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값 오르면 부담은 자영업자 몫, 장사 시작 신중했으면”

나경호의 사람도서관 (14) 이석민 <대화동 가야밀면 요리사, 36살>

2024-05-08     나경호 작가

[고양신문] 최근 유튜브와 SNS에는 젊은 나이에도 장사와 사업으로 큰 성공과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자주 나와 자신의 성공노하우나 경험을 자랑하기도 하고 심지어 연예인 못지않게 큰 인기를 누리는 일들이 잦아졌습니다. 또 한편에서는 야채값 과일값이 올랐다, 자영업자들이 너무 힘들고 어렵다라는 기사와 뉴스들이 연일 쏟아져 나오는데 이럴 때마다 어디에 주안을 두고 세상을 바라봐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이번 사람도서관 인터뷰에서는 대화동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한 10년차 밀면집 '가야밀면'에서 근무하는 한 청년을 통해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과 지역 자영업자들의 고민을 함께 가늠해보면 좋겠습니다.

어린 시절의 풍경에 대해 들려주세요.

7살 때 즈음이었습니다. 저는 천안시 성환읍 신가리에 살고 있는 전형적인 시골 꼬마였습니다. 신가초등학교 근처 놀이터에 개나리가 가득 피어 있는 장면이 기억납니다. 2살 어린 친동생과 저를, 친구네 엄마가 필름카메라로 찍어줬던 기억이 납니다. 옛날에는 딱히 놀게 없었습니다. 다른 꼬마들이 하는 것처럼 팽이도 돌리고 딱지도 치고. 당시에는 동네에 이름 모를 벌레와 개구리들이 많았습니다. 나이를 먹고 도심으로 이사 오니 그 벌레와 개구리들을 다신 볼 수 없었는데 이게 누구에게나 당연한 풍경이 아니라는 걸 저는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개들을 풀어 키우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세퍼드 같은 커다란 검은색 개한테 오른쪽 궁둥이를 물렸습니다. 그 개를 피해 도망치려 뛰다가 또 물렸는데 당시 어린 저에게는 너무나 끔찍한 기억이었습니다. 10년 전부터 키우던 강아지가 몇 달 전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습니다. 그 강아지를 키우며 그나마 마음이 많이 좋아졌는데 지금도 길을 가다 큰 개를 보면 아직도 몸이 움찔움찔합니다.  

중고등학교를 인근 평택에서 다녔습니다. 중학교 때에는 학교에 무서운 친구들, 나쁜 친구들이 많았고 그래서 학창시절에 대해 저는 좋은 기억이 별로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때에는 요즘까지 만나는 좋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서 즐거워졌습니다. 그 친구들을 안 만났으면 아마 제가 좀 더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싶은, 그런 친구들이었는데 그래도 함께 어울리던 그 시절이 재밌었습니다. 독서실도 같이 몰려 다니고 학교 뒷산에 올라 밤에 번개탄에 고기도 구워먹고. 새까만 밤이라 너무 어두워서 고기가 익은지 안 익은지도 모르고 먹었는데 엄청 맛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시절을 지나고 군대를 다녀와 스물세 살에 고양시에 올라오게 되었고 지금은 13년차 고양시 주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간단히 개인소개를 해주세요.

올해 36살입니다. 대화동, 덕이동 가야밀면 주방에서 10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평택 spc빵공장에서 6개월 정도 일했는데 군대에 있을 때보다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공장에서 2교대로 12시간씩 일했는데 사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제게는 일들 하나하나가 너무 고되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그 빵공장에서 일하시다 얼마 전 퇴직하셨습니다. 아! 얼마 전 spc 빵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끼임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바로 그 공장입니다. 어린 시절에 제가 겪은 그 공장은 너무 크고 위태하고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빵을 만드는 일이 이렇게나 위험한 일이었다니. 저는 거기서 일하기 싫어 도망치듯 고양시로 올라왔습니다. 고양시에서 이모와 이모부가 운영하는 파스타집에서 3년 정도 일을 하다가 오늘날 가야밀면으로 상호명을 변경하고 10년째 대화동에서 밀면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실 고양시에 올 때만 해도 제가 이곳에서 이렇게까지 오래 살줄은 몰랐습니다. 

이모부가 배워온 밀면은 차가운 음식이라 손님들이 여름에 많이 찾는데, 겨울에도 팔아야 할 음식들을 고민하다 지금의 국밥이랑 고기국수 같은 메뉴가 추가되었습니다. 장사는 단골분들이 많이 찾으시고 잘 되는 편입니다. 아! 이모와 이모부가 사장이고 저는 그냥 월급쟁이 주방일꾼입니다. 주방장도 아닙니다. 저희 가게는 딱히 직책 같은 게 없습니다. 누가 무슨 일을 시키거나 지시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일하는 직원 한분 한분이 수평적으로 자기가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해내고들 있습니다. 다들 나이대가 제 어머니 나이 때이거나 더 많으신데, 서로 장난을 자주 치고 존중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고양시는 식당을 운영하기 괜찮은 곳입니까? 어떤 분들이 가게에 자주 오고 어떤 음식을 많이 찾나요.

대화동 저희 가게는 킨텍스 부근에 있다 보니 행사관련 스태프들과 관람객들, 설치나 장비일 하시는 분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하시는 일들에 따라 신기하게도 시키는 메뉴가 갈립니다. 장비일 하시는 분들은 고기국수를, 행사일 하시는 분들은 국밥 아니면 밀면 보통 이렇게 주문을 하십니다. 고양시가 식당을 운영하기 괜찮은 곳이냐고 묻는다면 웨돔, 라페스타, 원마운트 가로수길 등에는 가게나 상가들이 너무 많이 몰려있어서 오히려 장사가 잘 안 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자영업자 비율이 굉장히 높은 나라인 게 체감됩니다. (*한때 37%까지 치솟았던 대한민국 자영업자 비율은 차츰 떨어져 지난 2023년 처음으로 20% 아래가 되었으나 여전히 OECD국가 평균보다 높음. -작성자 주) 번화가를 돌아다니다 보면 공실인 상가들이 해마다 늘어나는 게 눈에 띄게 많아졌습니다. 

예전에는 공실이 생기면 그래도 금방 다른 가게나 상가들이 들어섰는데 어느 순간부터 임대가 되지 않고 빈 공간이 점점 더 늘어나는 등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을밀대나 서촌계단집도 그렇고 힘든 와중에도 잘 되는 가게들이 분명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장사가 좀 되는 가게들은 하루 장사를 돌리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바쁘게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 주변상권이나 인근상가들이 처한 현실이나 문제 등에 눈을 돌리기 어렵습니다. 장사라는 일이 점점 쉽지 않아져 요즘에는 오늘 하루만 살고 있다는 느낌이 매일 반복됩니다.
 

최근 원재료 가격이 많이 올라 자영업자들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본인의 생각은.

저희 비빔냉면의 주재료가 배인데, 최근 사과 배 가격이 많이 올라 이모와 이모부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채소가격도 많이 올랐다고 하고. 이모와 이모부님이 최근 뭐가 올랐다 뭐가 엄청 비싸졌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하는 일들이 점점 잦아졌습니다. 가게에서 일하다보면 지금 뉴스에서 보도되는 일부 품목들뿐 만 아니라 해마다 여러 재료들의 가격이 수시로 오르고 있다는 걸 일반 소비자들에 비해 많이 체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게에서는 재료들 가격이 아무리 오르고 비싸다해도 전부 나가야 하는 재료다 보니 안 살 수가 없고 이 부하와 손실은 전부 자영업자들의 몫으로 돌아옵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에게 전하는 노하우나 팁이 있다면.

이제 막 요식업을 하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지말라” 라고 하고 싶습니다. 너무 부정적인가요? 장사가 안 되면 정신적으로 힘들고 장사가 잘 되면 체력적으로 힘듭니다. 물론 체력이 힘든 게 무조건 낫습니다만. 사업이나 장사를 시작하는 분들 모두가 자신이 하는 일이 잘 안 될 수도 있다는 걸 염두하고 시작하는 분들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자신이 있거나 ‘나는 다를 거야’라고 생각하고 시작 하겠지만, 최선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폐업이나 최악의 경우 이후까지도 고려하고 고민해서 장사를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장사나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인스타그램이나 SNS를 보면 사람들이 자신의 하이라이트를 많이 보여주는데, 자신의 성공한 사업이나 장사, 그로 인해 여유롭고 호화스러운 자신의 일상을 자랑하는 모습이 많다보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장사나 사업의 좋은 점만 보고 뛰어드는데 우려가 많이 됩니다. 
 

지금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무엇을 해보고 싶나요.

몇 년까지만 해도 여행을 다니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라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최근에는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조차도 피곤해서 이제는 밖에 나가서 고생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입니다. 막상 놀면 좋은데 그 준비과정이 힘들거나 일처럼 느껴지게 되면 꺼려지는 것 같습니다. 차려진 밥상에, 편리한 장소에서 안락한 여행을 즐기고 싶지, 배낭을 메고 야숙을 하는 등 고생하는 게 너무나 싫습니다. 여행까지 와서 내가 왜 그 고생을 해야 한다니!

만약 이 가게가 갑자기 문을 닫게 되어 새로운 일을 구해야 한다면 무슨 일을 할지 생각을 해보진 않았습니다. 상상이 잘 안 갑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할지, 할 수 있을지. 아마 공장 등으로 돌아가 일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 매일 몸을 쓰는 일만 했으니 앞으로도 몸을 쓰는 일을 하며 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아! 영어공부를 해보고 싶습니다. 외국어를 잘하고 싶습니다. 클럽에 가서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고 같이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우정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석민씨가 일하고 있는 일산서구 대화동 가야밀면

청년 이석민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집을 산다는 일은 나에게 너무나 먼 이야기입니다. 어느 정도 돈을 모아야겠다, 그래서 무언가를 사고 싶다 싶을 정도의 큰 돈은 제가 감히 넘볼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최근 잠자리에 들기 전에 술을 조금씩 마시는 편입니다. 잠을 잘 못 자는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건강에 관심이 많습니다. 딱히 오래 살고 싶진 않았는데 그래도 부모님보다는 오래 살아야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제가 7살 즈음에 돌아가셨습니다. 간경화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는데 아버지가 술을 많이 좋아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술을 많이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 엄마랑 다투던 기억도 나고. 아버지가 술 때문에 돌아가셨는데 자기 전에 술을 마시는 제 모습에 자괴감이 들 때도 있어 그 때마다 운동을 자주 열심히 하려 합니다. 살다보면 저마다 이런저런 감정과 기분에 휩싸일 때가 많았는데 그래도 기분이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생각하며 스스로를 잘 다독이려 애씁니다.
 

지금 일하는 가게가 앞으로 어떤 곳이 되었으면 좋겠나요.

뻔한 이야기지만 그저 장사가 잘 되는 가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월급이 나오니까. 매장에서 일을 하다보면 이모와 이모부가 사장이다 보니, 곁에서 사장이 해야 할 일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정말 일이 너무 많습니다. 장을 보고 밑반찬부터 하나하나 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마련하고 손님을 응대하고 매장을 치우고 세금부터 각종 골치 아픈 모든 일 까지 등등. 그래서일까요? 저는 사장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젊은 나이에 성공과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자신을 마구 뽐내며 살아가는 시대이지만, 내 명의로 된 가게나 매장을 오픈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저는 하루하루 현재에만, 오늘만 살고 있습니다. 매일 일하면서 그냥 오늘 하루를 내가 버티었구나 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미래나 꿈, 새로운 일과 환경보다는 오늘 하루만 보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누구에게나 편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제가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만약 저에게 묘비명이나 부고문을 상상해 보라 한다면 '즐거웠다'라는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그렇게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그런 죽음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