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구 칼럼] 동네일과 나랏일

2024-04-03     정범구 전 주독일 대사

[고양신문]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선거일이 다기오고 있으나 막상 선거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쓰는 건 조심스러워진다. 모든 진영이 선거 승리를 위해 혈안이 되어 있으니 말 한마디도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권자로서 할 소리는 해야 한다. 

고양시 4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의 후보가 당선을 위해 유권자들 앞에 이런저런 공약을 내놓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각 후보들이 내놓은 다양한 공약들이 다 실현된다면 고양시는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역이 될 것이다. 그러나 국정을 책임지는 국민의 대표들을 뽑는 선거치고는 국가운영에 관한 논란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지역에 관한 공약은 깨알 같지만, 국가가 당면한 주요위기들에 대한 해법을 다루는 논쟁은 드물다. 그런 공약이나 논쟁은 중앙당에 미루고 있는 것 같이도 보인다.

1, 2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지난달 12일 저출생과 기후위기 등 시대적 당면과제들에 대한 해법이 담긴 ‘10대 공약’을 각각 내놨다. 더불어민주당은 민생회복, 미래희망, 민주수호, 평화복원 등 4가지 가치를 중심으로 한 10대 공약을 내놨다. 민생안정, 저출생 극복, 기후위기 대처와 재생에너지 전환, 한반도 평화, 민주주의 회복 등이 그 주요 공약이다.

국민의힘은 저출생 대책, 격차 해소, 기후위기 대응 등 3가지 기조를 중심으로 한 10대 공약을 내놨다. 일-가족 모두 행복, 촘촘한 돌봄 양육환경 구축, 중소기업-스타트업 활력제고, 시민이 안전한 대한민국, 기후위기 대응-함께 하는 녹색생활 등이다.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기후위기, 양극화, 저출생, 한반도 평화 확보 문제의 심각성 등에 비추어 볼 때 양당이 내놓은 10대 공약이란 것도 구체성이 많이 떨어지지만, 그나마 이 공약들을 둘러싼 유의미한 토론이나 논쟁은 찾아보기 힘들다. 중앙당 차원의 선거운동에서도 이런 국가적 과제들에 대한 내용 있는 토론들보다는 상대당에 대한 비방과 공격이 주류를 이룬다. 선거전은 점차 과열되지만 국가적 의제들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선거가 아니라 내전을 치르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낌을 말한다.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지역적 의제들은 주민대표를 뽑는 지방선거에서 주로 다루고, 국민대표를 뽑는 총선에서는 국가적 의제들이 우선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당장 지역주민들부터 자신의 직접적 이해관계와는 약간 거리가 있어 보이는 국가적, 전 지구적 의제보다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와 관련된 이슈에 먼저 눈길이 가게 될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국회의원 후보가 너무 동네일에만 매달린다면 문제가 있다. 시·도의원, 시장이 할 일과 국회의원이 하는 일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국회의원은 어쨌든 국사(國事), 국정(國政)이 우선인 것이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이라고 하지만 탄소배출량에서는 세계 6~7위를 차지해서 국제사회로부터 ‘기후악당’이라는 소리까지 듣는 한국. 그러나 이제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의 과제는 단순히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산업경쟁력, 국가경쟁력을 결정짓는 주요 요인이다. 이미 기업들은 RE100(제품생산을 전량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것)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국제교역 무대에서 설 자리가 없다. 봄철뿐 아니라 사시사철 기승을 부리며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미세먼지에 대해 누구도 고민하지 않는다.

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 문제는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이지만, 이번 총선을 앞두고 이에 대한 적극적 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저출생 문제의 심각성은 이제 대한민국 소멸까지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에 대한 정치권 대응은 미미하다. 윤석열 정부 등장 이래 더욱 첨예화하고 있는 남북긴장과 대립 격화는 특히 접경지역에 살고 있는 고양시민들에게는 민감한 문제이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전쟁위협을 해소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토론은 언젠가부터 실종상태이다. 이런 문제들이 사실상 총선에서 정당간 치열하게 토론되어야 할 주제이지만 현실에서는 한가한 이야기로 치부되는 것 같다.

정범구 전 주독일 대사

물론 국회의원 후보가 수퍼맨은 아니다. 하늘 아래 존재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파악하고 해법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를 왜 하려고 하는 건지, 이 나라를 과연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갔으면 좋겠는지, 이런 이야기도 좀 하자는 말이다. 국회의원이 골목대장을 뽑는 선거는 아니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