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우러르는 시간

2023-06-19     김한수 작
김한수 작가

[고양신문] 며칠 전 일이다. 자유농장 앞에는 백여 평 밭농사를 짓는 아주머니가 있다. 그이와 함께 파라솔 밑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나비 몇 마리가 나풀거리며 작물 위로 날아다녔다. 그 모습을 본 아주머니가 저 놈의 나비들이 알 까려고 찾아왔다며 싫은 소리를 하자 나비들은 마치 말귀를 알아듣기라도 한 듯 우리 농장으로 날아가 버렸다. 

“자네는 농약을 안 쳐서 그런지 내가 나비를 쫓으면 꼭 자네 농장으로 날아가데.”

나는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네는 아주머니를 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는데 그건 나비가 아무리 많이 찾아와도 우리 농장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기 때문이다. 

거짓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자유농장에는 이렇다할만한 벌레피해가 없다. 일례로 이맘때면 많은 농가들이 이십팔점박이무당벌레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녀석들은 가지과 식물들을 좋아해서 유월이 되면 감자와 토마토와 가지의 잎을 야금야금 갉아먹어 그물망처럼 만들어놓는데 그 피해가 생각 외로 크다. 그래서 많은 농부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농약을 친다. 그런데 자유농장의 감자와 토마토와 가지 밭에는 구멍 뚫린 잎이 거의 없다. 그건 자유농장에는 수많은 천적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농장은 그 자체로 새들과 곤충들의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덕분에 식물을 먹고 살아가는 벌레들은 개체수를 불리지 못한다. 벌레의 삶을 생각할 때 자유농장에서 제일 불쌍한 건 매미이다. 자유농장의 느티나무에 매달린 매미는 채 오 분도 울지 못한다. 맴맴 소리가 들리는구나 하는 찰라 울음소리가 뚝 끊기고 새들이 날아간다. 

물론 자유농장에도 골치 아픈 벌레들은 있다. 일명 톡톡이로 불리는 벼룩잎벌레와 진딧물이 대표적인데 여느 농장에 비하면 그들이 입히는 피해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  어쨌건 자유농장에 벌레피해가 거의 없는 이유는 농장 식구들이 자연을 해치는 일을 아예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연을 해치는 방식에 의존해서 농사지으면 그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인간은 자연과 싸우지만 자연은 인간과 싸우지 않는다. 자연은 인간의 폭력 앞에서 자연이 파괴될 때 어떤 비극이 펼쳐질지 묵중히 보여주고 증언할 따름이다. 

진정한 농부는 게으른 농부라는 말이 있다. 게으른 농부는 풀이나 벌레들과 싸울 시간에 어떻게 하면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하나하나 방법을 찾아나간다. 그렇게 하다보면 자연을 섬긴 옛날 어른들의 삶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인간생태계나 사회생태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면 농사지으면서 목격하는 자연생태계의 작동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현대농업은 자연을 수탈하는 방식에 의존하면서 수많은 문제를 일으켜왔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역시 야만적인 방식으로 굴러가면서 수많은 비극을 양산해왔다. 누군가에게서 무엇을 빼앗으면 우리는 더 많은 걸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민주화된 사회에서는 서로의 삶을 보듬으면서 평등의 길로 나아가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결코 선택해서는 안 되는 길로 들어선 것만 같다. 시간을 거스르려는 사악한 무리들이 망나니의 칼춤을 마구 휘둘러대는 모습을 보면서 자꾸만 오랜 시간 하늘을 우러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