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감흥, 빛나는 위트… 경계 넘나드는 자유분방 예술세계

전시 <그림 깨우기 : 크리스토프 루크헤베를레> 독일 신 라이프치히 화파의 선두주자 7월 7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

2024-04-12     정미경 전문기자

[고양신문]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화가의 전시가 고양시립 아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고양문화재단이 기획한 <그림 깨우기 : 크리스토프 루크헤베를레>전이 지난달 28일부터 관람객을 맞고 있다. 1972년생인 크리스토프 루크헤베를레(Christoph Ruckhaeberle)는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독일작가로, 신(新) 라이프치히 화파의 선두주자다. 그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 런던 사치갤러리 등 유명 미술관과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다.

신 라이프치히 화파의 작가들은 독자적인 작업 스타일을 구축함으로써 회화의 정통성을 잇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루크헤베를레는 작품 속에 다양한 요소들을 배치하고, 중첩과 반복을 통해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세계를 구축해 왔고, 본인만의 확고한 예술 철학으로 작업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전시는 회화, 판화, 추상, 설치 작품 총 160여 점을 6개의 주제로 꾸몄다. △섹션1. 그들은 춤추지 않는다, 발끝으로 노래한다 △섹션2. 의미 있는 충돌=모양×모양×모양 △섹션3. 더 낮게, 더 가까이, 그리고 더 단순하게 △섹션4. 사건의 재구성-마법과도 같은 △섹션5. 공상의 부스러기들 △섹션6. 메이크업: 달라짐의 미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섹션 2에서 만나는 대형 조형작품. 

기법, 재료, 소재, 사이즈는 다채롭다. 자유로운 표현, 과감한 소재, 독특한 탐구 정신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재기발랄하다. 고독한 자아와 인간의 의미 등 무거운 주제를 위트있게 구현했다는 평을 받는다. 작품 대부분은 제목이 없는 ‘무제(Untitled)’이다. 의미를 생각하며 자신만의 제목을 붙여 보는 것도 재미있다. 천만 영화 <파묘>에 출연한 이도현 배우의 오디오 가이드로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친근하다.  

루크헤베를레의 작품은 색, 공간, 형태 등 모든 요소들을 깨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림 속 인물들은 때로는 미완성 퍼즐처럼, 때로는 끝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캔버스를 가득 메운 채 춤을 춘다. 춤은 캔버스의 틀을 벗어나 경계의 바깥으로 영역을 넓힌다. 각각의 전시 공간을 지날 때마다 바뀌고 중첩되는 패턴의 반복이 관람객들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섹션1. 그림 벽지 위의 작품들.

섹션1에서는 대형 그림 벽지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중앙에는 또 다른 그림이 걸려있다. 액자 속 액자의 형태다. 작가는 “그림이 또 다른 그림 속에 안착하는 것을 추구했다. 쌓기와 겹치기가 관건이다”라고 미술TV와의 인터뷰에서 말한다. 작가와의 인터뷰 영상은 전시장 초입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관람할 수 있다. 

작품 속에는 화려한 옷을 입고 동일한 동작을 취하고 있는 댄서들이 무수히 등장한다. 그들의 발은 옆사람과 연결되어 있다. 양팔은 허리춤에 올리고, 군무를 추며 노래를 부르는 듯 보인다. 반복되는 컬러와 패턴이 경쾌하면서도 코믹하다. 또 다른 작품 속의 등장인물은 막춤을 추는 것 같고, 무술을 하는 것 같다. 

섹션2. ‘의미 있는 충돌’에서는 판화부터 대형 조각 작품까지 다채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여성의 누드를 표현한 컬러풀한 목판화다. 섹션3에서는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듯, 혹은 요가 동작을 취하고 있는듯한 여인들이 등장한다. 작품 속 인물들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한편으로는 친근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색한 느낌이 포착되는 게 이채롭다. 휑한 눈동자와 약간 벌린 입, 한쪽 팔로 뒷머리를 만지고 있는 어떤 여인의 초상은 연극의 한 장면 같다. 팝 아트 스타일이다.

섹션4. ‘사건의 재구성’에는 조각 시리즈가 놓여 있다. 나무 판넬에 애나멜 도료를 칠한 추상 조형물이다. 삼각형과 사각형, 동그란 구멍 등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달라 보이는 형태가 흥미롭다. 섹션5는 흑백의 목판화와 실크스크린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뉴욕 모마에 소장된 작품과 비슷하다. 여성의 신체, 얼굴, 물건을 보고 있으면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다. 

섹션 4의 작품들. 

전시의 마지막 공간 섹션6은 마스크 시리즈다. 가장무도회의 광대, 우스꽝스러운 표정의 곡예사, 그리고 특이한 형태의 얼굴들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컷아웃(cut-out) 페인팅이라 불리는 4점의 신작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얼굴, 모자, 신발이 무중력 상태에서 캔버스 위를 제각각 춤추며 떠다닌다. 기하학적인 무늬와 강렬한 색채가 마티스의 작품처럼 인상적이다. 천을 이어붙여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마지막 대형 작품 앞에서는, 작품 속 캐릭터의 포즈를 따라하며 사진을 찍는 아이들이 많다.   

전시 제목 ‘그림 깨우기’에서 깨운다는 의미는 ‘잊고 있던 기억에서 새로운 감정을 발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림을 어떻게 깨운다는 것일까? 그것은 작가가 작업 과정에서 행해온 끊임없는 실험과 관련되어 있다. 작가는 점, 선, 면, 색 등 그림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구현함으로써 보는 이에게 시각적 생동감으로 다가온다. 전시장 초입에는 ‘깨어나라 그림이여. 춤추는 발이여, 나른한 팔다리여, 수줍게 가려진 얼굴이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이여, 이 세상을 이루는 모든 모양이여, 그리고 나의 눈이여…’ 라는 작가의 말이 적혀있다. 

어린이 관객이 작품속 캐릭터의 동작을 따라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연령대가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2007년부터 최근까지의 작품을 통해 작가의 폭넓은 여정을 살펴볼 수 있으며, 독일 현대 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운 다채로운 색감, 독특하고 다양한 예술적 표현, 그리고 캔버스 밖으로 확장된 설치 작품은 전시의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전시 관람료는 성인 1만8000원, 청소년과 어린이 1만4000원이며 고양시민 50% 할인 등 여러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체험할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고양시립 아람미술관(031-960-0180, 월요일 휴관)과 고양문화재단 콜센터(1577-7766), 홈페이지(www.artgy.or.kr)에서 확인 가능하다. 이번 전시는 7월 7일까지 계속된다. 

섹션 6에 전시된 작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