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고양 생태계의 보고” 계곡 따라 산개구리, 산새소리 가득
고양 도시숲 생태탐사 ①개명산 5~6월 전문가·시민 2차례 생태조사 수녀골 계곡에 산개구리, 두꺼비, 장지뱀… 고슴도치, 멧토끼 등 포유류 7종·조류 31종 털갈매나무, 병꽃나무 등 식물 72종 확인 까치박달, 서어나무 등 극상림 군락도
[고양신문] 동고서저 지형인 고양시는 북동쪽에 북한산, 개명산, 노고산 등 높은 산이 자리하고 남서쪽으로 낮은 구릉지대와 한강 하류·지류 유역의 벌판이 넓게 펼쳐져 있다. 고양의 숲은 주산인 북한산(837m)에서 노고산, 견달산, 고봉산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과 그 지맥에 몰려있다. 하지만 각종 개발로 한북정맥은 물론 창릉천 동쪽의 앵봉산~봉산~망월산~대덕산으로 이어지는 지맥과 성라산~봉대산~덕양산, 견달산~영주산, 고봉산~정발산으로 이어지는 많은 지맥이 단절돼 녹지축 연결과 회복이 시급한 실정이다.
기후 위기 극복 대안으로 마을숲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고양신문은 창간 35주년을 맞아 마을숲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훼손된 녹지축을 되살리기 위해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고양시지부와 함께 ‘고양의 녹색댐 마을 숲 회복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1차로 시민들이 즐겨 찾는 가까운 마을숲 10곳을 선정했다. 생태전문가와 시민들이 매달 두 번씩 마을숲의 지리적, 생태적 현황을 조사해 총 7차례 싣는다. <편집자 주>
서울시립묘지에서 파주 광탄 쪽으로 난 비좁고 번잡한 도로에서 벗어나 산 들머리로 들어서자 깨끗한 계곡과 새소리가 반겼다. 시의 북쪽 끝에 자리한 이 산은 고양시 생태계의 보고로 꼽히는 개명산(550m)이다. 고양과 파주, 양주 등 3개 시의 경계에 자리한 이 산은 계명산 또는 고령산으로도 불리며, 정상은 군사시설이 점유하고 있다.
산 들머리의 보석 같이 맑고 차가운 계곡은 ‘수녀골’이다. 수녀골이란 이름은 ‘맨발의 성자’ 혹은 ‘동방의 성 프란체스코’로 불리는 이현필(1913~1964) 선생의 제자인 여성 수도자들이 이곳(벽제 동광원 일원)에서 고아들을 돌보면서 버려진 땅을 개간해 농사짓고 터전을 일군 데서 유래한다. 개신교 수도공동체인데도 마을 사람들은 이곳의 여성 수도자들을 수녀라 불렀고, 계곡 주변은 수녀골이 됐다.
사철 물흐르는 수녀골 생물다양성 풍부
개명산은 북한산국립공원을 제외한 고양시 산 가운데 유일하게 계곡을 품은 산이다. 봄에는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고 겨울에는 얼음골로 변하는 수녀골은 정형화된 유원지 계곡과 달리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도록 놔둔 자연형 계곡이다. 사철 맑고 깨끗한 계곡물이 마르지 않아 청량한 물소리를 들으며 휴식하기 좋은 곳이다.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양서파충류와 수서곤충, 조류 등 다양한 야생생물이 서식하는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곳으로 꼽힌다.
‘고양 마을숲 회복 프로젝트’ 생태조사 첫날인 지난 5월 17일, 수녀골 계곡에서는 계곡산개구리와 두꺼비, 아무르장지뱀, 쇠살모사 등 양서파충류 4종이 발견됐다. 이날 발견된 4종 외에도 계절에 따라 한국산개구리, 도롱뇽, 줄장지뱀 등을 알부터, 유생, 성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두 차례의 생태조사 결과, 이곳에서는 나뭇가지를 닮은 집을 짓고 그 속에 들어앉은 날도래의 유충을 비롯해 호랑나비 애벌레와 남생이무당벌레 애벌레, 흰눈까마귀밤나방 애벌레, 장미색들명나방 애벌레 등이 발견됐다. 또 모시나비, 애기세줄나비, 제이줄나비, 부처나비, 넓은띠녹색부전나비, 제비나비, 쇠측범잠자리, 사마귀붙이 등 총 26종의 곤충이 출현했다.
수녀골 주변은 오래된 나무가 많고, 깨끗한 계곡물이 꽤 넓은 폭으로 흐르고 있어 새들이 살기에도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 새들은 먹이와 신선한 물을 쉽게 구하고 목욕도 한다. 이날도 노랑할미새가 물가에서 꼬리를 까닥이며 귀여운 몸짓을 선보여 탐방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숲새와 노랑할미새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곳
수녀골을 지나 숲길로 들어서자 깊은 숲속에서나 들을 수 있는 숲새와 산솔새, 큰유리새의 소리가 들렸다. 여름에는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 새를 직접 관찰하기는 어렵지만 청아한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행복감이 밀려온다. 형제봉 쪽으로 올라가니 뻐꾸기와 벙어리뻐꾸기, 검은등뻐꾸기 등 두견이과 조류 3종의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진다. ‘뻐꾹 뻐꾹’ ‘보보 보보’ 하면서 2음절을 반복하는 뻐꾸기와 벙어리뻐꾸기와 달리 검은등뻐꾸기는 4음절로 운다. 울음소리가 마치 ‘홀딱벗고’처럼 들려서 홀딱벗고새라고도 불리는데, 아이들 앞에서는 ‘밥만먹고’라고 고쳐 부르기도 한다. 스스로 둥지를 틀지 않고 다른 새들의 둥지에 알을 낳아 키우게 하는 이 새들은 5~6월 우리나라에서 번식하고 중국 남부와 인도, 동남아시아 등에서 겨울을 나는 여름철새다. 번식기에 3종의 뻐꾸기 소리가 들렸다는 것은 이 종과 더불어 딱새류 등 각각의 탁란종들 또한 개명산에서 많이 번식했음을 뜻한다.
사람의 간섭을 적게 받은 개명산에서는 두 차례 조사에서 산딸기 같은 열매를 좋아하는 지빠귀류, 물까치, 직박구리와 우거진 식물 속의 곤충을 좋아하는 쇠솔딱새, 흰눈썹황금새, 천연기념물인 개구리매, 황조롱이 등 총 31종의 새가 관찰됐다. 조류 분야 생태조사원으로 참여한 김동원(삼육대 동물자원학과3)씨는 “개명산은 수도권의 일반적인 도시 숲보다 깊고 인적이 적은데다 다양한 서식 환경을 갖춰 많은 생물종이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가에서 사는 노랑할미새와 깊은 산에서 사는 숲새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이번 조사에서 관찰하지는 못했으나,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면 산림 계곡에 서식하는 검은댕기해오라기나 큰유리새의 탁란종인 매사촌, 올빼미류의 번식 등 더 많은 조류를 관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담비 대신 고슴도치와 멧토끼 출현
주변에 해발 400m가 넘는 형제봉, 앵무봉, 두루봉, 꾀꼬리봉 등이 병풍처럼 늘어선 개명산은 산세가 수려하고 천연림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포유류도 많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조사에서는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인 삵과 고슴도치를 비롯해 총 7종이 확인됐다. 흔적 조사를 통해 삵, 고라니, 멧돼지, 두더지 등의 흔적이 관찰됐으며, 산 초입부와 정상부에 설치한 3개의 무인 카메라 조사를 통해 고라니, 오소리, 고슴도치, 멧돼지, 멧토끼 등이 확인됐다. 포유류 조사원들은 내심 기대했던 멸종위기종 담비를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야생에서 만나기 어려운 고슴도치의 서식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포유류 조사를 맡은 야생동물 전문가 이상규씨는 “야생에서 고슴도치를 만나기는 멸종위기종보다 더 힘들다. 다만 도시 주변에서 발견된 거라 외래종일 가능성도 있어 더 조사를 해봐야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정상 쪽은 군사지역으로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건강한 생태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담비의 서식 가능성도 높은 만큼 정기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했다.
원시림에 가까운 숲에 다양한 식생
수녀골을 지나 이어지는 숲길은 자연 생태 학습장처럼 다양한 식생을 선보였다.
탱자나무 울타리를 통과하니 운향과 식물을 기주식물로 하는 호랑나비 애벌레가 출현했다. 숲 안으로 더 들어가니 하얀 총포를 꽃잎처럼 두르고 벌과 나비를 유혹하는 산딸나무와 매실나무, 조림수종인 일본잎갈나무, 리기다소나무, 아까시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물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따라가니 국수나무가 앞장서 길을 안내한다.
벚나무, 산벚나무, 개암나무, 싸리나무, 생강나무, 버드나무, 팥배나무, 층층나무, 뽕나무, 물푸레나무, 산초나무, 누리장나무 등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고 다래꽃이 땅에 떨어져 있었다. 서어나무 군락을 지나 철쭉 쉼터에 이르는 길가에는 어린아이 얼굴보다 큰 잎을 가진 쪽동백나무가 계속 나타났다.
야생화뿐만 아니라 낙엽활엽교목 신갈나무를 비롯한 참나무류와 당단풍나무, 서어나무 등 극상림 수종 군락도 탐방객의 눈길을 붙잡았다. 철쭉 쉼터 주변으로 수령이 10~20년으로 돼 보이는 미끈한 근육질의 서어나무 10여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서어나무는 숲의 천이 과정에서 맨 마지막 단계인 극상림의 대표 수종으로, 비교적 안정된 숲임을 뜻한다.
개명산은 산의 은밀한 속살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봄철 야생화의 성지로 사랑받는 곳이기도 하다. 복수초와 족두리풀, 두루미천남성, 바람꽃, 처녀치마, 노루귀, 노랑제비꽃, 알록제비꽃, 큰괭이밥, 개별꽃, 둥굴레, 애기나리, 은방울꽃 등 4월부터 피기 시작하는 봄의 전령사 야생화는 탐방객들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는다. 숲 해설사인 김경숙(생태공부모임 ‘도란도반’ 대표)씨는 “물멍이나 꽃 나들이를 위해 개명산 계곡을 자주 찾는데 그동안 많이 알려지지 않아 숨겨놓고 몰래 먹는 꿀단지 같다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입소문을 타고 찾는 사람이 늘면서 야생화가 눈에 띄게 줄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박평수 생태전문가(사회적협동조합 한강 고양지부장)는 “단선적인 먹이사슬을 넘어 복잡하고 다양한 먹이 관계의 연결 구조를 보여주는 먹이그물은 생태계가 건강하게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일 뿐 아니라 도심 가까운 숲으로는 매우 귀한 모습”이라며 개명산 생태숲 보존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취재도움=사회적협동조합 한강 고양시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