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 생태칼럼] 아프냐, 나도 아프다

오물풍선 날아들고, 날선 독설 심해지고 이럴 때 오히려 ‘공동 생태보전’ 화두 꺼내야 남과 북, 뭇 생명들의 평화로운 공존 위해 한강하구·갯벌 접경람사르습지 등록 기대

2024-07-03     한동욱 에코코리아 이사
한강하구 습지 철조망에 내걸린 지뢰 표지. [사진=에코코리아]

[고양신문] 6월은 잔인했다. 펄펄 끓는 극한 기후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더위로 설잠 자던 한밤중에 긴급재난 문자가 시도 때도 없이 울려 아예 잠이 싹 달아나 버린 날이 몇 날 되었다. 하루에도 몇번이고 울려대는 알림소리에 잠을 설쳐 본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잔인’한 6월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이다 디지털트윈이다 유사 이래 가장 모던 테크놀로지를 자랑하는 시대에 오물풍선 주의보라니…. 더불어 남북한 정치지도자들이 뿜어대는 독설도 오물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장항습지를 나가보니 논 한가운데에도 흰 오물풍선 하나가 딱하니 떨어져 있었다. 오물이니 망정이지 폭탄이었다면 하는 안도도 되긴 했지만, 이 무슨 난리 아닌 난리인가. 여기저기 외국에서 안부메일을 받고 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우리 아이들은 현재 어른세대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전 세계에서 학구열이 가장 높고 가방끈이 가장 길다면 긴 코리안들이 이렇게 유치한 오물 세례 논란에 휩싸였으니 어찌 잔인하지 않을까. 그렇게 잔인한 6월은 가고 더 잔인할지 모를 7월이 왔다.  

옹진군 갯벌에서 마주친 지뢰처럼 생긴 쓰레기. [사진=에코코리아]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좀 침착해 보자. 서로 감정이 격화되고 적대감이 커질 때는 잠시 물러서서 한쪽에서라도 이성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리고 인내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예민하고 아픈 부분은 잠시 접어두고, 공통의 주제를 찾아야 한다. 공동의 집인 지구, 함께 돌보아야 할 한반도의 자연, 양쪽 끝자락을 붙잡고 마주하고 있는 한강하구 보전 같은 주제 말이다. 

혹자는 요즘같이 살벌한 시기에 무슨 생태 타령이냐고 할지 모른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라. 남북 대화 국면에 언제 생태보전 이야기를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있었나. 한국의 갯벌 세계유산도 바로 갈등시기에 지정되었고, 북한의 람사르가입도 이 시기에 진행되었다. 중국은 올해 황해 세계유산 2단계 후보지를 제출했고 북한도 갯벌지정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럴 때는 남북한 생태협력카드를 꺼내는 것이 맞다. 한강하구습지의 접경람사르습지 등록도 이럴 때가 오히려 효과가 클 것이다.  

장항습지가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이후 지뢰사고로 아직 일반에게 개방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간혹 해외 관계자들이 공식 방문을 요청해 오곤 한다. 개중에 독일에서 오신 분들이 많다. 아마도 이념적 국가 분단 상황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 짐작한다.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관계자 장항습지 방문. [사진=에코코리아]

예전 독일 자동차회사 본사가 많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정치인들과 시장 일행이 방문했을 때 일이다. 장항습지를 보고나서 애기봉전망대를 올라 망원경으로 북한을 보던 한 젊은 정치인이 “어디가 남북 접경선인가”를 물었다. "한강하구는 접경선이 없어요. DMZ는 한반도 육역에만 설정되었고, 한강하구는 공동이용수역으로 지정되어 유엔이 관리하지요. 그러니 이곳은 국제적 평화수역입니다." 이런 설명에 꽤나 놀란 눈치다. 독일처럼 장벽이 없다니, 심지어 국제수역이라니…. 한술 더 떠 이들에게 남과 북이 함께 이곳을 보호할 수 있도록 독일도 유엔을 통해 함께 지지해 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동의를 했다. 

CMS 사무총장 장항습지 방문. [사진=에코코리아]

그리고 독일 본(Bonn)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동성 야생동물 보호 협약(UNEP-CMS) 사무총장도 장항습지를 방문한 적이 있다. 국가의 경계를 넘는 철새를 보호하기 위해 국제적 협력이 중요하니 람사르습지이자 접경습지인 장항습지에 관심이 커 보였다. 장항습지를 소개하면서 “이곳은 남북 분단 때문에 지켜진 접경이며, 자연하구 갯물숲 생태계입니다. 개리나 재두루미와 같은 철새들에게 국가경계는 의미가 없으니 한강하구 생태계는 하나입니다. 남북 간 정치통일은 어려워도 생태적 협력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라고 했더니 적극 동의해 주었다. 

여름이면 습지 조사가 집중되는 시기다. 남북 접경인 한강하구와 서해갯벌도 이에 포함된다. 이 시기에는 비가 많아서 접경지역에는 유실지뢰가 항상 마음에 걸린다. 주변에 지뢰표시 하나도 예사롭지 않고, 동그란 뚜껑 하나, 시커멓게 생긴 길쭉한 원통 하나도 혹시나 해서 다시 들여다 보게 된다. 얼마전 김포 쪽 습지를 둘러볼 때는 전봇대에 둘러쳐진 철책선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아프냐, 보는 나도 아프다”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분단 속에 이념의 철책에 꽁꽁 묶여 살아가는 우리나 전봇대나 별반 다를 게 없지 않겠나.

김포 한강하구 접경지역의 전봇대. [사진=에코코리아]

이런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한강하구 접경지역과 갯벌을 접경람사르습지로 등록하고 관리하게 된다면, 이 긴장을 좀 완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남북의 평화가 생명평화로 이어지고 지구적인 긴장을 완화시키는 단비가 된다면 이 화약고 같은 지구촌이 좀 더 평화로울 수 있지 않겠는가.  

반전주의자 존레논의 이매진(imagine)도 참 따듯하지만, 이 노래를 이스라엘 출신 가수 노아(Noa)가 히브리어로, 레바논의 아랍계 레퍼 칼리드(Khaled)가 아랍어로 함께 부르기도 했다. 오늘은 이들의 노래가 급 땡긴다. 우리도 함께 상상해 보자. 남북 사람들이 뭇 생명들과 평화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송도 갯벌에서 마주친 포탄처럼 생긴 쓰레기. [사진=에코코리아]
장항습지에 게시된 지뢰 경고판. [사진=에코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