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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말했다> & <스포트라이트> 거대권력과 맞서는 탐사저널리즘 드라마

2024-05-11     유경종 기자
영화 '그녀가 말했다'의 한 장면.

[고양신문] 최근 해외뉴스에서 “하비 와인스타인의 유죄 판결이 뉴욕 대법원에서 뒤집혔다”는 보도가 나왔다. 뉴스를 접하고 헐리우드 최대 ‘미투(Me Too)’ 사건의 장본인인 하비 와인스타인에 대한 단죄가 아직도 결말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재판부는 혐의와 관련 없는 증언이 일부 인정됐다는 법리상의 오류를 이유로, 앞서 항소법원에서 강간 및 성폭행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징역 23년을 선고받은 사건을 하급심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물론 이번 판결이 그에게 죄가 없다는 최종 면죄부를 안겨준 건 아니다. 또한 와인스타인은 LA 법원에서도 강간 혐의 유죄 판결을 받아 징역 16년을 추가로 선고받은 상태라 이번 판결과 상관없이 여전히 철창 안에서 지내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뉴욕 대법원이 여전히 가해자를 두둔하는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성폭력 범죄와 관련한 사법시스템과의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온 이들은 깊은 좌절과 우려를 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성폭력 당사자들이 또다시 증언석에 불려다니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미투 확산운동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초기 고발자 중 한 명인 유명배우 애슐리 저드는 “법정은 치유의 공간이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트라우마를 주는 공간”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와인스타인은 미국 영화계의 간판 제작자로서, 2012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될 정도로 강력한 문화권력을 누려왔다. 그랬던 와인스타인이 사실은 90명 이상의 여성에게 성폭력을 가한 파렴치한 범죄자라는 사실을 폭로한 건 2017년 ‘뉴욕타임스’에 실린 한편의 탐사보도였다. 

두 명의 여성기자가 오랜 취재를 바탕으로 쓴 기사는 가해자의 범죄행위와 피해자들이 당한 고통은 물론, 여성에 대한 왜곡으로 가득한 주류사회의 인식을 여지없이 고발했다. 기사의 여파로 권력자의 범죄를 묵인하는 영화계의 관행,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법제도의 한계 역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바로 <그녀가 말했다>(마리아 슈라더, 2022)이다. 

영화 '그녀가 말했다'의 한 장면. 캐리 멀리건(왼쪽)과 조 카잔이 연기한, 캐릭터가 다른 두 여기자의 활약상이  인상적이다. 

영화는 가치 있는 탐사보도가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무척 흥미롭다. 조 카잔과 캐리 멀리건이 연기한 두 명의 여성기자들은 좋은 기자가 갖춰야 할 덕목들을 차분히 보여준다. 의혹을 감지하는 직관력,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용기, 피해자의 마음에 다가서는 공감력, 결정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집요함과 인내심 등이 그것이다. 와인스타인 사건에 대해 좀 더 알고픈 이에게도, 탐사저널리즘 드라마의 진수를 감상하고픈 관객들에게도 <그녀가 말했다>를 주저 없이 추천한다.

함께 보면 좋을만한 영화가 넷플릭스에 하나 더 있다. 토마스 맥카시 감독의 2016년작 <스포트라이트>다. 영화의 제목은 미국 3대 일간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보스턴 클로브’지의 탐사보도팀 이름이다. 이들이 파헤치고자 하는 것 역시 성추행 사건인데, 이번에도 상대가 막강하고, 가해자도 한두 명이 아니다. 보스턴 가톨릭 교구 신부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아동 성추행 사건이 표적이기 때문이다. 보도팀은 집요한 취재를 통해 가해자들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과, 그 이면에 가톨릭 교단의 조직적 은폐가 있었다는 점을 밝혀낸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한 장면. 보스턴글로브지 탐사저널리즘팀의 팀플레이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인상적인 장면은, 중간에 결정적 단서를 손에 넣은 기자와 팀장이 보도시점을 두고 대립하는 씬이다. 더 큰 그림을 손에 쥘 때까지 침묵해야 한다는 주장과 미적거리다가는 특종을 놓칠 수 있다는 조바심이 한바탕 불꽃을 일으킨다. 정답이 무엇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진실과 특종 사이에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피곤한 숙명이 있을 뿐이다. 

이 영화는 결말에 언론의 냉정한 자기반성도 담아낸다. 수십년 전 초기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피해사실을 보스턴 글로브에 제보했지만, 단신으로 처리하고 망각해버렸던 것. 팀장은 당시 제보를 가볍게 여긴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었음을 고백한다. 이 장면은 기자가 지녀야 할 가장 밑바닥의 덕목은 바로 ‘스스로에 대한 정직함’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탐사저널리즘의 신화, 또는 정석과도 같은 두 영화를 무척 재미나게 감상했지만, 동시에 영화를 보는 내내 일종의 자괴감도 몰려왔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매너리즘에 시달리는 요즘, 과연 ‘기자’라는 호칭을 들을만한 열정이 남아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