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이제는 안 해봤던 걸 해야할 시기인 것 같아요”
나경호의 사람도서관 (17) 조경민 사진작가(40살, 삼송동)
[고양신문] 자신이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오는 동물들이 많습니다만 인간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건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이번 사람책은 어린 시절 고양시에 살다가 커서는 서울과 다른 지역에서 생을 꾸렸고, 얼마 전 마흔이 되어 고양시로 돌아온 조경민 사진작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괜찮나? 가족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야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지? 라는 고민을 안고 있는, 이제는 젊지도 늙지도 않은 마흔 살의 사람책을 통해 지나온 나의 삶을, 다가올 나의 삶을 한 번씩 떠올려보면 좋겠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인간은 가장 아픈 방식으로, 가장 경험해보고 싶지 않은 방식으로 삶을 통해 중요한 걸 배우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30살만 되어도 저에 대해 잘 알 것 같았는데 40살이 되어서도 모르겠습니다. 50대가 되면 알 수 있을까요? 아니겠지요.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한테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엄마 난 잘 모르겠는데, 엄마는 알겠어?”
■ 인생 최초의 기억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서울 성수동에서 태어났어요. 5살 때쯤 아빠와 함께 인근에 있는 외할머니댁에 찾아갔는데 집문이 잠겨 못 들어가고 있었어요. 기다리기 지겨워서 그런 건지 아빠한테 배고프다 칭얼댔나봅니다. 아버지는 저를 잠시 세워두고 어디선가 스팸캔 하나를 사와 문앞에 앉아 같이 나눠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빠가 입에 넣어주는 그 스팸맛이 기억납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파주로 이사를 왔어요. 엄마는 저를 조금 더 좋은 곳에서 공부시키고 싶었나 봅니다. 6학년 때부터는 고양시 일산 강선초등학교를 다녔어요. 집은 파주인데 일산시장 안에 있는 터미널을 거쳐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역시 계속 이런 식으로 다녔는데 학원과 방과 후 수업도 있다 보니 저는 매번 혼자서 긴 시간을 보내야 했고 밥도 늘 혼자 먹어야 했어요. 요즘에는 괜찮아졌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서 밥 먹는 걸 정말 싫어했어요. 그 시절 제가 친구들한테 제일 많이 했던 말이 “같이 밥 먹을래?”였던 게 떠오릅니다.
■ 간단히 개인소개 해주세요.
사진 찍는 조경민입니다. 올해 마흔이 됐어요. 작년 11월 서울 합정동에 있는 사진 스튜디오를 정리하고 프리랜서가 됐어요. 그리고 올해 1월에 결혼도 하고 삼송동에 신혼집을 차렸습니다. 올해 많은 부분에서 삶이 바뀌었습니다. 최근 사진과 관련된 커리어를 어떻게 하면 더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을까가 저의 최대 고민입니다. 그래서 개인 브랜딩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사진과 관련해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나를 더욱 알릴 수 있을까 자주 생각하는데 요즘에는 스스로에 대해 고민할수록 저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 사진관을 폐업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하면서 무얼 느끼고 배웠나요.
7년 동안 스튜디오를 운영했는데, 그간 작업했던 사진 결과물과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콘텐츠들이 더 이상 발전이 없다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 매출은 안 나오고 스튜디오를 계속 운영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어요. 결혼을 앞두니 목돈도 필요해서 권리금도 찾아 써야했고 당장은 프리랜서로 작업하는 게 조금 더 좋을 것 같다 판단했습니다. 최근에는 웨딩스냅을 찍거나 한양문고 주엽점에 위치한 베이비부머 행복캠퍼스에서 사진수업을 맡아 진행하고 있어요.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일하면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요령 같은 걸 많이 배웠어요. 7년 동안 촬영한 팀만 1500팀이라 대략 5000~6000명 정도를 만났습니다.
촬영을 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왜 돈 있고 잘 배운 사람들은 이토록 나이스 할까?’였습니다. 경제적으로 여력있는 사람들 다수가 촬영 중인 저에게 최대한 친절하고 매너있게 대해 주었으며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서 여유가 넘쳤어요. 돌아보니 어쩌면 그간 제 삶이 너무 여유가 없어 이런 부분들이 눈에 더 잘 들어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비록 작은 스튜디오였지만 투자 대비 효율성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고, 주인으로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판단력도 많이 늘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해보니 장사에 대해 많이 느낀 것 같습니다.
촬영 이외의 영역에서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낯도 많이 가리는 편이었어요. 최근 들어서 ‘그래도 인간관계는 좀 더 잘해놓을 걸’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관계를 통해 여러 번의 좋은 기회가 분명 나에게 찾아왔는데, 돌아보니 그 소중한 관계들을 낯을 가리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나도 모르는 사이 자꾸 1회성 관계로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 얼마 전 고양시에서 꽃단장을 한 어른들의 사진을 작업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재작년 5월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암 때문에 3년 정도 투병생활을 하셨는데, 엄마의 영정사진은 제가 직접 찍었어요. 사진을 신중하게 고르고 보니 돌아가신 어머니가 왜인지 이 사진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영정사진이란 게 누굴 위한 작업인지 의문이 들었어요. 돌아가신 분을 위한 사진인지,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사진인지. 보통 어르신들의 영정사진을 보면 오래된 증명사진을 확대하거나 투박한 표정의 사진들을 자주 접하는데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은 거의 보질 못합니다.
세상에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순히 웃는 사진을 찍자는 의도는 아니지만 어르신들의 삶과 추억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는 사진을 찍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당시 고양시새마을회 추천을 통해 25명의 어르신들을 소개받아 정성스레 사진을 찍었습니다. 새벽에 화훼시장에서 꽃도 하나하나 직접 골라 사오고 한복도 제가 하나하나 자비로 준비해드렸습니다.
날씨가 무척이나 더웠고 코로나 시기라 촬영 전 준비 단계부터 많은 것들이 쉽지 않았지만, 꽃단장을 한 어르신들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환하게 웃으며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당일 정신없이 촬영하느라 저는 기억에 없었는데, 사진을 찍으며 제가 여성 어르신들에게 ‘엄마엄마, 아니지, 이렇게 해보셔요. 아우 이뻐요. 그렇죠. 엄마엄마, 더 크게. 그래요. 더 크게 웃어요’ 이런 말들을 제가 계속 해댔다고 현장에 있던 지인에게서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 왔던 지인이라 저의 촬영하는 모습과 엄마라는 소리가 그날따라 유독 다르게 들렸다 합니다. 그 때가 8월이었고 역시나 무더웠으며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환히 웃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3개월이 지난 후였습니다.
■ 돌봄이 요즘 큰 화두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와 관련해 이야기 해줄 수 있나요.
병간호나 돌봄에 대해서 제가 감히 할 말은 없습니다. 그저 투병 중이었던 엄마가 원하는 것, 예를 들면 엄마가 먹고 싶은 것, 엄마가 가고 싶은 곳, 그리고 엄마가 어떻게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하는지 등등 대화를 통해 서로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갔습니다. 불행인지 아니면 다행인지 엄마의 투병기간이 길어져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알거나 의도해서 그리 했던 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처음이라는 게 있으니까. 엄마도 나도. 투병기간이라 해서 무언가 특별한 일들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시간은 덤덤하고 조용하게 흘렀습니다.
물론 당사자가 제일 힘들지만 소중한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봐야하는 주변사람들도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들 꼭 건강검진 자주 받으시고 자식들이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나 때문에 정말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꼭 정말 꼭! 건강관리를 하면 좋겠습니다. 건강관리라는 말을 내뱉고 보니 정말 이렇게나 뻔하고 나약한 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인간은 가장 아픈 방식으로, 가장 경험해보고 싶지 않은 방식으로 삶을 통해 중요한 걸 배우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 얼마 전 결혼하셨다 하는데, 결혼 이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생활방식 자체가 다 바뀌었습니다. 경제적인 부문은 물론이요, 아침에 눈을 뜨는 일부터, 먹는 것, 쉬는 것, 하루 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 드는 것까지 일상의 사소한 모든 것들이 전부 변합니다. 식사만 보아도 먹는 음식의 메뉴, 먹는 속도, 양, 먹는 환경, 먹는 시간까지 모든 게 다 바뀝니다. 지금 결혼생활을 한 지 6개월이 지났는데 저는 지금 태풍의 한가운데 있는 것 같은 착시가 자주 일어납니다. 당장 내가 서 있는 곳은 고요하고 맑고 쾌적한 것 같습니다만 시커먼 태풍이 나를 중심으로 가열차게 돌고 있다는 게 분명히 느껴집니다. 내가 가만히 얌전히 있으면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데 그러다 한발자국을 잘못 내딛을 경우 저는 분명 저 커다란 소용돌이에 휩싸일 게 확실합니다.
■ 최근 고양시 지역서점에서 사진수업을 진행한다고 들었습니다. 무엇을 알려주고 있나요.
저는 의뢰가 들어오면 거기에 맞게 사진을 찍어주거나 이미지를 만들어 주는 일을 오래 해왔습니다. 이런 저도 지금 사진수업을 받고 있는 게 있습니다. 최근에는 정작 내가 사진 안에서 무얼 좋아하는지, 무얼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라는 생각에 자주 빠집니다. 곰곰이 스스로를 돌아보니 저는 그때그때 바쁘게만 살았지 세상사나 다른 인간에 대해 궁금한 게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음식을 먹어도 왜 이런 맛이 나는지, 관계에서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저는 하나도 궁금해 하지 않았습니다.
사진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창작과정이 세상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에게는 애초부터 이런 마음이 전무했던 것 같습니다. 창작은 결국 무의식과 깊은 사유 속에 존재한다고 하는데, 저에게는 세상과 스스로에 대한 사유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돌아보니 저는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하지 않으면서 그저 다른 사람이 지칭해주는 대로 스스로를 믿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전부 모르겠습니다. 어렸을 때는 30살만 되어도 저에 대해 잘 알 것 같았는데 40살이 되어서도 모르겠습니다. 50대가 되면 알 수 있을까요? 아니겠지요.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한테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엄마 난 잘 모르겠는데, 엄마는 알겠어?’ 생전에 미리 좀 물어 볼 걸. 아니면 나이 차이가 많은 어른한테라도 저의 이런 마음과 생각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순간들이 자꾸 생겨납니다.
평소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이 있느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 편인데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커다란 수고와 힘을 들이지 않고 짧은 시간 안에 한번에 잘 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들을 묻는 겁니다. 더 많이 찍고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돌아다니는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 하나 손쉽게 얻어지는 건 없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정보를 너무 많이 아니까 오히려 기연과 요행을 바라는 마음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 고양시에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다양한 일, 안 해봤던 일들을 많이 해보고 싶습니다. 사진수업, 촬영뿐만 아니라 굳이 사진이 아니어도 좋으니 처음 해보는 일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다 해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관계를 견실하게 쌓지 못해서 잃었거나 놓쳤던 것들이 있으니, 이제는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다양한 일들을 하며 다채로운 관계를 쌓아보고 싶습니다. 제한적이었고 소극적이었던 나에게 고도제한을 풀어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제 삶 안에 비행기가, 우주선이 떠다니게 하고 싶습니다.
■ 40살임을 떠올리며 지난날의 조경민과 앞으로의 조경민 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난 나에게는 하고 싶은 말이 없습니다. 말해봐야 들을 것 같지도 않고. 듣겠습니까? 들을 놈이 아닙니다. “경민아 겪어보니 이런 거 꼭 해라.” 이런 말 절대 안 할 겁니다. 아무리 좋게 이야기 해주어도 듣지 않을 테니. 하지만 앞으로의 나는 해주면 들을 것 같아 이런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나를 좀 더 돌보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새로운 누구를 만나 관계를 맺어도 잘 대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야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해도 나에게 맞추어 잘 계획할 수 있을 것이며 지금 나의 가정도 별 탈 없이 안정적으로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 지금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요.
기분이 이상합니다. 이런 질문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전 요즘 아내와 제일 친하고 아내랑 무얼 하면 제일 좋을지, 아내와 무얼 먹으면 제일 좋은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환경 안에 살고 있습니다. 아내는 분명 제가 제일 많이 신경써야 할 사람이니까. 그런 아내한테서 “너무 행복해, 너무 좋아”라는 말이 가장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