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걱정없이 맘껏 땔 수 있으니 이만한 게 없지”
연탄 때는 고양시 116가구
3명 사는 집에서 하루 12장
기름보일러는 1.7배 비싸
“지역사회 연탄 후원 필요”
[고양신문] “우리같은 사람에게 연탄보일러는 선택이 아니에요. 연탄은 싸고 후원도 많아 걱정없이 따뜻하게 땔 수 있죠. 겨울철 연료비로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돼요.”
1981년부터 덕양구 화전동에서 43년을 살아온 정명순(가명, 65세)씨 이야기다. 정씨 집은 화랑로 80로에 사는 가구 중 유일하게 연탄보일러를 사용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옆집 2가구가 더 있었지만 모두 화전동을 떠나면서 정씨 집만 남았다.
밥상공동체복지재단·연탄은행이 발표한 ‘2023년 전국 연탄사용가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3년 고양시 연탄사용가구는 총 116가구다. 2021년과 비교해 줄어든 수치지만 여전히 연탄에 기대 겨울을 나야 하는 이웃들이 있다.
6월까진 난방 필요한데…
정씨는 20평 남짓한 집에서 남편, 딸과 살고 있다. 집 뒤쪽으로 가니 3구짜리 연탄보일러 앞으로 다 쓴 연탄 몇 장도 보였다. 집 옆쪽으로는 창고에 연탄 600여장이 쌓여있다. 한 달 보름 정도를 쓸 수 있는 양이다.
정씨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연탄보일러부터 살피고 하얗게 재가 된 연탄을 꺼내고 새 연탄을 넣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빨갛게 달아오른 연탄이 방 안 구석구석까지 데운 덕에 지난밤도 잘 지냈다.
정씨네 가족이 겨울철 한 달을 지내기 위해선 연탄 360장이 필요하다. 한번 불을 땔 때 구멍 하나에 연탄 두 장씩 넣어 방과 거실 총 3군데를 데운다. 오전, 오후로 한 번씩 교체하니 하루에 총 12장을 사용하는 셈이다. 정씨는 “최근들어 연탄이 잘 깨지고 전에 비해 빨리 연소되는 것 같다”며 “아껴 써서 이 정도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겨울에만 쓰는 것은 아니다. 10월부터 가동을 시작한 정씨네 연탄보일러는 다음 해 여름까지 쉬지 않고 돌아간다. 겨울철보다 쓰는 양은 줄어들지만 초여름인 6월까지는 난방이 필요하다. 바깥 기온은 평균적으로 영상 20도를 웃돌지만 집 안에서 온기를 느끼려면 하루에 최소 연탄 5~6장을 태워야 한다. 한여름에도 종종 불을 넣어야 할 때가 있는데 바로 장마철이다. 집안에 가득 찬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선 연탄보일러 역할이 필수적이다.
화전동은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 많다. 정씨를 비롯해 화전동에서 연탄을 사용하는 이들에겐 도시가스를 쓰고 싶어도 비싼 설치 비용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또 연탄사용가구 거주자 대부분이 수급자, 독거노인 등 주거취약계층이다 보니 연료비가 비싼 기름보일러로 변경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정부가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 등을 대상으로 난방용 등유·LPG 구입비를 지원하지만 그외 연계망이 없어 계속 자체적으로 연료비를 감당하긴 쉽지 않다.
정씨 집을 예로 들면 세 사람이 사용하는 연탄의 월평균 사용량은 360장이다. 연탄 하나당 850원이니 월 30만6000원이다.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면 금액이 약 1.7배 뛴다. 혹한기를 비롯한 겨울철에는 등유 1.5드럼 이상이 필요한데 약 50만원이다.
정씨 집 앞 골목 가게에서도 연탄난로로 난방한다. 노인들이 연탄을 교체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연탄을 쓰는 건 다른 난방기구에 비해 가격 대비 따뜻하기 때문이다. 정씨도 한때 기름보일러로 교체했지만 기름값이 부담돼 다시 연탄보일러를 쓰게 됐다. 정씨는 “기름보일러로 바꿨다고 해서 마냥 편하고 좋았던 건 아니”라며 “연료비가 걱정돼 아껴 쓰기 바쁘다 보니 조금이라도 맘 편히 쓸 수 있는 연탄보일러가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 지도 내 핀을 클릭하면 동별 연탄사용가구 수(2021년, 2023년/ 고양시 추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도에 게재된 핀 위치는 구글에서 동 이름을 검색했을 때 나온 곳으로 임의 설정했습니다.
고양시 연탄 때는116가구
이중 화전동 25가구
수급자·차상위계층 등 71%
밥상공동체복지재단·연탄은행이 발표한 ‘2023년 전국 연탄사용가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연탄사용가구는 총 7만4167가구다. 이중 수급자·차상위·소외가구가 86.3%를 차지한다. 경기도 내 연탄사용가구 수치는 4407가구로 전국에서 네 번째 큰 규모다. 2021년과 비교해봤을 때는 5550가구에서 20%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연탄은행은 연탄사용가구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도시개발에 따른 주거환경 변화 △도시재개발에 따른 이사 △건강악화로 인한 요양원 입원 △질환에 의한 고령층 사망 등을 꼽았다.
고양시 연탄사용가구도 2년 전에 비해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2023년 고양시 연탄사용가구는 총 116가구다. 화전동이 25가구로 가장 많았고 △관산동 16가구 △흥도동 11가구 △고양동 8가구로 그 뒤를 이었다. 2021년과 비교해 보면 169가구에서 53가구 줄어든 모습이다. 가장 큰 감소세를 보인 건 고양동, 흥도동, 효자동, 원신동이었다. 고양동은 30가구에서 8가구, 흥도동은 22가구에서 11가구, 효자동은 14가구에서 5가구, 원신동은 13가구에서 4가구로 줄었다.
연탄사용가구가 늘어나거나 생긴 곳도 있는데 화전동, 화정2동, 고봉동 등이다. 화정2동과 고봉동은 한두 가구가 늘었지만 화전동은 9가구가 늘어나 25가구로 나타났다. 연탄사용가구가 늘어난 것에 대해 고양시 관계자는 “연탄사용가구는 동에서 직접 사용가구를 발견해 전달하거나 연탄쿠폰 바우처를 신청하면서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집계상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실제 사용가구가 늘어났다기보다는 전에 파악하지 못했던 가구가 추가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3년 고양시 연탄을 사용하는 116가구 중 수급자·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광해광업공단의 연탄쿠폰 사업에 참여하는 가구는 총 83가구다. 파악된 전체 연탄사용가구 중 71%가 수급자·차상위·소외계층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외에 에너지바우처, 긴급복지지원금 등 정부에서 주거취약계층에 제공하는 혜택이 있지만 중복으로 지원할 수 없고 보조금만으로 연료비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때문에 각 행정복지센터에서는 지역 유관기관과 협력해 취약계층에 연탄 후원을 연계하고 있다.
화전동행정복지센터의 경우 가구별로 사용량을 파악해 전달하고 있다. 신도라이온스의 취약계층 연탄 후원, 꽃샘 추위를 대비한 한국항공대의 꽃샘연탄 나눔 등을 통해 연탄을 후원한다. 2017년부터 연탄 후원 봉사를 이끌어 온 김형락 한국항공대학교 교직원 봉사대장은 “연탄 봉사를 마치고 수혜자 집에 들어가 뜨끈해진 방바닥과 훈훈해진 내부 공기를 마주하는 것만큼 뿌듯한 게 없다”며 “이웃들이 한 해를 잘 날 수 있도록 지역의 많은 후원과 관심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