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쇄 종이의 ‘재탄생’... “장애인들과의 조화 표현”
장애인센터서 파쇄업무 맡으며 파쇄 종이로 반죽 만들어 작업 내달 24일부터 7일간 전시
[고양신문] “기쁨터에서 일하며 얻은 영감을 작품으로 풀어냈어요. 벽, 캔버스 틀, 화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뤄 다차원적 공간감을 보여줍니다.”
조성재 작가가 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서 일하며 느낀 것들을 풀어낸 작품을 내달 24일부터 30일까지 고양아람누리 갤러리누리 5전시장에 전시한다.
조성재 작가는 일산동구 식사동에 있는 기쁨터 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서 작년 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21개월간 공익 근무했다. 그간 일하며 느낀 것들을 풀어낸 작품에서는 물감, 천, 틀, 공간 등 일반적인 회화의 구성요소와 그 요소에 가려져 있던 부분의 조화를 보여준다. 이번 작품을 통해 다차원적, 공간적 화면을 제시한다는 조 작가는 작품에 ‘가려져 있던 소외계층을 볼 수 있도록 구멍을 뚫어준다’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런 메시지는 캔버스를 뜯어낸 틀에 모양을 잡아낸 그의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 작가의 작품은 캔버스 틀, 파쇄 종이가 주된 재료다. 장애인센터에서 파쇄하는 일을 맡았던 그는 종이 안에서 단어, 문단, 페이지로 나열돼 있던 것들이 뒤죽박죽 갈리고 섞여 한 통으로 모이는 모습에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는 “본래의 의미를 상실해 존재가 없어진 걸로 봐야 할지, 갈리고 섞이면서 새로운 존재가 생겨난 걸로 봐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은 작은 조각으로 파쇄된 종이를 물에 불린 후 풀을 섞어 반죽으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그 반죽을 캔버스 위에 깔아둔 비닐에 원하는 모양대로 올린다. 반죽이 마르면 생각해 둔 모양에 맞춰 캔버스 틀에 맞춰 끼우고 색채 작업에 들어간다.
“일하면서 나온 파쇄 종이를 작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센터에서 흔쾌히 허락해주셨어요. 지금은 일하고 있진 않지만 계속해서 가져갈 수 있도록 해주셨죠. 파쇄 종이 세 묶음이 나올 때쯤 센터에서 연락을 주세요.”
모든 작업을 마치면 근사한 모양의 작품이 완성된다. 파쇄 종이가 작품으로 재탄생한 작품에는 ‘분리돼 생활하는 장애인들이 사회에서도 조화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그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의 작품에서 또 다른 독특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캔버스 틀을 이용한 작업이다. 버려진 캔버스를 치우면서 정교한 캔버스 틀에 마음을 뺏겼다. 캔버스 틀을 이용하기 때문에 조 작가의 작업은 캔버스를 뜯어내는 일로 시작한다.
“2년 전쯤인가 학교 회화과 건물에서 청소 알바를 하게 됐어요. 주 업무가 복도에 버려진 캔버스를 치우는 일이었는데 그러면서 다양한 크기의 캔버스를 100개 정도 얻게 됐죠. 캔버스 틀, 벽, 화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뤄 환영적인 공간감 말고 실질적인 공간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조성재 작가는 완벽한 작품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반죽이 얼마나 잘 마르는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반죽에 물이 섞여있다 보니 마르면서 크기가 줄어들거나 연결부가 찢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때문에 예상과는 다른 크기로 완성되면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올해 3월부터 작업을 시작했다는 그는 일, 작업, 운동을 병행해야 해 힘들었지만 이보다 힘들었던 건 반죽 상태를 관리하는 것이었다고 털어놨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 머릿속에서 그려보고 직접 스케치해 정확한 치수를 정해요. 모든 걸 정해 둔 후 작업에 들어가죠. 반죽이 쪼그라들거나 변형이 오면서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완성될 때가 종종 있었어요. 세 번이나 다시 만들어야 했던 작품도 있어요. 한번 말리는 데 이틀은 족히 걸리기 때문에 반죽 마르는 상태에 따라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죠.”
반죽 특성 때문에 힘든 점도 있었지만 형태를 잘 잡아 완성해 내면 이만큼 뿌듯한 일도 없다. 파쇄지를 이용한 반죽이다 보니 울퉁불퉁한 모양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는 마른 반죽이 깔끔한 직선을 만들어 낼 때 가장 기쁘다고 설명했다.
어릴 적부터 다른 학원보다 미술학원에 가는 걸 좋아했던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미술을 시작했다. 취미로 시작했던 미술에 진심을 다하기 시작했던 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다. 대입을 준비하기엔 늦은 시기였지만 좋은 결과를 내 현재는 세종대학교 회화과에 재학 중이다.
“서예를 하시는 아버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는 어머니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아요. 회화하는 친구들 몇몇은 부모님들이 작업하는 걸 반대하시기도 해요. 저희 부모님은 회화작업에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시니 감사하죠.”
다음 달 있을 전시를 위해 계속해서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는 그는 작품 20점 이상을 준비해 걸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생긴 수익 중 절반은 기쁨터에 기부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전시 전까지 최대한 많은 작품을 준비할 거예요. 이번 전시에 걸리는 작품은 저만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수익 절반은 기쁨터에 기부할 생각이에요. 이번 전시를 잘 끝내면 내년에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도 준비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