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구 칼럼] 당신은 어디 사람입니까?

2023-12-06     정범구 전 주독일 대사
정범구 전 주독일 대사

“어디 분이세요?‘
초면에 흔히들 던질 수 있는 질문이다.
부산 사람이라든가, 광주, 대구, 또는 수원 사람, 아니면 “제주도우다” 하는 대답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고양시에 살고 있는 당신은 위의 질문에 선뜻 “고양 사람”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일산 신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습관적으로 “일산 살아요”라고 대답하겠지만 “고양시 살아요”라고 말하려면 약간의 설명을 덧붙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삼송, 원흥, 그리고 앞으로 창릉 신도시까지 개발되면 이 지역 주민들은 어떤 정체성을 갖게 될까? 서울로의 출퇴근 거리가 고양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거리보다 더 가깝게 느껴질 경우에 말이다.

최근 뜬금없이 제기된 김포시 서울 편입문제를 둘러싸고 그 불똥이 고양시로도 튀고 있다. 일부 정당이 내건 서울 편입 촉구 현수막들이 처음에는 뜬금없어 보이더니 정치권에서 계속 군불을 때 대니 자연스레 시민들 입줄에도 오르내리게 된다. 김포시 서울 편입 문제는 그 문제가 제기된 시점으로 보나, 관련법의 통과 가능성으로 보나 여러모로 현실적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집권당이 선거용 불쏘시개로 내건 혐의가 짙다. 그럼에도 그 불씨는 또 쉽게 사그러 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불똥이 튀어 고양시에서도 서울시 편입논란이 일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고양시가 서울로 편입되면 정말 집값이 올라가고, 고양시민들은 모두 서울시민의 우쭐한 계급장을 달고 싶어 하는 것일까?

고양시 곳곳에 내걸린 '고양시 서울편입 지지' 현수막

이런 문제를 풀어보고자 지난 11월 20일 고양신문 주최로 토론회가 열렸다. 발표내용 중 특히 눈길을 끈 것은 김범수 자치도시연구소 소장이 인용한 자료였는데, 2010~2019년간 고양시로 전입한 인구는 89만4009명, 이 기간 고양시를 떠난 전출인구는 80만1099명이란 것이다. 9만2000여명이 10년간 고양시를 지키고 있는 동안 80여만 명의 인구가 들고 났다는 것이다. 

선뜻 납득이 가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 통계로만 보면 고양시 인구 이동은 매우 빈번한 편이다. 서울에 비해 저렴한 주거 비용을 잦은 인구 이동의 한 원인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인구 중에 비싼 서울 집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고양시에 거처를 둔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고양시민의 대부분은 단지 ‘싼 집’을 찾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단 말인가? 이 말에는 아마 저항감을 가질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서울 주변의 그 수많은 ‘위성도시’들 중 굳이 고양시를 택한 사람들에게는 나름 그들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특히 나의 경험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추측해 본다.

첫째, 고양시는 ‘이주민의 도시’이다. 다양한 배경을 갖는 이주민들이 ‘원주민의 텃세’를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어우러지는 도시이다. 나는 충북 음성이 태 묻은 고향이지만 전국을 떠돌며 살았다. 서울에서, 경기도 여러 지역에서, 충북에서 살아봤지만 고양시만큼 편안함을 느껴본 곳이 없다. 고향 잃은 이주민들에게 고양은 정말 고향 같은 곳이다.

둘째, 고양시는 눈높이가 편한 도시이다. 일산신도시 재개발 문제가 걸려 있지만 고양시는 어디를 가나 눈 들면 바로 시원한 하늘이 펼쳐져 있는, 갑갑하지 않은 도시다.
얼마 전 고양신문이 주최한 걷기 행사에서 25km 구간을 걸었다. 호수공원에서 출발해 한강을 끼고 행주산성을 거쳐 북한산까지 이어지는 길이었다. 행주산성에서 북한산까지는 창릉천을 따라 걸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고양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걷기’를 통해 새롭게 발견한 고양시는 경이로웠다. 도시와 자연이 이렇게 하나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니.

'2023 고양바람누리길걷기축제' 참가자들이 창릉천 수변산책로를 따라 삼송지구 구간을 걷고 있는 모습.

최근 정발산 산보길에 아는 사람을 만났다. 어느 방송국 이사장을 맡고 있는 분이다. 정발산에는 요새 맨발걷기 열풍에 따라 황톳길이 새로 생겼는데 그 한쪽 구석에 발을 씻는 곳이 있다. 그 자리에서 서로 열심히 발을 닦다가 눈이 마주쳤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아는 사람이 동네사람이라는 게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서울 사람들끼리 서울에서 만났어도 이렇게 반가웠을까?

“당신은 어디 사람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