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한 장의 힘

김경윤의 하류인문학

2023-02-28     김경윤 인문학자
김경윤 인문학자

[고양신문] 새해에 “뭘 먹고 사냐?”고 묻는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씁쓸하게 웃으며 “이슬 먹고 산다”고 대답하지만, 그 좋아하는 ‘이슬’마저도 가뭄에 콩나듯이 먹고 삽니다.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습니까마는, 요즘에는 차라리 거미줄 치고 먹이를 기다리는 거미가 부러울 정도입니다. 나 같은 지역의 창작자나 예술가들은 지역의 문화사업이 활성화되고, 공공영역이 확대되어야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데, 올해 우리 지역 예산안을 보니 그나마 있던 문화예술사업도 축소되거나 폐지될 예정이라 앞날이 깜깜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새해부터 인상된 도시가스 요금으로 철퇴를 맞고, 공포스런 전기료로 전율합니다. 온갖 생필품의 물가도 계속 오르고, 버스와 지하철 요금 등 공공요금도 오른다고 하니 계절은 봄으로 향하는데, 체감경제온도는 한파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한파가 몰아쳐도 모든 사람이 같은 고통을 겪는 것은 아닙니다. 오르는 도시가스나 전기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겨울에도 따뜻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계절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후 위기를 걱정하며 집안 온도를 낮추고 내복을 챙겨입고 절약을 외치며 생태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삶의 지혜를 발휘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는 생태는커녕 생존의 위협을 받으며 연탄 한 장이 없어 추위를 온몸으로 겪어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연의 온도는 평등하게 다가오지만, 인간 사회의 체감온도는 불평등하게 분배됩니다. 그 불평등이 고통의 지형도를 그려냅니다.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수록 이 고통의 등고선은 더욱 좁아지고 높이는 가팔라지고 격차는 벌어집니다. 

올해도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인천연탄은행에서 진행하는 무의탁 어르신을 위한 연탄나눔활동을 함께합니다. 연말에는 많은 후원자들이 몰려 겨울을 지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정작 아직도 추위가 가시지 않은 2월 즈음에는 거의 후원이 끊겨 연탄은행 운영이 어렵다고 합니다. 가스비, 전기료만 오른 것이 아니라 연탄값도 올라 장당 850원이라고 하네요. 다행인 것은 이번 달에 180여만원의 후원금이 모여서 배달하는 데 부족함은 없을 듯합니다. 이 지면을 통해서 후원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후원금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봉사하고 싶다는 분들도 계셔서 토요일에는 그분들을 모시고 연탄봉사를 다녀오겠습니다. 이러한 봉사활동으로 연고가 없으신 노인분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이 추운 겨울은 견딜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희망찬 미래는 없더라도 비참한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겠지요. 

연탄 한 장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나는 연탄 한 장이 주는 온기의 힘을 믿습니다. 그 연탄 한 장으로 한 나절 한 사람은 추위를 견딜 수 있을 것이고, 그 한 장 한 장이 모여 이 추운 겨울을 넘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나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살아야 밥도 먹고, 거리도 걷고, 사람도 만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연탄 한 장으로 불평등과 고통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 불평등과 고통을 마주할 수 있는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온기는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연탄 한 장의 힘을 나는 믿습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움직이게 합니다. 남 걱정하지 말고 자기 걱정이나 하라고 말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난 이 연탄 한 장의 연대, 작음의 연대, 가난의 연대가 무의탁 노인분들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나 또한 살린다고 생각합니다. 다음번에는 같이 가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