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 맞춘, ‘이해’하는 장애인 구강치료
하종철 경기북부장애인구강진료센터장
작년 개소 후 23일 개소식 열어
15번째 장애인구강진료센터
경기북부에선 '최초'
[고양신문] “‘돌고래 치과센터’가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중증장애인들이 치과 진료를 맘 편히 받을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오랜 기간 우여곡절을 겪고 기다려준 장애인 환자들과 그 부모님들을 떠올리면 그저 미안함과 감사함만 듭니다.”
작년 11월 개소한 명지병원 돌고래 치과센터를 이끄는 하종철 센터장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담백한 포부를 밝혔다. 돌고래 치과센터가 경기북부 최초의 첫 장애인구강진료센터인만큼 센터장으로서 그의 책임은 막중하다. 부산대학교병원 장애인구강진료센터장을 맡으며 수많은 노하우와 이야기를 차곡히 쌓아온 그는, 대한장애인치과학회의 평생회원으로서 장애인의료업계 일선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돌고래 치과센터가 맞이할 새로운 인연들을 상상하는 그의 모습은 순수한 어린이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장애’ 꼬리표 지워버린 ‘돌고래 치과센터’
‘돌고래’라는 이름에는 바다에 살고 있지만 보통의 수중 생물과는 다른 돌고래처럼 특별한 환자들에게 집중하여 치과적 어려움을 해결하겠다는 센터의 의지가 담겨있다. 정식명칭은 ‘경기북부권역 장애인구강진료센터’이지만, 병원 내의 그 누구도 ‘장애인구강진료센터’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장애’라는 말 자체가 일반인과 장애인을 구분 짓는 하나의 편견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종철 센터장은 “우리 의료진은 ‘장애’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비장애인을 대하듯 그들을 다루고, 꼭 구분이 필요할 때마저 ‘특별한 아이’라고 부르죠. ‘장애’라는 말은 행정처리나 의료보고서를 작성할 때나 튀어나오는 말이고, 진료 때는 일절 사용하지 않습니다”라며 “’장애’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우리 앞의 환자는 ‘설레는 인연’이 아닌 치료 받아야 할 ‘장애인’이 되어버립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센터에서 ‘편견’을 완벽하게 지우기란 어렵겠지만 장애인들을 위한 공간인 만큼 경증 장애인 12명을 돌고래치과 보조인력으로 채용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공간의 분위기를 바꿔나가는 중”이라며 미소를 보였다.
단순히 센터 이름에서만 ‘장애’를 지운 건 아니다. 병원 구조와 인테리어를 찬찬히 살피다 보면 ‘장애’와 ‘편견’을 잊어버리기 위한 노력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대기 공간인 ‘돌고래 가족실’이다. 돌고래로 가득 찬 벽을 지나면 만날 수 있는 가족실은 일반 진료대기 공간보다 2배 이상 넓은 좌식형으로 몸을 가누기 힘든 환자들이 바닥에 앉거나 누워 편안한 상태로 긴장을 풀고 진료를 기다릴 수 있다. 공간 내 따뜻한 색감의 쿠션들은 흡사 ‘치료소’가 아닌 ‘놀이방’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 센터장은 “치과 진료에 있어서 ‘대기’는 공포의 시간입니다. 특히 소리에 예민한 장애환자들에게는 이 공포감이 몇십 배는 더 크게 다가오죠”라며 “환자들의 감정을 이해해야만 좋은 치료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작은 것부터 실천 중입니다”라고 밝혔다.
4명을 동시에 진료할 수 있는 진료실과 전신마취 격리치료실, 회복실, 구강위생 교육실, 돌고래 가족실, 전용 엘리베이터 등도 모두 갖췄다. 이 밖에도 강압적으로 환자를 통제하는 대신 적은 스트레스로 할 수 있도록 수술실의자 위에는 커다란 모니터가 달려 있어 장애우들의 긴장을 완화할 수 있도록 영상을 틀어준다. 화장실 내부에는 샤워실도 만들어 구토나 용변 등을 실수한 경우에 현장에서 바로 씻길 수도 있도록 했다.
의료인 부족 등 어려움도 무시못해
그가 꼽은 가장 어려운 점은 ‘의료 인력 부족’이다. 하 센터장은 “대표적으로 우리 센터 같은 경우는 마취과 의사가 부족합니다. 치료에 앞서 전신마취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 마취과 의사 1명, 마취를 돕는 마취과 간호사 2명, 회복실 간호사 1명, 이렇게 총 4명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인원을 채우기란 불가능에 가까워요”라고 토로했다.
이어서 그는 “구강 내 조직은 다른 조직에 비해 통점이 많고 민감해서 섬세한 손길이 필요하지만, 장애 아동 같은 경우 ‘마취 행위’에 거부감을 느껴 의료진이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고충에 비해 급여 또한 다른 과에 비해 높은 편은 아니니 지원해 주시는 분들이 적어 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것이죠”라는 고충을 토로했다. 하 센터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명감’ 없이는 시작조차 어려운 일이 바로 ‘장애인구강진료센터’다.
장애환자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냐는 질문에 그는 올해 만난 한 ‘20대 초반의 환자’를 꼽았다. 중증 장애를 앓고 있던 그를 치료용 의자로 인도하기까지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첫 번째 방문에서 그 환자는 로비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을 거부했고, 결국 먼 곳에서 왔음에도 보호자와 함께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방문에선 엘리베이터를 타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결국 진료실 입구까지 왔다가 포기해 버렸다. 마침내 세 번째 ‘삼고초려’를 거치고 나서야 전신마취를 간신히 마쳐 치료를 진행할 수 있었다.
하 센터장은 “일반인에게도 드릴 소리가 들리는 ‘치과’는 공포의 대상입니다. 그러니 소리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장애인들은 오죽하겠습니까”라며 “그 환자의 경우 놀랍게도 한 번 수술실 의자에 앉은 이후로 진료받으러 올 때는 거부감 없이 편하게 들어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장애인 치료는 특별한 것이 아니고,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그의 치료철학이다.
‘돌고래 치과센터’…경기북부 장애인 의료허브 되나
현재 경기북부 유일의 센터인 만큼 ‘돌고래 치과센터’를 경기북부 의료허브로 발전시켜 나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이다. 돌고래 치과센터를 시작으로 민간지자체 차원이 도움을 받아 장애인치료의 질이 개선되고, 자연스레 경기북부에 신설될 장애인구강진료센터에게 노하우를 전해주어 자립을 돕겠다는 것.
“지금까지 고양시에 사는 장애우가 치과 치료를 받기 위해선 큰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서울권에 위치한 ‘중앙장애인구강진료센터’는 약 20km 멀리 떨어져 있고, 이마저도 진료 예약이 다 차버려 인천, 심지어는 강원도까지 내려가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라며 “이번에 개소해 약 6개월간 무탈하게 운영한 것도 고무적인 성과이지만, 그것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돌고래 치과센터를 경기북부 장애의료서비스의 핵심 거점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싶습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