 진행되었다. 처음에 천변을 산책하는 주민들이 연꽃밭을 만들면 어떠냐고 주민자치회에 제안했고, 주민자치회는 산책 주민들과의 현장 대화, 주민 설문조사, 주민총회 의결 등을 차례로 거쳐 연꽃밭 사업을 확정하였다.

이후 연꽃으로 유명한 남양주 능내마을과 아산 청연마을을 찾아 자문을 구하고 연꽃 뿌리까지 구입하여 주민들이 긴 장화를 싣고 손수 뿌리를 심었다. 모내기처럼 긴 줄에 맞추어 한 걸음씩 뿌리를 심을때는 정말 여기서 연꽃이 자랄까 싶었는데, 생명의 힘은 놀라왔다. 아직도 지난 여름 푸른 연꽃 잎과 연보라 꽃봉우리가 눈 앞에 생생하다.

썰매장도 주민의 아이디어였다. 한겨울에 연꽃 뿌리가 동사하지 않으려면 물을 채워 놓으라는 전문가의 조언을 따랐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멋진 빙판이 등장했다. 그냥 놔둘 이유가 없었다. 텐트 두 동을 설치하고, 썰매를 무료로 빌려주는 주민썰매장이 탄생했다. 강매역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이니 방학을 맞은 어린이와 부모님들이 쉽게 찾아왔고, 방문자들은 도시 지역에 살면서 동네에서 썰매를 탈 줄은 몰랐다며 즐거워했다. 
 

 

더 신난 건 썰매장을 운영하는 주민자치위원들이었다. 분과별로 정해진 당번 날은 하루 소풍 날이었다. 각자 떡국, 어묵탕, 부침개, 나물, 떡, 과일 등을 챙겨와 나누어 먹었고, 여러 번 썰매 경주를 하면서 급회전, 속도 내기 등 나름 썰매 기술도 익혔다. 이웃들이 찾아올 때는 썰매장 운영자로서 어깨를 으쑥하며 동네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주민자치위원들끼리는 더욱 친해졌고, 주민들은 내가 사는 동네에 더 관심과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 썰매장이 썰매 타기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어울림 광장이 된 것이다. 썰매장을 마무리하는 날 대보름 오곡밥을 함께 먹으며 서로 뿌듯해하는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으로 남을 듯하다.

사실 시행착오도 많았다. 지난 여름 폭우로 연꽃밭이 세 번이나 물에 잠겼을 때 제대로 씻어주지 못해 연꽃잎이 시들해지자 죽은 거 아니냐는 걱정도 컸다. 수면을 얼릴 때 연꽃 줄기를 미리 치우지 않아 빙면 관리에 애를 먹기도 했다. 그럼에도 초보들이 연꽃 뿌리를 살려냈고 추억의 썰매장도 무난히 운영했다. 오히려 지난 긴장의 시간이 오늘의 성과를 더욱 소중하게 느끼해 주었다.

재작년부터 고양시에서 주민자치위원회가 주민자치회로 전환되었다. 예전 주민자치위원회 역할이 주로 동 행정업무에 대한 단순 자문에 그쳤다면, 주민자치회는 주민총회를 통해 선정한 지역 의제를 사업으로 추진하고 이에 필요한 예산도 가진다. 행신2동 주민자치회가 연꽃밭 사업을 직접 주관하듯이 말이다.

지난 1년,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도시 지역에서 ‘주민 참여’라는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사실 주민자치 사업을 보면, 상당한 자원이 투입되지만 주민들은 ‘구경’ 역할만 하는 것들도 있다. 이에 반해 연꽃밭, 썰매장은 제안부터 운영까지 주민들의 참여로 이루어진 사업이다. 벌써 주민자치위원 사이에서 올해에는 연잎밥, 연근, 씨앗까지 주민들과 나누고 제대로 썰매장도 만들자는 포부가 넘쳐난다. 

아마 이 연꽃밭이 조만간 큰 변화를 겪을 듯하다. 고양시 창릉천이 환경부 지역맞춤형 통합하천사업으로 선정되어 한강, 행주산성, 장항습지를 잇는 친수 생태 단지로 전환될 예정이다. 이번 겨울에 추억의 썰매장으로 멋지게 변신했던 것처럼 이 연꽃밭이 고양시 도시생태 대장정에서도 소중한 역할을 하기 바란다. 지역 생태와 주민자치가 결합하는 모델 사례로서 말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행신2동 주민자치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