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적이 되기도 하는, 프레너미를 아시나요?
[한동욱의 시민생태이야기 에코톡]
국립생태원, 생태관측지소 장항습지 낙점
시민과학과 제도권 과학의 바람직한 협력
호수공원 왕벚나무 개화 7년째 모니터링
기후위기로 인한 생태계 변화 우려스러워
[고양신문] 일반적으로 적(enemy)의 적(enemy)은 친구(friend)다. 그러나, 친구인 줄 알았는데 적일 수도 있는 관계를 프레너미(frenemy)라고 하는데 친구(Friend)와 적(Enemy)의 합성어다. 이 말은 원래, 서로 대립하면서도 서로 발전해 온 사상적 대가들을 일컫는 말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같은 관계를 말했으나 요즘은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는 국제관계에 쓰이기도 한다.
올봄 정발산 습지에서 기후변화지표종인 큰산개구리 알덩이 수를 관찰할 때 일이다. 흰뺨검둥오리 한 쌍이 평화롭게 먹이를 찾고 있었다. 큰산개구리 입장에서 잠재적으로 올챙이의 적이 되는 물고기들을 먹어 주는 흰뺨검둥오리들이 친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곧 상황은 바뀌었다. 흰뺨검둥오리들이 부리를 처박고 식물 뿌리 부근에서 큰산개구리를 잡아 게걸스럽게 먹어댔기 때문이다. 측은지심이 생겨 갑자기 돌을 들고 싶어졌다가 평정심을 찾고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프레너미구나.
기후변화는 자연의 섭리를 어떻게 바꿀지 알 수 없지만, 프레너미 관계에도 영향을 줄 것이 자명하다. 기후변화생물지표를 모니터링하는 우리 시민과학자들의 기록은 오늘도 새로운 관계를 발굴하기 위해 계속되고 있다.
시민과학의 주요분야, 생물계절 관찰
고양시에 기후변화는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을까? 2017년 시민과학자들이 호수공원 자연학습장 안에 있는 가장 크고 건강한 왕벚나무를 표준 관찰목으로 정했다. 그 후 7년간 왕벚나무 개화기는 얼마나 빨라졌을까. 1그루에 3송이가 완전히 개화한 시기를 개화기로 정해서 매일 관찰하는 방법으로 기록해보니, 관찰을 시작한 2017년을 기준으로 평균 7일이 빨라졌다. 최대 14일이 빨라진 해도 있었다. 이러한 관찰을 여러 장소에서 매년 관찰하면 신뢰도가 높아지는데 이런 것이 시민과학의 영역이다.
이런 생물계절 관찰 방법을 고해상 카메라를 이용해서 실시간으로 촬영하고 색감을 자동으로 측정하여 지수화하는 리모트센싱 기법을 통해 분석하는 기기를 자동영상촬영장치, 피노캠(Phenocam)이라고 한다. 원거리 자동 측정은 현장 상황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어야 하므로 보호지역을 관리하는 행정기관과 현장 조사자들과의 협력이 필수이다. 마침 이런 피노캠 연구를 하는 국립생태원 기후생태관측팀 연구자들이 장항습지와의 협력을 요청해 온 것이다.
생태원은 설악산국립공원이나 우포늪 람사르습지와 같이 우리나라 우수 생태계를 유형별로 나누어 피노캠을 설치하고 있는데 습지관측지소로 장항습지를 선정하고 싶다는 것이다. 장항습지는 람사르습지이고 자연 하구이며, 우수한 선버들군락이 있어서 적지라고 한다. 고맙게도 고양시 환경정책과가 흔쾌히 손을 잡아주었고 한강유역환경청도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었다. 에코코리아에서 현장 조사도 협력하기로 했다. 행정 절차가 잘 마무리되면, 군부대 초소를 개축한 탐조대에 고해상도 생물계절 측정용 카메라를 설치하게 된다.
장항습지의 영상정보가 실시간으로 국립생태원으로 전송되고 이렇게 쌓인 빅데이터가 처리되면 습지생태계에 대한 기후 반응을 읽게 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쌓이는 이런 생태 데이터로 선버들의 잎이 나오는 시기(개엽기), 꽃이 피는 시기(개화기), 낙엽이 지는 시기(낙엽기) 등이 기후변화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장기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은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지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연구 협력에 추가로 철새 무리 연구도 제안해서 수용되었다. 장항습지는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 경로를 이용하는 철새들의 중간기착지이다. 철새 무리의 도래 시기를 장기적으로 관측한다면 무리의 크기 변화, 도래 시기 변화도 알 수 있다. 특히 봄, 가을 대규모로 이동하는 기러기나 갈매기무리와 도요, 물떼새무리, 그리고 소수이지만 대형 물새류인 재두루미나 저어새 무리 등에 대해 자동 관측이 가능할 것이다.
생물종 관계 균열, 인간도 자유롭지 않아
고양시 시민 과학 활동의 결과로 기후변화지표종의 출현과 이들의 번식 여부, 월동 여부를 관찰하는 것도 기후생태관측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그동안 시민모니터링으로 발견된 기후변화지표종은 장항습지에서 흰날개해오라기, 검은이마직박구리 등 20종이고 정발산에서는 산솔새, 큰산개구리 등 15종이다. 또한 장항습지에서는 유라시아 서남쪽에서 이동해 온 적갈색따오기가 기록되기도 했고 정발산에서는 남방계인 동박새가 월동하는 것이 관찰되었으며, 남쪽 섬이나 해안에서 번식하는 팔색조 한 쌍이 발견되어 번식에 관한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렇게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의 변화양상을 감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후변화는 생물종의 서식 환경을 변화시킨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개별 종들의 이동 속도가 다르고 적응 여부가 달라서 상호작용이 있는 종간의 관계가 깨지면서 특정종이 감소하거나 멸종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먹이사슬 관계의 변화는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올해처럼 벚나무가 빨리 개화하면 이른 봄 활동하는 화분매개자들이 혼란에 빠지게 된다. 특히 벚나무 개화와 꿀벌들의 생리 시계가 불일치하여 꽃과 벌이 만나지 못하게 된다. 결국 꽃가루받이를 못 한 식물은 결실에 실패하고, 꿀벌들은 먹이 부족으로 감소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향이 인간에게는 미치지 않을까. 아니다. 올해 산벚나무꿀은 우리 식탁에서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