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구 칼럼] 가난이 죄가 되고 벌이 되는 사회
[고양신문] 대전에 사는 29세 남성 김 아무개씨는 신장 수술을 받은 어머니를 홀로 모시고 산다. 본인도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데 하루하루 알바로 생계를 이어가는 가운데 예비군 훈련에 빠지게 되어 법원으로부터 100만원 벌금형에 처해졌다. (사례1)
올해 24세인 여성 이 아무개씨는 20세부터 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제1금융권은 물론, 제2금융권으로부터도 대출이 어렵자 인터넷에 떠도는 대출안내를 따랐다. 3000만원 대출해 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자신의 통장과 비밀번호 등을 넘겨줬다가 이 통장이 소위 ‘대포통장’으로 이용되면서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300만원 벌금형을 받았다. (사례2)
30대 중반에 남편과 이혼하여 아이 셋을 홀로 키우고 있는 여성 손 아무개씨는 선불 유심칩을 개통해 주면 개당 10만원씩 주겠다는 권유를 받고 3개를 개통해 줬다가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으로 벌금 400만원을 받았다. 선불 유심칩은 범죄조직에 의해 이른바 대포폰으로 악용되는데 당장 돈이 급한 손씨는 현금 30만원에 범죄 동조자가 된 것이다. 현재 식당 알바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손씨는 400만원 벌금을 납부할 여력이 전혀 없다. 벌금을 못 내면 1일 10만원씩 계산하여 40일간 ‘노역형’에 처해 지는데 40일간 교도소에 갔다 오면 그사이 세 아이는 누가 봐주며 당장 생계는 어찌할 것인가? (사례3)
이상의 사례들은 최근 내가 은행장을 맡게 된 ‘장발장 은행’에 들어 온 사연들이다. 장발장 은행은 벌금형을 받고도 형편상 벌금을 낼 수 없어 감옥에 가야 하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인권연대’란 단체가 만들어 9년째 운영해 오고 있는 ‘은행’이다.
우리 형법 제69조 제2항에 따르면 벌금을 납부하지 않는 경우, 1일 이상 3년 이하의 기간 노역장에 유치하여 작업에 복무하게 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사례1 청년의 경우, 예비군 훈련에 참석하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법조항에 따라 쉽게 범죄자가 된 경우다. 생각보다 범죄는 가까운 곳에 있고, 형사처벌도 그렇다.
지난 한 해, 벌금형 집행대상자는 모두 51만209명이었는데 그 중 벌금을 내지 못해 감옥에 갇힌 사람은 5만7267명이었다. 벌금집행 대상자의 11% 이상이 감옥에 가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 첫해인 2022년에는 한 해 동안 벌금을 내지 못해 감옥에 간 사람이 2만5975명이었으나 1년 새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장발장 은행은 지난 9년 동안 1만6321명의 개인이나 단체로부터 17억1960만원의 성금을 모아 1356명에게 모두 23억6000만원을 대출해 주었다. 모금액보다 대출액이 많은 것은 그동안 842명이 7억6000만원 정도를 갚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수치는 지난 한 해 벌금을 못내 감옥에 가야 했던 5만7267명 숫자를 생각해 보면 한없이 초라해 진다. 결국 장발장 은행이 도와줄 수 있었던 우리 사회 장발장들은 연 평균 고작 150명에 그치기 때문이다.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국가는 형벌권을 사용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그에 응당한 형벌을 부과하는 것이 국가의 사법제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 제도는 공정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현행 ‘환형유치제도’, 벌금을 못내면 몸으로 때워야 한다는 제도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공정하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첫째, 벌금액수가 재산, 소득 여부에 관계없이 일률적이다. 위 사례1의 경우, 벌금액 100만원은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루 저녁 술값에 불과할 수 있지만 이 청년의 경우에는 열흘간 ‘몸빵’으로 때울 수밖에 없는 거액이다.
이런 점에서 재산, 소득에 따라 벌금을 차등하여 매기는 독일, 오스트리아, 핀란드 등의 사례를 적극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둘째, 벌금형은 형벌 중 비교적 가벼운 형벌이다. 우리 경우 가벼운 기초질서 위반 행위도 ‘경범죄 처벌법’ 대상이 된다. 이런 것을 ‘노역형’으로 돌리기보다는 공익시설 등에서의 봉사활동 등으로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난은 가난으로 끝나야지, 돈이 없다는 것이 바로 죄가 되고 벌이 되는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