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 거미, 돌고래… 멋진 예술작품으로 변신한 포크와 스푼, 국자

[정미경 기자의 공감공간] 로스터리카페 ‘번트엄버’

2024-05-30     정미경 전문기자

심학산 돌곶이마을, 사방으로 탁 트인 경관 
조형작가 주인장이 직접 만든 작품 감상하며 
가장 맛있게 로스팅한 향기로운 커피 한잔   

시원하게 열어놓은 통창 너머로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진 로스터리카페 '번트엄버'.

[고양신문] 커피쟁이에게 커피 없는 하루는 상상하기 힘들다. 맛 좋은 커피는 하루를 활력있게 만들어 준다. 파주시 심학산 아래 돌곶이 마을에 자리한 ‘번트엄버(Burnt Umber, 공동대표 양현승·신혜리)’는 매일 신선하고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는 로스터리 카페다. 

카페는 2층짜리 암갈색 벽돌 건물에 아이보리색의 파라솔로 포인트를 줬다. 건물 위쪽에 영어로 상호가 쓰여 있어 언뜻 보면 카페인 줄 잘 모른다. 카페 입구에는 야생의 늑대 조형물이 맞아준다. 뜨거운 햇살을 막아주는 파라솔 좌석이 야외에 펼쳐져 있어 여행지에 온 듯하다. 진한 갈색의 육중한 출입문이 특이하다. 요즘같이 더운 날씨에는 통유리창을 모두 열어 놔서 에어컨이 필요 없다. 

비 오는 날 더 운치가 있는 번트엄버. 코너를 달리고 있는 늑대 조형물도 보인다.  

7년 전 50평 규모의 카페를 오픈한 주인장 부부는 둘 다 미술을 전공했다. 벽면과 천장, 테이블 위 등 곳곳에 크고 작은 조형물들이 걸려있거나 놓여 있다. 참새, 거미, 돌고래 등 곤충과 동물들이다. 언뜻 보면 일반적인 금속조각품인 듯 싶지만, 포크, 스푼, 국자 등 주방용품을 재활용해 만든 작품들이다. 금속조각가이기도 한 양현승 대표의 작품이다. 

인테리어는 빈티지와 모던함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파주 운정지구 개발로 공장들이 철거될 때 나온 가구와 기계들을 구입해 재활용했다고 한다. 기계 선반과 폐자재를 활용해 테이블을 만들고, 중고 의자들을 배치했다. 조명 갓은 에어컨 가스통을 잘라서 만들었다. 

양현승 대표의 조형작품들. 

메뉴는 커피 외에 차와 스무디, 에이드 등의 음료가 있다. 쌉쌀한 에스프레소 위에 달콤한 생크림을 얹은 아인슈페너와 말린 모과와 토종 생강을 오랜 시간 달여 만든 모과생강차가 인기다. 디저트로는 케이크를 구비했다. 검은깨로 만든 블랙세사미 케이크는 고소한 검은깨가 씹히는 식감이 독특하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당근, 단호박 케이크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티라미수, 얼그레이 케이크 등이 있다. 

직접 달여만든 수제 모과생강차와 아인슈페너 블랙세사미 케이크.

유난히 커피를 좋아하는 주인장 부부는 카페를 오픈하기 전부터 집을 홈카페로 꾸몄고, 음료에도 관심이 많아 꽃차 등 여러 가지 음료 만들기와 빵 만들기를 배웠다. 꽃차 소믈리에 자격증도 땄다. 양 대표는 우리나라 커피 1세대 바리스타에게 로스팅을 배웠다. 

“좋은 커피는 항상 신선해야 해요. 로스팅한 원두는 4일 안에 소진합니다. 그때까지가 제일 맛있거든요. 카페 이름 ‘번트 엄버’는 ‘태운 갈색’이라는 뜻이에요. 원두를 볶을 때 이 색깔에서 가장 고소한 맛이 나요. 누구나 선호하는 맛이기도 한데, 너무 많이 볶아도 너무 덜 볶아도 안 돼요. 번트 엄버 색깔에서 꺼내면 딱 그 맛이 납니다.”

커피를 내리고 있는 양현승 대표. 

커피는 바디감이 좋은 브라질 원두를 베이스로 해 온두라스, 킬리만자로, 엘살바도르의 프리미엄급 원두 4가지를 블랜딩해 쓰고 있다. 고소한 맛과 다크한 맛, 묵직한 바디감이 특징이다. 로스팅한 원두는 판매도 한다.

신선하고 깊은 향을 담은 커피. 

건물 1층은 양 대표 개인만을 위한 작업공간이자 작품 사진을 찍는 스튜디오다. 이곳에는 ‘탐욕’이라는 제목의 대형 작품이 놓여 있다. 움직이지 못하는 오토바이를 고쳐 복원한 것도 있다. 그는 버려지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재주가 있어 보인다. 양 작가가 이런 재료들을 활용해 작품을 만드는 이유는 뭘까.

“버려지는 수저나 포크는 인간들의 욕심이라고 생각해요. 식욕은 탐욕을 대표하지요. 인간의 탐욕이 동물들에게 피해를 끼치는데요. 도마 위의 작품들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시리즈예요. 낙후된 지역에 자본이 투입돼 개발되면 원주민이 떠나는 것처럼, 자연이 개발되면 동물들은 쫒겨납니다. 이처럼 인간만을 위한 이기주의를 도마 위에 표현하고 싶었어요. 중대사안을 토론할 때 ‘도마에 올려서 이야기해보자’라고 하잖아요.”

재활용 주방도구로 만든 새들이 도마 위에 앉아있다. 

처음에는 폐재료들을 활용해 작품을 만들었는데 현재는 재료를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 이런 작품을 현대미술에서는 앙상블라주(ensengblage)라는 개념미술의 한 종류로 부른다. 양 대표는 그동안 여러 차례 전시와 아트페어에 참여했고, 8월과 9월에도 전시가 예정돼 있다. 그는 대한민국 미술대전과 서리풀아트포아트 등에서 대상과 특선에 당선된 경력이 있다. 

부인 신혜리 대표는 “카페가 심학산 내부의 자연에 들어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인사를 전했다. 

“비용을 절감하려고 인테리어를 이런 콘셉트로 잡았는데, 요즘 뜨고 있는 인더스트리얼 카페처럼 특색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어요. 작품을 보는 손님들이 무척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하세요. 커피를 한번 마셔본 분들은 단골이 되고요. 주변 경치를 보고 작품 감상을 하며 커피를 드시고 가면 저희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번트엄버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 양현승 신혜리 부부.

현대식 건물에 들어가서, 빈티지 소파 위에 앉아, 폐자재로 만들어진 예술작품을 보는 것은 이채롭다.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눈을 돌리면, 창밖으로 보이는 녹색 풍경이 싱그럽다. 저 멀리 한강과 북한 지역까지 탁 트인 뷰가 그림 속 풍경처럼 평화롭다. 욕심을 내려놓고 싶을 때, 색다른 감성을 느끼고 싶을 때 오면 좋겠다.

로스터리카페 번트엄버
주소 경기도 파주시 서패동 246-3
문의 0507-1344-1315

대한민국미술대전 수상 작품 '탐욕'. 포크로 멧돼지를 만들었다. 
맑은 날에는 멀리 한강 너머 북한지역도 보인다. 
폐자재를 활용해 꾸민 카페 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