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친화적 무장애숲길 확산 필요
[높빛시론] 오충현 동국대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
[고양신문] 일본 ‘오사카 시민의 숲’에서 가면 ‘라쿠라쿠 등산로’를 볼 수 있다. 라쿠라쿠는 즐겁고 즐거운이라는 뜻인데, 라쿠라쿠 등산로는 교통약자들도 즐겁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등산로를 의미한다. 1990년대 말 오사카의 라쿠라쿠 등산로를 보면서 무척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아직 인구 고령화가 심각하지 않은 시기였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를 경험하면서 노인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도시기반 시설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고 있었다.
라쿠라쿠 등산로 개념은 서울 남산 북측 순환로에도 적용되었다. 이곳은 지금 시각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유명한 숲길이 되었다.우리나라에서도 2010년대가 되면서 장애인이나 노약자들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데크길이 도시숲에 많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일본보다도 이런 길들이 잘 정비되어 외국인들이 부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격세지감이다.
이런 길을 유니버설 디자인 길이라고 부른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장애인을 비롯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의미한다. 당초 건물이나 지하철과 같은 시설에 응용되던 유니버설 디자인은 2011년 서울 서대문구 안산 자락길을 시작으로 도시숲과 같은 옥외공간에도 빠르게 확산되었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현재 서울시 전체 숲길의 약 10%가 무장애 숲길로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최근 도시숲을 방문하게 되면 나무판으로 만들어진 무장애 숲길을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다. 특히 코로나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보다는 호젓한 숲길을 국민들이 선호하게 되면서 무장애 숲길의 보급이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무장애 숲길을 규정하고 있는 법적 기준은 없지만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과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을 적용하여 무장애숲길의 유효폭, 기울기, 손잡이(핸드레일) 등을 설치하고 있다.
그러나 무장애숲길이 확산되면서 편리함 뿐만아니라 다양한 문제점들도 함께 부각되고 있다. 대표적인 문제점이 자연환경 훼손이다. 무장애 숲길은 기존 숲길과는 달리 완만한 기울기를 유지해야하기 때문에 기존 숲길보다 더 많은 면적의 산림을 훼손할 수 밖에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설물의 지나치게 커져서 숲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숲을 파편화시키는 문제를 가져오기도 한다. 또 새롭게 숲길을 만드는 과정에서 과거에는 사람이 출입하지 않던 숲 속 내부까지 길이 만들어지게 되고, 이곳을 터전을 살아가던 산새들과 같은 야생동물들의 서식지가 축소되거나 사라지는 문제들도 발생한다.
숲길을 조성하는데 필요한 나무들도 우리나라 목재가 아닌 값싼 수입 목재를 사용하다보니, 목재 수입과정에서 탄소배출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무장애 숲길이 환경적으로는 문제가 되는 경우가 발생하여 숲길을 조성하고자 하는 자치단체와 숲을 보전하고자 하는 주민들간에 심각한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도 이곳저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무장애숲길에 대한 또 한가지 심각한 문제는 장애인들의 소외문제이다. 무장애숲길은 당초 장애인을 우선하여 만들었지만, 정작 장애인들은 숲속에 있는 무장애 숲길까지 접근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개 무장애 숲길이 있는 도심숲이 경사가 급하고 주거지 보다 높은 지대에 있다보니 장애인들의 경우 무장애숲길까지 접근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쉽게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무장애 숲길을 장애인들이 즐겨찾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숲길입구에 장애인 주차장을 설치하고, 숲길 곳곳에 장애인을 위한 화장실 시설, 휠체어를 타고도 쉽게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야외탁자, 장애인 눈높이에서도 외부 경관을 볼 수 있는 안전시설이 마련되어야한다.
이와같은 조건들이 갖추어지지 않아 무장애숲길이라는 제목으로 조성한 하였지만 정작 장애인들은 이용하기가 어려운 숲길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숲길들은 이름만 무장애숲길일 뿐 장애인보다는 일반시민들이 편안하게 이용하도록 만들어진 숲길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 무장애숲길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지 이제 1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단순히 무장애숲길의 양적 확충보다 이곳을 이용하는 실제 이용자들의 불편을 충분히 고려하고, 산림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는 여러가지 지침들을 잘 만들어서 명실상부한 무장애숲길이 될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우리는 고령화 시대, 핵개인화 시대, 저출산 시대에 살고 있다. 도시숲은 이런 국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쉴 수 있게 하는 일상 공간이다. 이런 도시숲을 할아버지, 할머니와 어린 손자들이 편안하게 함께 거닐 수 있도록 하고, 교통약자들도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물이라고 하는 속담처럼 우리 주변에 있는 도시숲을 국민 누구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무장애숲길을 더 많이 보급해야 한다. 다만 자연환경 훼손을 최소화하고, 편안하고, 안전하고, 유지관리가 손쉬운 무장애 숲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