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마음이야기> 문동은의 동행인

2023-03-30     양성희 심리치유센터 대표

한국인들은 극도로 고집이 세며, 성질이 급하고, 복수심이 강하며, 자주 강렬하고 제어하기 어려운 분노를 터뜨린다. 분노가 폭발했을 때 한국 사람들은 믿기 어려울 만큼 쉽사리 목을 매달거나 물에 빠져 죽는다. 조그마한 불만, 모욕적인 언사, 사소한 일들이 그들을 자살로 이끄는 것이다.

양성희 심리치유센터 대표

1900년대에 러시아인이 우리를 조사하고 기록한 『고려사』 부분이다. 한국의 자살률이 높은 것을 방증해주는 역사 한토막이다. 이런 걸 보면 과연 한민족의 정서는 원한인가 싶다.

  인생을 사막이라고 생각하는가, 숲길이라고 생각하는가. 사막을 걷고 있어도 숲길을 걸었던 경험이 있다면 오아시스라는 희망을 걸며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오아시스를 경험해 본 사람이 동행하고 있다면 그 생각에 기대어 견딜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고개만 넘으면 오아시스가 있는데도 우울의 늪에 빠져 스스로 좌초될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이다. 

  한국인에게는 억울함이라는 정서가 흐른다. 가볍게 얘기하면 ‘뒤끝’이고 아프게 얘기하면 ‘응어리’ ‘원한’ 정도겠다. 우리나라의 귀신 전설을 보면 알 수 있다. 고을에 부임한 사또가 귀신 때문에 연이어 죽어 나간 전설을 들어봤을 것이다. 알고 보니 처녀 귀신이 자신이 살해당한 사건을 낱낱이 파헤쳐 달라는 청원 소동이었다. 지난 정부에서 했던 ‘청와대 청원’ 제도는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농담으로도 청와대 청원 이야기가 나올 만큼 국민의 정서에 부합했었다. 우리의 정서에는 『장화홍련전』의 장화, 홍련처럼 조선의 신문고에 못 올렸을 때는 혼령인 상태로라도 청원을 올릴 수 있다. 그래서 <여고괴담>, <신과 함께>처럼 원귀가 이승을 떠도는 이야기는 자꾸만 나온다. 

  얼마 전엔 <더 글로리>라는 복수극이 우리를 텔레비전 앞에 묶어 두었다. 시청자가 고을 사또는 아니지만 내심 문동은을 응원하며 악의 무리들이 심판을 받기를 고대했다. 거기서도 죽은 윤소희의 혼령이 무당을 통해 등장하여 벌을 내린다. 

  아이러니하게 현실에서는 검사 출신 아버지의 특혜로, 학교폭력 가해자면서 서울대 입학에 성공한 사례가 뉴스에 연일 보도되었다. 피해자는 자살 시도까지 하고 젊음이 망가졌으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불공정한지 뚜렷이 볼 수 있었다. 이런 일은 한동안 떠들썩하다가 잊혀지고 잊혀질 만하면 또 터진다.  

  고양에는 시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청소년상담센터가 있는데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도 일산의 청소년들은 사설 상담실을 많이 이용한다. 고가의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부모들이 보내기 때문이다. 소아정신과도 대기자에 밀려 오래 기다려야 할 만큼 성행이다. 학업증진을 위해 부모들이 얼마든지 지출하고 있다. 그렇게라도 청소년들이 숨통이 트이는 경험을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다. 

  <더 글로리>는 비슷한 상처가 있는 사람끼리 합쳐 대복수극을 가능하게 했다. 노름꾼에 술만 마시면 처자식을 패는 남편을 둔 여성도 있고, 사고로 아들이 죽은 어미도 있었다. 아버지를 살해한 사이코패스로부터 2차 가해를 당하는 트라우마 속의 의사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도왔다. 문동은은 극 마지막에 깨닫는다. 자신은 혼자가 아니었다고. 

  <더 글로리>의 부작용이 나올까 염려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통쾌함도 없이 사막을 견뎌낼 수 있을까. <더 글로리> 같은 드라마가 이렇게 집중 받고 사랑받는다는 것은 현실은 절대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다. 판타지 세계인 드라마에서라도 주인공이 완벽한 복수에 성공해야 위로를 받아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또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은 측은지심이 발동했을 것이다. 문동은 같은 학생을 만난다면 손을 잡아주고 껴안아주고 싶을 것이다. 

  우리 인생이 사막이라면 더더군다나 언제 어디서나 이런 사람이 나타날 수 있다. 나와 동행해주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그게 우리이고, 앞으로 나올지 모르는 <한국사>라는 책에 실릴 수 있는 한국인의 특성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인은 생판 모르는 남이어도 억울한 사람이 나타나면 돕고... 
  
  그리고 근래의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는 한국보다 자살률이 높은 나라임을 밝히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