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환경을 지켜주지 않는 국가
[고양신문] 환경(環境), 한자어 이름씨를 곱씹어본다. 환(環)은 반지 모양의 둥근 고리, 경(境)은 지경(地境)으로, 일정한 테두리 안의 땅을 뜻한다. 영어로는 environment다. 어원을 찾아보면 움직씨(동사)를 의미하는 en과 돌다, 둘러싸다는 뜻의 viron, 이름씨에 붙는 말꼬리 ment가 합쳐져서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도는 것을 뜻한다. 둥근 고리가 둘러싼 가운데 중심은 사람(인간)이다. 결국 환경이란 사람을 둘러싼 모든 것으로, 사람을 중심에 두고 사람을 우선하는 개념이다. 이 개념에 따르면 지구는 물론 우주에 존재하는 삼라만상 모든 것을 사람과 환경으로 나누고 구분할 수 있다. 환경이 건전해야 인간 삶도 안전하고 건강함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나라는 헌법 제35조에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분명히 선언했다. 국민의 '환경권'은 헌법에 보장한 권리다.
헌법에 '환경권'을 밝혔으니 국가는 국민을 위해 환경을 지켜야 한다. 어떤 환경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 <환경정책기본법> 제 3조 '정의' 항목에 지켜야 할 환경을 2가지로 명시했다. 자연환경과 생활환경이다. 조문을 보면 “'자연환경'이란 지하, 지표(해양을 포함한다) 및 지상의 모든 생물과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비생물적인 것을 포함한 자연의 상태(생태계 및 자연경관을 포함한다)를 말한다”고 적었다. 이어서 “'생활환경'이란 대기, 물, 토양, 폐기물, 소음ㆍ진동, 악취, 일조(日照), 인공조명, 화학물질 등 사람의 일상생활과 관계되는 환경을 말한다”고 명기했다.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환경 관련 법 조문이지만 머리에 담아두고 일상 생활 속에서 새겨볼 필요가 있다. 내 주변 환경은 건전한지, 누가 오염하거나 훼손하는 건 아닌지 살펴야 한다. 지금 도처에서 나도 모르게 내가 누릴 환경을 망가뜨리는 사건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과 신문, 인터넷에 중대한 환경 문제를 고발하는 뉴스가 이따금 오르긴 하지만 집중적으로, 지속해서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중 매체 종사자들은 자기네든 남들이든 한번 다뤘던 문제엔 별로 관심을 두려하지 않는다. 환경 현장을 전업 기자들이 별로 찾지 않다보니 환경 활동가와 시민들이 지키며 목청껏 외칠 뿐이다. 세계 어느 곳보다 생태 가치와 경관이 뛰어난 전라북도 서해안 바다에 세계 최장의 32km 둑을 쌓아 가로막고 천혜의 갯벌을 파괴한 이른바 새만금간척사업을 보자. 당초 식량을 생산하기 위한 농지로 쓴다고 했다가 계속 목적과 계획을 바꿔가며 천문학적 규모로 공사비만 퍼붓고 있다. 일부 바닷물이 들어와 간신히 살아남은 군산 쪽 수라갯벌을 정부가 마저 메워 새만금 신공항을 만들려고 한다. 국책사업이란 구실을 붙였다. 주된 목적이 주한 미 공군기지 확장이라는 건 상식이다.
오동필 씨를 비롯한 전북 지역 환경운동가와 시민들이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을 꾸려 수라갯벌 살리기 운동을 펴고 있다. 매월 갯벌 생태조사를 하고 공감하는 시민들과 갯벌을 걷는다. 저어새, 검은머리물떼새 같은 멸종위기 천연기념물을 비롯해 다양한 동식물이 거기에 산다. 파괴된 새만금갯벌 북쪽엔 서천갯벌, 남쪽엔 고창갯벌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로 경관이 아름답고 다양한 물새가 서식한다. 새만금 신공항을 앉히겠다는 수라갯벌이야말로 새떼의 길목이다. 환경 다큐멘터리 영화를 여러 편 제작한 황윤 감독의 <수라>는 수라갯벌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녔는지 생생히게 보여준다. 공동행동은 시민들의 서명을 모아 신공항 기본계획 취소 소송도 제기했다. 대중매체에서 보기 어려운 수라갯벌 살리기, 새만금 신공항 계획의 문제점은 여성 다큐 감독과 시민 활동가들 덕분에 어둠에 갇히지 않았다.
논란 높은 다른 공항 계획만 해도 제주 제2공항흑산도공항, 부산 가덕도 신공항이 꼽힌다. 가덕도 신공항의 경우엔 선거를 앞두고 거대 여당과 야당이 손 잡고 특별법까지 만들어가며 밀어붙였다. 경제성, 자연환경 훼손 따위는 아예 고려 대상도 아니다. 국립공원 설악산에 또 케이블카를 놓도록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 장벽을 낮춰주자 지리산 주변 여러 지자체들도 덩달아 김칫국을 마신다.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으로 하천 생태와 수질, 경관이 망가진 사태의 여파도 여전하다. 전국의 하천 어디를 가도 강바닥 파헤치고 콘크리트나 돌 제방 쌓는 공사가 끊이질 않는다. 파주 공릉천 하천정비사업도 마찬가지, 우리 세금으로 환경을 망가뜨리는 일에 정부와 지자체, 정치인들이 앞장선다. 저질러 놓고는 책임도 지지 않는다. 6월 5일은 세계 환경의 날이다. 환경을 지켜주지 않는 국가는 대체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정치인들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