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5] 발길 따라 눈길 따라… 정해진 코스에서 벗어나도 괜찮아

고양 구도심 답사 골목길 도시화석을 찾아서-관산동(하) 포토아카이빙②

2024-05-26     유경종 기자

오래된 옛집 바라보며 마을의 과거 모습 상상
무단투기, 주차공간 부족… 이웃 갈등 많지만
예배당과 점집처럼 이질적 요소 한자리 공존 

관산동 윗말의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인 벽제연립. 

[고양신문] 골목길 도시화석을 찾아 떠나는 관산동 답사의 마지막회다. 애초 2회 분량으로 생각했었는데, 4회로 늘어나버렸다. 시청률 높은 연속극도 아니면서 멋대로 분량을 늘려가며 지면을 허비해  독자들에게 죄송하기도 하지만, 골목나들이라는 게 처음부터 계획대로 진행되면 재미가 없다는 말로 변명을 삼아본다. 처음 구상했던 코스에서 좀 벗어나도 발길 닿는 대로 가 보는 게 산책자의 특권이다. 관산동 윗말과 안말을 산책하며 찍은 사진들, 그리고 관산동 토박이가 들려준 마을의 옛이야기를 토대로 관산동 포토아카이빙을 마무리해보자.

과거 마을 모습 상상하는 창, 옛집

구도심 도시화석의 정수 중 하나는 두말할 것 없이 옛집이다. 한 마을에는 시대별로 대개 비슷한 양식의 주택들이 들어서기 때문에, 옛 모습을 간직한 집이 한 채만 남아있어도 그 집이 지어지던 당시의 마을 풍경을 상상할 수 있는 힌트가 되어준다.  

관산동 윗말 유승아파트 앞에 딱 한 채 남아있는 옛집. 

관산동 윗말은 관산근린공원을 기준으로 동쪽과 남쪽, 서쪽마을로 영역을 세분할 수 있다. 그 중 유승아파트와 빌라들로 빼곡한 윗말 동쪽마을 한가운데에 딱 한 필지, 개발에서 빗겨난 옛집이 한 채 남아있다. 시멘트 벽체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단조로운 형태의 집이다. 벽면과 문짝, 그리고 집에 딱 붙어있는 전봇대에는 이삿짐, 사다리차, 중고차, 곤돌라, 인터넷TV 연락처가 어지럽게 나붙어있다. 옛집이 새집 입주자들을 겨냥한 광고판 역할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또 한 곳, 주택과 작업장을 겸하고 있는 듯한 윗말 초입의 벽제철공소도 기와지붕과 석재기둥, 철제대문을 가진 옛집으로, 한 시대 주거형태를 보여주는 도시화석이다.  

관산동 초입 새서울아파트 앞 벽제철공소. 

건물 한 채로 남은 사슴농장의 흔적

안말에서도 몇 집 찾아보자. 우선 벽제농협본점 우측 골목길에 옛집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원래 이 길은 도랑이 흐르던 물길이었는데, 하천을 복개해 도로가 됐다. 그 흔적이 파란색 기와지붕을 이고 있는 단독주택의 담벼락에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길가쪽으로 낸 뒷문의 아랫부분이 아스팔트에 묻혀 버린 것을 볼 수 있다. 복개도로를 내며 바닥높이를 훌쩍 높인 것을 보여주는 도시화석이다. 

벽제농협본점 옆 복개도로에 접한 주택. 사진에 보이는 문이 뒷문인데, 아래쪽이 아스팔트길에 묻혔다. 

파란색 기와지붕집 건너편에도 기와집이 두어 채 남아있는데, 지금은 리폼집과 기사사무실로 쓰이는 이 집 역시 길가 담장에 붙여 외부 화장실을 배치했던 옛집의 구조를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안말 중앙의 GS25 옆에는 대여섯 개의 창문이 횡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옛집이 한 채 남아있다. 살림집으로 보이지는 않아서 정체가 궁금했는데, 사슴농장의 부속건물이었다고 한다. 외부인 답사가의 궁금증을 풀어준 마을 토박이의 기억이 고맙지 않을 수 없다. 

(왼쪽부터) 사슴농장 부속건물. 담장에 외부화장실이 배치된 구조를 보여주는 집.  

몇 안 되는, 골목길을 지키는 나무들 

관산동 주택가는 녹지대나 화단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그러한 희소가치로 인해 오히려 돋보이는 나무들이 몇 그루 있다. 우선 안말 동우사우나 골목길 아래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규모가 큰 단독주택 대문 옆에 거목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다. 아마도 단독주택을 지은 토지주가 주변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우람한 나무 한 그루를 일부러 남겨둔 것이 아닌가 싶다. 오래된 나무들 역시 그 자체로 살아있는 도시화석이다. 

관산동에서 가장 높은 더퍼스트프라임 빌딩 뒷골목에도 옛길과 빌라들이 남아있는데, 건물 틈새에서 목련나무 몇 그루가 꽃망울을 가득 터뜨리며 골목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그곳을 찾았던 때가 4월 초, 짧은 개화시기에 윗말 목련나무를 만났으니 운이 좋았다. 

(왼쪽부터) 안말 동우사우나 아래 단독주택과 큰 나무. 윗말 빌라골목의 목련나무. 

가장 큰 갈등요소, 쓰레기 무단투기  

사람 사는 동네에는 어디든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관산동 골목길에서 감지한 가장 큰 갈등은 바로 쓰레기 배출문제였다. 아파트와 달리 일관된 시스템이 작동하기 어려운 빌라골목에서는 주민 개개인이 종량제쓰레기와 재활용 분리수거 배출 원칙을 잘 지켜야 한다. 하지만 공공질서 준수 정도가 사람마다 제각각이라 갈등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특히 오랜 시간 관행적으로 ‘쓰레기 포인트’가 돼 버린 몇몇 지점에서는 크고 작은 실랑이의 흔적들이 손글씨와 안내판으로 표출된다.  

가장 인상적인 문구는 누군가가 무단투기한 물건에 또 다른 누군가가 매직으로 써 놓은 경고의 메시지다. ‘자식들 일이 안 풀리지? 니가 무단투기해서 그래’. 무단투기로 인한 분노와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런데 그 아래 다른 글씨체로 ‘웃기지마 너나 잘 해’라는 댓글도 달렸다. 버린 사람보다 댓글 쓴 사람이 더 얄미울 것 같다. 그밖에도 ‘CCTV 찍고 있다, 차안 블랙박스가 보고 있다, 잡아서 과태료 청구하겠다’ 등등 쓰레기 무단투기로 인한 갈등을 보여주는 수많은 낙서들도 구도심 골목길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도시화석이다.  

누군가가 손글씨로 쓴 쓰레기 무단투기 경고문. 

미술 작품처럼 멋진 주차금지 돌덩이  

구도심에서 포착되는 또 하나의 주민갈등요소는 주차문제다. 그도 그럴 것이 빌라와 아파트들이 대거 들어서기 시작한 80년대 중·후반만 하더라고 승용차를 가진 집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주차공간을 고민하지 않고 건물들을 지었다. 

주차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을 곳곳의 활용지에 공공주차장을 조성하고 있지만, 집집마다 승용차 한두 대는 기본인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다양한 재질과 모양의 주차금지 설치물.

그래서 골목 담장마다 ‘내집 앞 타인 주차’를 금지하기 위해 타이어와 돌덩이, 블록, 시멘트구조물, 플라스틱통 등 다양한 설치물들이 동원된다. 그 중 한 빌라 담벼락 아래에서 눈길을 끄는 특별한 주차금지 설치물을 만날 수 있었다. 폐타이어와 돌덩이를 일렬로 늘어놓은 후 측면은 검정색 윗면은 흰색 페인트를 칠해놓았는데, 마치 거리의 조형미술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 ‘전국 골목길 주차금지 설치물 인기투표’라는 게 있다면, 주저 없이 한 표를 던질 만하다.    

멋진 미적 감각을 뽐내는 주차금지석.  

시멘트 골목의 녹색섬, 화분들 

구도심 골목길에서는 거리에 나와 있는 화분 군락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앞서 구도심이 녹지대에 대한 배려가 적다고 말했었는데, 이를 부분적으로 상쇄해주는 역할을 군집한 화분들이 떠맡고 있다. 

골목길의 화분군락에는 세 가지 용도가 포착된다. 하나는 관상용 화초를 키우는 화분 본연의 목적이다. 두 번째로 각종 잎채소와 열매채소를 키워내는 텃밭 기능을 하기도 한다. 화분마다 하나씩 꽂혀있는 지지대에는 머잖아 풍성한 풋고추나 가지 등이 매달리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부 골목길 화분들은 앞서 이야기한 주차금지 설치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녹지가 많을 것 같지만, 사실은 대부분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여 오히려 흙을 만나기 어려운 구도심 골목에서 또 하나의 도시화석 풍경을 연출하는 커다란 화분들이 초록색 생명을 키우고 있다.   

봄을 기다리는 골목길의 화분들. 기자가 3월 말에 찍은 사진들이라 아직 식물들이 식재되지 않았다. 

계량기 뚜껑을 눌러놓은 돌덩이들 

주차금지석, 화분군락과 함께 관산동 빌라골목 곳곳에서 눈에 띄는 풍경이 계량기덮개를 눌러놓은 돌들이다. 규칙적인 간격으로 설치된 계량기 뚜껑을 비슷한 크기의 돌덩이나 벽돌덩이로 눌러놓다 보니, 시각적으로 재미난 조형미가 연출된다. 

돌을 눌러놓은 목적은 두 가지다. 우선 바람에 뚜껑이 날아가지 않도록 눌러주는 것이고, 다음으로 사람들이나 차량 바퀴가 함부로 뚜껑을 밟지 않도록 시각적 경고를 주려는 것이다. 

계량기 뚜껑을 돌덩이로 눌러놓은 모습.

일상공간 곳곳에 포진한 교회와 점집

관산동의 종교시설을 살펴보자. 우리나라 어디나 그렇듯 숫자상 가장 밀도가 높은 종교시설은 개신교 교회다. 관산동에도 오랜 역사를 지닌 행복한교회(옛 벽제중앙교회), 도광감리교회 등이 십자가를 밝히고 있고, 단독건물과 상가건물에 들어선 작은 교회들도 여럿이다. 

관산동의 개신교 교회 건물. 

그런가 하면 주류 기독교와는 다른 교리를 가지고 있는 여호와의증인 왕국회관 간판도 윗말 상가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 

신시가지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주로 구도심에서 만날 수 있는 종교시설은 바로 무속신앙을 계승하고 있는 집들이다. 점집, 당집, 신당, 철학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대부분의 점집들이 불교를 상징하는 ‘만(卍)’자를 표기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무속신앙과 불교가 서로의 기복(祈福)적 요소들을 피차 적극적으로 수용한 오랜 역사의 산물이다. 

상가에 입점한 점집들.

관산동에서 만난 점집들은 형태상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상가에 간판을 내걸고 입주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빌라나 연립주택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이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 관산동 마을에서는 과외교습소 간판과 점집 간판이 빌라 벽면에 나란히 붙어있기도 하고, 예배당과 점집이 한 건물에서 공존하기도 하고, 빌라건물 맨 꼭대기에 붉은색 점집 깃발이 꽂혀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구도심 주민들 사이에서는 무속신앙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도시화석이다.   

주택에서 운영되는 점집들.

마을 뒤편의 대단지 아파트, 관산주공 

관산동에 구도심만 있는 게 아니다. 윗말 가장 위쪽에 넓게 터를 잡고 있는 관산주공그린빌아파트는 여느 신도시 아파트단지와 유사한 삶의 공간을 구현하고 있는 곳이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구도심과 신도시를 가르는 기준은 대단지 아파트인가 아닌가이다. 대단지 아파트는 상권과 휴식공간 등 다양한 주거 인프라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관산동 유일의 대단지아파트인 관산주공아파트.

관산초등학교를 바로 옆에 끼고 있는 관산주공아파트는 16개 동 1200여 세대가 입주한 대단지 아파트이고, 단지 앞 상가에는 여러 학원과 생활편의 매장들이 입주해 있다. 관산주공 주변만 보면 여느 신도시 아파트단지의 풍경과 유사해 보인다. 단지 바로 앞에는 몇 해 전 관산근린공원도 정비를 마쳐 신도시적 일상의 주요 요소인 녹색 휴식공간도 확보했다. 

‘마을’에 대한 인식 측면에서 관산주공아파트 주민들과 구도심 주민들 사이에 유사성이 더 클까, 차별성이 더 클까? 이 글에서 다룰 주제가 아니긴 하지만, 괜히 궁금해진다.      

관산동 윗말의 녹색쉼터인 관산근린공원.

가장 소중한 도시화석 ‘토박이의 기억’

이제 5회에 걸쳐 풀어낸 관산동 골목길 답사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운 경관과 풍경들을 만났는데, 마지막으로 소개하고픈 대상이 하나 더 남았다. 바로 기자에게 도움말을 들려준 관산동 삼화인테리어 엄호용 대표다. 겉으로 보여지는 풍경 이면에 담긴 지역주민들의 정서적 측면들은 토박이의 증언이 아니면 포착할 수 없는 요소였다.    

관산동의 흥미로운 역사를 세세하게 들려준 엄호용 삼화인테리어 대표. 

50대 초반인 엄 대표는 관산동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며 마을의 변천을 지켜봤다. 부친의 가업을 이어받은 건재상을 규모가 큰 종합 인테리어매장으로 키워냈고, 마을에서는 자율방범대와 새마을회 등의 일에 누구보다도 앞장서고 있는 부지런한 일꾼이다. 말 그대로 마을의 역사를 머리와 몸으로 체화하고 있는 인간 도시화석이 아닐 수 없다. 소중한 기억들을 들려준 엄호용 대표에게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전한다.  

구도심 골목답사는 결국 사람의 흔적을 더듬어보는 작업이다. 그 흔적은 물리적 풍경으로도 남아있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 정서적 풍경으로도 각인되어있다. 고양의 또 다른 구도심에서 만날 또 다른 인연들을 기대해본다. 

※ 도움말  엄호용 관산동 삼화인테리어 대표
※ 참고도서 『갈등 도시』 『대서울의 길』 (김시덕, 열린책들)

엄호용 대표가 앞장서서 참여하고 있는 관산자율방범대 사무실. 
(왼쪽부터) 관산동 중심의 더퍼스트프라임 빌딩, 안말 신성아파트, 윗말 유승아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