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도 N플릭스] 톰 크루즈도 눌렀던 80년대 넘사벽 청춘스타

맷 딜런 <살인마 잭의 집> (2019)

2023-09-26     유경종 기자
 <살인마 잭의 집>에서 살인을 예술이라 주장하는 연쇄살인범을 섬뜩하게 연기한 맷 딜런.

[고양신문] 지난주 80년대 초 책받침 여신들을 소재로 한 첫 칼럼(넘버4 책받침스타의 터닝포인트)을 올렸더니, 내용보다 첨부한 사진이 더 재밌다는 반응이 많았다. “40년이나 된 사진들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니, 대단해!” 물론 이 찬사의 이면에는 ‘쓸데없는 것들을 여태껏 끌어안고 있다니, 한심하군…’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시선을 기꺼이 즐기는 것이야말로 수집덕후들의 본분임을 되새기며, 내친김에 80년대 청춘스타에 대한 추억을 한번 더 늘어놓으려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80년대 초·중반에 여신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10대 후반 언저리의 꽃미남 남자배우들이 대거 등장한 시기가 그때이기도 했다. 헐리우드 연예가통신에선 그들에게 ‘브랫팩(Brat Pack,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들)’이라는 집단 애칭을 붙여주며, 이전 세대와는 차별화된 스타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브랫팩의 찬란한 출발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으니, 바로 1983년 작 <아웃사이더>다. 이 영화가 얼마나 특별한가는 포스터 한 장이 증명해준다. 

눈부신 라인업 <아웃사이더>

포스터에 등장한 주연배우 7인의 출석을 불러보겠다. 맨 오른쪽 팔뚝 문신을 드러낸 소년은? 맞다! 말이 필요 없는 헐리우드 간판스타 톰 크루즈다. 톰 크루즈 왼쪽 가장 귀여워 보이는 소년은? 맞다! E.T에서 자전거를 타고 하늘을 날았던 토머스 하우엘이다. 그 다음, 청자켓 주머니에 손을 넣은 녀석은? 맞다! <베스트 키드>(원제는 <카라데 키드>)의 주인공으로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았던 랠프 마치오다. 맨 왼쪽은? 맞다! <지옥의 묵시록> 마틴 신의 아드님이시자 <플래툰> 찰리 신의 형님 되시는 에밀리오 에스테베즈다. 그 위 나이가 좀 들어보이는 마초 스타일 청년은? 맞다! <사랑과 영혼>, <더티 댄싱>의 히어로 패트릭 스웨이즈다. 

(한 명 건너뛰고)오른쪽 위 흰 티셔츠를 입고 옆모습을 보이며 웃고 있는 친구는? 맞다! 헐리우드 최고의 섹시가이로 누님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던 로브 로우다. 여기에, 포스터에는 등장하지 않는 두 명의 스타가 더 있었으니, 한명은 바로 지난 칼럼에서 소개했던 다이앤 레인(여주인공 역)이고, 다른 한 명은 사진 속 하층민 패거리(글리저파)와 싸움을 벌이는 상류층 패거리(소셜파)로 출연한 레이프 가렛이다.(맞다! 70년대 후반 디스코 열풍 속에서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바로 그 미소년 가수!)  

<아웃사이더> 촬영장에서 톰 크루즈와 팔씨름을 하며 노는 코폴라 감독.

코폴라가 소집한 아이돌 단합대회  

이렇듯 현기증나는 라인업을 한자리에 불러모은 능력자는 바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다. 맞다, 소리 외치기도 입 아픈, <대부>Ⅰ·Ⅱ와 <지옥의 묵시록>으로 각종 상을 휩쓸며 헐리우드 최고의 명장으로 칭송받던 바로 그 분 되시겠다. 

베스트셀러 원작소설을 손에 쥔 최고의 감독이 가장 인기 있는 청춘스타들을 모아 만든 <아웃사이더>는 지금도 청춘 성장영화의 대명사 중 하나로 손꼽히곤 한다. 하지만 국내에선 8년이나 뒤늦게 개봉하는 바람에 영화 자체는 별다른 지명도를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연 배우들의 인기는, 굳이 원작영화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이미 한국에서도 하늘을 찌를 듯했다. 이 역시 지난번 칼럼에서 설명했듯, 일본의 스타 마케팅을 무작정 카피했던 당시의 기형적 문화산업 환경이 빚어낸 결과였다.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출연 배우들의 사진. (왼쪽부터) 로브 로우, 랠프 마치오, 토마스 하우엘, 작은 사이즈의 레이프 가렛. 맨 오른쪽 톰 크루즈는 1987년 으로 스타덤에 오른 직후 잡지에 실렸던 모습이다.  

일본과 한국에서 유난히 인기

이유야 어쨌건, 브랫팩 스타들 중 국내에서는 누가 가장 인기가 있었을까? 재밌는 사실은 지금 기준으로는 투톱에 해당할 것 같은 톰 크루즈와 패트릭 스웨이지는 당시에는 인기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스타포토 목록이 그 증거다. 80년대 중반까지 톰과 패트릭의 사진은 아예 등장하지 않다가, 톰 크루즈의 경우 <탑건>과 <컬러 오브 머니>를 찍은 1987년, 패트릭 스웨이지의 경우 <사랑과 영혼>을 찍은 199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책받침 사진 나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당시 최고의 인기스타는 포스터 사진 설명에서 일부러 건너뛴 뒷줄 중앙의 인물, 축구로 치자면 원톱 공격수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바로 그 배우, 맷 딜런이다. 10대 후반에 <아웃사이더>를 찍은 맷 딜런(1964년생)은 가히 80년대 초·중반 일본과 한국에서 남자배우 넘사벽(넘볼 수 없는 4차원의 벽) 톱스타였다. 강렬한 반항아의 이미지와 순수한 청춘스타의 풋풋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던 그는 유난히 사진발도 잘 받아서 당시 영화잡지들의 센터폴드(잡지에 삽입되는, 가운데가 접힌 대형 브로마이드)를 도맡다시피 했다.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맷 딜런의 사진들. 보시다시피 가운데가 접힌 대형 사진이 많았다. 가운데 일본 잡지에서도 '1984년 인기 남자배우 1위'가 맷 딜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배역마다 척척 소화하는 연기파 배우 

하지만 꽃이 지는 게 순식간이듯, 청춘스타라는 이미지가 마냥 오래 갈 순 없는 법. 맷 딜런이 존경스러운 이유는 아이돌스타라는 거품욕탕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몇몇 브랫팩 스타들과 달리, 차근차근 연기파 배우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영화보다 포스터가 먼저 인기를 끌었던 <클럽 싱글즈>(1992년), 의뢰인을 배신하고 카메론 디아즈의 매력에 홀딱 반하는 웃기는 탐정역으로 나오는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1998년), 바람둥이 상담교사로 등장하는 막장 사기극 <와일드씽>(1999년) 등에서 맷 딜런은 때로는 섹시하고 매력인, 때로는 느끼하고 밥맛 없는 캐릭터를 척척 연기하며 잊을만하면 한 번씩 반가운 얼굴을 보여줬고, 2000년대 이후에도 <크래쉬>(2006년), <더 트루스>(2014년), <선라이트 주니어>(2015년) 등에서 개성 넘치는 연기를 펼쳤다.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1998)에 출연한 맷 딜런.

2000년대까지는 비디오 가게 진열대를, 이후에는 VOD 서비스를 뒤적이다 가끔씩 맷 딜런이라는 이름을 만나면 열심히 스타포토를 모으던 시절이 자동으로 떠올라 괜시리 반가웠다. 

지금까지 그가 주·조연 가리지 않고 출연한 작품은 무려 60여 편에 이른다. 장르도 비중도 영화의 국적도 제각각이지만, 맷 딜런은 어떤 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몫을 하는 배우임을 증명해내고 있다. 마치 어떤 음식재료를 가져다 줘도 먹을만한 요리 한 접시를 뚝딱 만들어 내놓는 베테랑 주방장처럼 말이다.   

논란 몰고 다니는 트리에의 작품들

아쉽게도 N플릭스에서 맷 딜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은 몇 안된다. 하긴, N플릭스는 영리를 추구하는 콘텐츠 기업이지 공공 라이브러리가 아니니, 탓할 수는 없다. 그나마 검색되는 작품 중 하나를 고르라면 <살인마 잭의 집>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살인마 잭의 집>은 누구에게 추천할만한 영화가 결코 아니다. <백치들>, <어둠속의 댄서>, <도그빌>, <안티크라이스트>, <멜랑콜리아>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인간 심리의 이면을 가장 강렬하게 파헤치는 최고의 예술감독”이라는 칭송과 “범죄자에 가까운 가학적 변태”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2019년에 찍은 이 영화는, 평범한 작품이라곤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트리에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트리에 감독은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재주에 있어서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일인자다. 필자 역시 가끔씩은 독한 맛 영화를 일부러 찾아보기도 하지만, 연쇄살인마의 회상을 따라가며 전개되는 이 영화의 몇몇 장면들에서는 잠시 화면을 멈추고 심호흡을 하거나, 아예 빠른화면으로 한 대목을 건너뛰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을 예술이라 주장하는 주인공의 궤변, 도덕률에 대한 위악적 전복, 음악(무려 글렌 굴드의 피아노 연주 홈비디오!)과 미술, 건축, 다큐필름과 애니메이션 등 장르와 형식을 넘나들며 번뜩이는 영감과 은유를 자유자자로 혼합하는 감독의 연출솜씨에 낚여 결국은 영화의 엔딩 크래딧을 보고 말았다. 기껏해야 영화 한 편이 죄책감과 성취감을 한꺼번에 안겨주다니, 평범한 경험은 아니었다.

'살인마 잭의 집' 의 한 장면.

말리고 싶지만… 궁금한 걸 어쩌나

이 영화에서 맷 딜런은 그가 아니면 과연 누가 이 모순적이고도 기괴한 역을 소화했을까 싶을 만큼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펄프 픽션>의 우마 서먼, <베를린 천사의 시>의 브루노 간츠의 최근 얼굴도 볼 수 있는 이 영화에는 놀랍게도 한국의 유명배우도 카메오로 아주 잠깐 출연한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살인마 잭의 집>을 보려 한다면 일단은 말리고 싶다. 미리 말하지만, 여성과 아이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하는 장면까지 일말의 주저함이라곤 없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한들, 맷 딜런의 명연기도 궁금하고, 라스 폰 트리에의 부조리한 자의식과 심리적 맞짱도 떠보고 싶고, 카메오로 나왔다는 한국배우가 누군지도 확인하고 싶다면 별 수 없겠다. 마음 단단히 다잡고 검색 버튼을 누르시는 수밖에….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지 않은가.

명화(아래 그림)의 구도를  패러디한 영화 속 한 장면.
트리에 감독에게 영감을 준 외젠 들라크루아의 작품 '단테의 조각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