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에게 물어볼까요?
송원석 칼럼 [내일은 방학]
[고양신문] 다시 찾아온 학교의 3월엔 여전히 여백이 없습니다. 만남과 환대를 각종 정보 취합과 서류 제출이 대신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절대 밀리지 않는 우선순위는 ‘아이들과의 대화’이니까요. 일을 멈추면 아이들이 보이는 이 신비로운 현상은 대한민국 모든 초중등 교사들의 꿈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보이면 모이게 하고 싶어집니다. 모이려면 더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새 학기 시작과 동시에 매일 무엇인가를 제출해 달라는 교내 메신저가 하루에 40개씩 쌓였지만, 아이들과의 상담을 먼저 시작했습니다. 청소 구역에 인원을 반별로 배치해달라는 공지를 하루 정도 물리치고 우리 반에 배정받은 특수학급 학생의 사정을 먼저 알아보았습니다. 멀리서 다니느라 등교 시간만 1시간이 넘는 K와의 대화 주제는 최단 시간 등교 방법이었습니다.
멈추어야 하는 일은 멈추니 새로운 일이 보입니다. 이들을 모이게 하고 싶은 욕망이 또 다른 일을 도모하게 합니다.
시민교육이 교육과정으로 들어온 이후로 늘어난 시간에 반비례해 생명력이 다해갑니다. 연애를 글로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경험과 실천은 줄어들고 지식교육만 가득합니다. 시민교육의 시작을 학급 자치로 열어보고 싶어 학급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선관위 교육을 마친 선거관리위원들은 선거 과정을 논의하고 학급 게시판에 선거 일정을 공고합니다.
결과는 회장 후보 1인, 부회장 후보 1인 단독 입후보입니다. 찬반 투표를 하겠지만 학생들은 더이상 학급자치회장에 관심이 없습니다. 후보가 없어 입후보 날짜를 연기한 학급도 여럿 있습니다. 전체 학생회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학생회 차장 희망자가 없어 전체 교실을 돌며 관심을 호소하는 일이 매일 계속됩니다. 생활기록부에 기록되어 대학 입학에 도움이 된다는 마지막 당근은 교실의 공기청정기가 빨아들입니다. 대입 스펙에 도움이 된다는 당근으로 한때 결선투표까지 갔었던 학교 민주주의 꽃은 그렇게 시들어버렸습니다.
인문학 특강 담당이 아니었지만, 프로그램을 고민하는 후배 부장 교사의 고민을 덜어주고자 오래 알고 지낸 AI 전공의 교수를 섭외했습니다. 그의 최근 강의 주제는 ‘AI를 활용한 Chat로봇 제작하기’입니다. 실습 위주의 강의라 대면 강의는 25명, 비대면 강의는 40명이 정원입니다. 우리 학교의 전체 학생은 330명. 학년별로 난리가 났습니다. 다음 주면 모집이 끝나겠지만 탈락한 학생들의 항의가 예상됩니다. 2학기에 추가로 강의를 섭외해 달라는 담당 부장의 말에 한참 멍하니 하늘만 바라봤습니다.
어차피 일의 총량은 같습니다. 힘들어도 교육의 본질에 가까운 일을 하고 싶은 것이 저를 비롯한 대한민국 교사들의 염원입니다. 힘들어도 의미 있게 살고 싶은 거죠.
학생 자치보다 AI가 만든 현대판 도라에몽 GPT에 열광하는 우리 아이들을 보며 마음이 더 힘들어집니다. 저의 이 고민, ChatGPT에게 물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