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로 흐르는 고양시 주민자치… 관련 법제화 시급

제108회 고양포럼 ‘고양시 주민자치회, 자치로 가고 있나’

2024-06-19     이병우 기자
108회째를 맞은 고양포럼이 ‘고양시 주민자치회, 자치로 가고 있나’라는 주제로 지난 17일 일산서구 주엽동 사과나무치과 닥스메디 빌딩 강의실에서 열렸다.

주민자치회 고유한 자율성 훼손
상명하달에 시 하부조직으로 변질 
과도한 공모사업으로 반감 퍼져 
협의회, 시행정에 ‘보이콧’ 결의도  

[고양신문] 고양시 주민자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올해로 출범 3년을 맞고 있는 고양시 주민자치회가 지녀야 할 자율성이 훼손당할 뿐만 아니라, 44개동 주민자치회 자체가 시의 하부조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러한 진단을 내리는 동시에 현재의 고양시 주민자치를 성찰하고 바른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17일 일산서구 주엽동 사과나무치과 닥스메디 빌딩 강의실에서 제108회 고양포럼이 ‘고양시 주민자치회, 자치로 가고 있나’라는 주제로 열렸다. 오건호 행신2동 주민자치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고양포럼에는 현장에서 애로사항을 겪고 있는 주민자치회장과 위원, 전문가 그리고 시민들이 모여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인사말을 하고 있는 윤주한 고양마을포럼 이사장.
22대 국회 행정안정위에서 일하게 된 김성회 고양시갑 국회의원.

고양신문·고양포럼 주최로 열린 이날 고양포럼에서 윤주한 고양마을포럼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새로운 지방정부가 들어서면서 고양시자치공동체지원센터와 원당마을 행복학습관이 폐쇄된 상황에 있다. 고양시 자치가 퇴보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고양시 자치를 살리기 위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22대 국회 행정안정위에서 일하게 된 김성회 국회의원(고양시갑)은 “탈중앙화가 이뤄져 권력이 지방으로 내려오고 주민자치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주민자치는 현재 여러 문제에 부딪히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특례시의 권한을 강화하는 특별법을 저의 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면서 국회차원에서 앞으로의 노력을 약속했다. 

과도한 인센티브·패널티 적용
시가 주민자치회를 갈라치기 

이날 고양포럼에서는 우선 고양시 주민자치회에 지원하는 보조금의 갑작스러운 정책변화 때문에 주민자치가 퇴보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것도 주민에게 사전 공지 없는 시의 일방적 보조금 정책변화는 주민자치회의 자율성 훼손과 시 하부조직으로의 변질을 가져왔다는 지적이다. 

작년까지는 44개동 주민자치회가 균등하게 1년에 3500만원의 시보조금을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에는 주민자치회가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보조금 액수는 평균적으로 1000만원으로 대폭 줄었다. 이마저도 작년의 사업진행 내용을 평가하기 위해 과도하게 인센티브와 패널티를 적용해 시보조금을 차등지급했다. 인센티브와 패널티를 적용을 통해 각 주민자치회는 적게는 200만원, 많게는 1500만원의 보조금을 차등지급 받게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인센티브와 패널티 적용 기준을 묻는 덕양구주민자치협의회 공식 질의에 시는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을 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시가 주민자치회 위에서 ‘자치’사업 이행을 ‘상명하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지적이다. 

만약 주민자치회가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200만~1500만원 외의 시보조금을 추가로 사용하려면 시가 벌이는 공모사업에 선정되어야 한다. 공모사업은 크게 민간행사사업과 자본이전사업(자산과 자재구입을 위한 사업)으로 나뉜다. 지난 3월 민간행사사업 공모에는 고양시 44개동 주민자치회 중에 24개동, 25개 사업이 선정됐다. 선정된 사업은 모두 마을축제사업인데, 나머지 20개동은 선정조차 되지 못했다. 매년 개최하던 마을축제를 올해부터 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올해 5월 자본이전사업 공모에서는 고양시 44개동 주민자치회 중에 겨우 12개동, 12개 사업만 선정됐다. 일부 주민자치회는 고양시의 지나친 인센티브와 패널티 적용에 대한 반감으로 아예 보이콧을 결정하며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시가 자본이전사업에 당초 편성한 예산 8억6000만원 중 겨우 1억2600만원만 쓰이게 됐다. 

주제발표를 하고 있는 임현철 창릉동 주민자치회장 겸 덕양구 주민자치협의회장. 임 회장은 "고양시의 주민자치사업 방식에 대해 각 동의 주민자치회는 보이콧을 하자는 결의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날 고양포럼에서 발제를 맡은 임현철 창릉동 주민자치회장 겸 덕양구 주민자치협의회장은 “이러한 고양시의 주민자치사업 방식에 대해 각 동의 주민자치회는 보이콧을 하자는 결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주민과의 소통 방법으로 유일한 것이 바로 시 보조금을 통한 주민자치사업이기 때문에 시와의 싸움은 계속하되 사업을 위한 공모에는 개별적으로 응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시로부터 이미 좋은 평가를 받았거나 앞으로 좋은 평가를 받기를 원하는 주민자치회는 시의 상명하달식 주민자치사업 방식에 순응하려 한다. 하지만 시의 방식에 저항감을 느끼는 주민자치회는 보이콧을 하자는 주장을 여전히 하고 있다. 이른 측면에서 결과적으로 고양시는 각 동의 주민자치회를 ‘갈라치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임현철 회장은 “시가 일관성 없는 행정을 보일 때 주민자치회는 사업추진을 망설이게 된다. 반대로 예측 가능한 행정을 할 때 주민자치회는 충분한 준비를 한다”고 말했다.   

일방적 행정 펼친 시 대응조직
주민자치협의회 공식화 필요해  

주민자치회가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기에는 조직 자원이 빈약하기 때문에 많은 희생이 요구되고 있는 현실도 지적됐다. 

서호철 가좌동 주민자치회장 겸 고양시주민자치협의회장은 “작년에 고양시 44개동 주민자치회 중에 시보조금 3500만원을 모두 사용한 동은 13개동밖에 되지 않는다. 각종 영수증 외에 사진과 서류 첨부, 참여자 이름 기재 등 보조금 사용 내역을 증빙하려는 엄청난 작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서호철 회장은 "조례 등으로 고양시주민자치협의회와 각 구별 주민자치협의회의 권한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서호철 회장은 이어 주민자치회 관련 법제화의 시급성도 언급했다. 서 회장은 “주민자치가 퇴보한 것은 시장이 바뀌었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주민자치회의 권한과 책임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면 어떤 시장이 되든 주민자치회는 일관성을 가지고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양시주민자치협의회와 각 구별 주민자치협의회가 시로부터 공식적인 단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와의 공식적 자리를 통해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 김포·파주·광명·군포·부천 등은 협의회 규정이 있고 협의회 소속 위원들은 수당도 받고 있는데, 고양시에서는 그렇게 되지 못하고 희생만 강요당하고 있다. 조례 등으로 고양시주민자치협의회와 각 구별 주민자치협의회의 권한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고양시 지방자치 근본적 훼손
참석 토론자·시민 모두 공감  

김범수 자치도시연구소장

주민자치회가 시에서 지원하는 보조금 사업에만 치중하는 현상황에 대해 개선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김범수 자치도시연구소장은 “마을주민이 원하는 마을 의제를 모아 정책으로 제안하는 일과 시에서 내주는 보조금 사업을 집행하는 일을 모두 다 하려하지 말고 어느 일을 할지 선택했으면 좋겠다. 무조건 보조금 사업에 집중하기 보다는 시의원에게 마을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함께 해결해나가는 것을 포함해 다른 여러 주민자치의 영역이 있다”고 전했다.  

송규근 시의회 기획행정위원장

주민자치회 내부의 성찰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송규근 시의회 기획행정위원장은 “주민자치위원이나 주민들 스스로 주민자치에 대한 굳건한 가치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야 할 때다. 주민자치회의 위상이 더 강화되고 결속력이 탄탄해짐으로써 오히려 주민자치가 퇴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늘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건호 행신2동주민자치회장은 “지자체장이 바뀌고 난 후 고양시 지방자치의 뿌리가 근본적으로 훼손 있다는 문제의식을 모든 토론자들이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 좌장을 맡은 오건호 행신2동주민자치회장은 “지자체장이 바뀌고 난 후 고양시 지방자치의 뿌리가 근본적으로 훼손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모든 토론자들이 공감하고 있다. 현재 고양의 지방자치는 지방자치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관치로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방적인 공문으로 자치를 관리하려는 시에 대해 현장 주민자치 주체들은 주도적으로 대응하려고 한다. 이것이 구체화된 것이 고양시주민자치협의회·각 구별 주민자치협의회다. 이 협의회가 대표성을 인정받아 시의 부당행정에 대응하도록 하겠다”면서 이날 토론회를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