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한 명 위해 온마을이 협력해야”
<창간 35주년 기획>초고령화 고양, 노인돌봄 대안 찾자⓸ 사단법인 마포희망나눔
공동육아‧대안학교로 출발, 대안마을 성미산
서로돌봄‧통합돌봄 고민하며 관계망사업 출발
청춘쌀롱‧돌봄쌀롱, 활동가 발굴하고 노인지원
[고양신문] “집밖에 내어놓은 배달음식 잔반을 드시는 어르신들을 목격하고 우리 모두 충격을 받았어요. 2005년 망원동 일대의 지역조사를 다니면서 본 광경이었어요. 우리끼리만 마을에서 재미있고, 신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같이 잘 살아야 그게 진짜 마을공동체, 지역살기가 아니겠냐 하는 고민이 시작됐죠.”
성미산마을에서 이웃을 돌아보는 서로돌봄을 위한 활동을 하게 된 계기를 마포희망나눔(이사장 정달현) 김은주 상임이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온전히 실천하고 있는 곳으로 성미산마을을 꼽는 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1994년 공동육아어린이집을 시작으로 2004년 학부모들이 초중고, 장애, 비장애 통합 12년제 성미산 학교를 만들었다. 서울시 마포구 성산 1동, 성산 2동, 망원동, 연남동이 만나는 해발 66미터의 낮은 자연산 성미산 인근에 둥지를 튼 학부모 또는 주민들은 마포두레생협, 유기농반찬가게 ‘동네부엌’, 유기농 식당 ‘성미산밥상’, 마포의료생협 등 다양한 아이디어 현실화를 시도했고, 성미산마을은 축제와 참여, 활동으로 북적이며 주목받는 마을이 됐다.
2001년 서울시가 성미산에 배수지 개발 계획을 발표한 이후부터 성미산 사람들은 마을을 지키고, 싸우게 됐다. 위기를 함께 겪으며 성미산 사람들은 이웃, 마을, 연대에 대해 더 고민했고 ‘할 수 있다’는 경험을 가졌다. 서울시에 이어 홍익재단이 성미산을 깎아 학교를 짓겠다고 했고, 그렇게 2차 ‘성미산 지키기 투쟁’이 2008년부터 2011년 사이 진행됐다.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오해와 공격도 있었지만 ‘나와 이웃의 기쁨과 아픔을 기꺼이 나누려는 이들이 모인 성미산마을’. 마을공동체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돌봄으로 옮겨갔다.
성미산을 지키려는 운동을 하면서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마포연대를 만들었다. 그 산하에 희망나눔 복지분과가 있었다. 희망나눔 분과에는 당시 지역 청년회, 마포를 사랑하는 사람들, 민주노동당 등 다양한 네트워크가 있었다. 지역의 복지 문제와 실천을 위해 2005년 4월 발족한 희망나눔 지원단이 지금의 마포희망나눔의 시작이었다. 마포연대는 이후 해산했지만 분과였던 희망나눔은 지역의 희망을 이어가고 있다. 2016년에는 사단법인 희망나눔으로 거듭났다.
“처음에는 가까운 지역의 어려운 이들도 우리처럼 같이, 행복하게 살자는 단순한 생각이었어요. 어려운 사람들도 같이 성미산사람들처럼 즐겁게 살 수 없을까 하는 고민이 시작이었죠.”
성미산 인근 아현, 연남, 망원 지역은 당시 서울에서 상대적 빈곤지역이었다. 재개발 이전의 골목동네는 독거노인과 맡겨진 아동, 기초수급자들이 주로 사는 그런 동네였다. 성미산 사람들은 집집마다 방문하며 동네의 문제를 찾으려 노력하고, ‘홀몸 어르신’들을 위해 먹을거리, 반찬을 만들어 날랐다. 혼자 사는 이들의 말벗을 자청하고, 아이들에게는 동화책을 들고 멘토링 교사가 됐다. 직접적인 후원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관계망 중심의 돌봄을 지속하다보니 ‘커뮤니티케어’가 이슈가 됐다. “우리가 맞았구나” 싶었다고 한다.
현재 마포희망나눔은 후원회원 400명, ‘품’으로 지원하는 후원자가 120명 정도 된다. 무지개의원 이사인 정달현 이사장과 현석환 운영위원장, 김은주 상임이사가 역할을 맡고 있다.
“고령화시대에는 누구나 취약자, 약자가 될 수 있고, 서로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합니다. 그걸 인식하고 관계의 평등성을 만들어가려는 곳에 방점을 찍으려고 합니다. 다층적인 관계망을 만들어 나가야 해요.”
마포희망나눔은 노인돌봄 사업에 주력하고 있지만 재가복지, 요양사업을 직접 할 계획은 없다. 이미 하고 있는 곳들도 많고, 관계망 만들기가 주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재가사업을 하는 울림두레돌봄사협, 마포의료사협과 마포희망나눔이 2021년부터는 어르신 방문진료를 시작했다. ‘지역사회 통합돌봄시스템’ 구축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3개 기관이 2020년 새봄 네트워크를 결성했고, 그 첫 결실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 장애인 등 방문진료를 필요로 하는 누구나가 대상이며 무지개의원인 의사, 간호사, 케어매니저가 직접 집으로 방문한다.
2022년부터는 연세대 연구팀과 전문가들이 적극적인 제안을 하며 보다 탄탄한 연대의 틀이 만들어졌다. 연세대김모임간호학연구소, 한국에자이 나우사회혁신랩, 돌봄리빙랩네트워크 등과 함께 성미산마을 돌봄리빙랩을 만들어 새로운 돌봄시스템 구축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성미산 마을돌봄 리빙랩은 기업, 전문가집단과 시민사회가 지역에서 만나 새로운 돌봄 모델을 만들게 된다. 2023년 12월에는 울림두레돌봄사협, 마포의료사협, 마포희망나눔이 주축이 되고 연세대 원주의대, 서울대 국제이주와포용사회센터가 함께 새봄건강돌봄센터를 개소해 ‘지역사회 기반 사회돌봄 구축사업’ 연구를 시작했다. 새봄건강돌봄센터는 2024년 4월까지 6개월간의 예비조사를 마쳤고, 마포지역 55세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지역의 관계망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조사할 예정이다.
“조사에 참여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역에 부족한 것들을 알게 되고, 필요한 것들을 서로 연결시키려고 합니다. 돌봄이 필요한 이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웃과 사회적 관계망을 맺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영국 ‘서클’개념을 시도해보고 싶어요. 예를 들어 부산으로 여행을 가보고 싶은 돌봄대상이 있다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요. 당장 갈 수 없다면 고향이 부산인 이웃이 이야기를 전해주고, 비용 만들 방법을 찾고, 동행자, 여행일정을 짜줄 사람을 찾아야죠. 이런 방법을 통해 복지 사각지대를 찾을 수 있고, 경제적 소외계층 이외에도 사회적 고립자들을 찾고, 도와줄 수 있어요.”
도움을 받는 이들의 ‘돌봄력’을 키우기 위한 청춘쌀롱, 돌봄활동가들을 발굴하기 위한 돌봄쌀롱 등이 돌봄리빙랩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지난 23일 과정을 끝내고 수료를 한 돌봄쌀롱 활동가들은 이후 서포터즈로 활동하고, 지역의 주민활동가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고립·배제된 주민이 지역사회의 다양한 인적·물적 자원 연결을 통해 당사자로서의 자기존엄을 회복하고, 서로 돕고 나누는 공동체’를 위해 마포희망나눔과 성미산사람들은 오늘도 다양한 시도를 하며 내일의 마을을 만들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