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석 칼럼] 서로 기대어

내일은 방학

2024-05-30     송원석 일산양일중 교사
송원석 일산양일중 교사

[고양신문] 15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생활하는 우리 학교는 전국 공립학교 중 가장 큰 규모의 중학교입니다. 교사 수만 100명 가까이 되다 보니 3개월의 시간으로는 동료들의 이름은커녕 얼굴도 익숙하지 않습니다.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3학년 담임교사만 16명입니다. 급식은 1부와 2부로 나눠 진행합니다. 먹는 일이 이렇게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교직 25년 만에 처음 느끼고 있습니다. 3월 2일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급식실에 내려가 아이들 질서와 안전을 챙기면서 하루의 안녕을 매일 기도합니다. 

다양한 사건, 사고가 매일 일어나지만 어쩌면 1500명 숫자를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그래도 규모가 크다 보니 해결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 친구 간의 갈등으로 심한 우울증에 빠진 학생, 부모와의 갈등으로 자존감이 무너진 학생, 특목고에 입학하기 위해 입시 스트레스가 심한 학생 등 전국의 모든 중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이곳에서도 매일 반복되고 있습니다. 

3학년 전체를 관리하는 부장 교사, 제가 올해 맡고 있는 직책입니다. 장기 결석생이 있으면 담임교사와 함께 가정방문을 합니다. 잘못을 저지른 학생들을 교육하고 상담도 합니다. 경험이 적은 담임교사의 멘토 역할도 능력은 부족해도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3학년부가 맡고 있는 행정 업무는 모두 제 손을 거쳐야 실행하게 되며, 학교의 모든 회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수업은 언제 준비하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퇴근 후에 또 하루가 시작된다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그런데 아침 출근길이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왕복 50㎞에서 20㎞로 단축된 출근 거리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몸은 힘든데, 마음은 늘 따뜻합니다.

가정방문과 계속된 연락에 결국 마음의 문을 열고 학교에 나와 이번 주 내내 수업을 듣고 있는 장기 결석생 M 때문인지, 매일 아침 서로의 자리에 힘내라고 달달한 간식을 놓고 사라지는 3학년 동료 교사들 때문인지, 전쟁 같은 급식 시간에 교사들을 돕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나와 봉사하고 계시는 학부모님들 때문인지, 학생 배식 도우미를 자원하지 않아 늘 인원이 부족한데, 살짝 찾아와 언제든 빈자리를 채우겠다고 말해주는 J, K, S 때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신규 교사로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어도 학생들과의 대화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주는 그들에게서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습니다. 이렇게 서로 기대며 우리 학교는 하루를 살아냅니다.

왜 전국 최고의 거대 과밀학급이 되었는지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49개의 교실도 간신히 마련해 행사를 할 곳도, 아이들이 쉴 곳도 부족한 이유를 잘 알지 못합니다. 작은 운동장 하나, 작은 체육관 하나로 1500명의 아이들이 체육 수업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이 구조적 문제로 많은 교직원들이 오래 근무하지 못하고 떠나고 있다는 사실만 알 뿐입니다. 4명이 근무해야 할 공간에 9명이 생활하며, 서로 지나갈 때마다 늘 부딪치며 그저 웃을 뿐입니다. 

서로 어깨를 내어주며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동료들과 올해도, 내년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살아내지 않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 길에 다른 이들도 어깨를 내주어 기대게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구체적인 대안을 함께 논의할 자리를 마련해주면 오늘도 서로 기대어 있는 우리가 한걸음에 달려가겠습니다.

3학년 16명의 담임 선생님과 나누어 먹을 상추가 텃밭에서 잘 자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