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온상지” vs “위로 주는 대나무숲”

시청 무명게시판 존폐설문조사 지난 28일부터 9월 3일까지 찬반 논쟁으로 게시판 후끈

2024-08-30     김진이 전문기자

[고양신문] “18년 전에도 고양시 직원이 무명게시판 때문에 안타까운 일을 당했고, 몇 년 전에는 고소사건이 일어나 경찰이 서버를 수색한다고 했고 (중략) 한 명의 피해자라도 나온다면 무명게시판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무명게시판은 우리와 함께 있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이곳에서 드러내며 위로를 받는 분도 많았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무명게시판은 잘못이 없습니다. 잘못이 있다면 무명게시판을 잘못 이용한 몇몇 분들에게 있습니다. 많은 공무원들에게 위로가 되도록 오래오래 있으면 합니다.”

고양시청 공무원 무명게시판이 뜨겁다. 고양시 정보통신과가 지난 28일부터 ‘무명게시판 운영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전체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는 9월 3일까지 4000여명 전체의 의견을 모아 최종 존폐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시 정보통신과 담당자는 “설문조사는 무명게시판 폐지 여부를 묻고, 주관식으로 의견을 적는 방식으로 내부망에서 진행하고 있다”며 “당초 1000여명 정도 참여 예상하고 시작했는데 첫날부터 참여자가 많아 전체 공무원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9월 3일 최종 결과를 추합해 결재를 올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 무명게시판 폐지 여부가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최근 구청의 한 공무원이 게시판에 글을 올린 이후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한 직원이 주말에 무명게시판에 올린 동료 공무원 사생활 관련 게시글이 주말 내내 게시되면서 문제가 커졌다. 이후 글을 올린 직원이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시 정보통신과 측은 “최근 불미스러운 일 때문만은 아니고 종종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무명게시판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있었다”라며 “관리하는 입장에서도 공휴일이나 퇴근 이후까지 관리가 쉽지 않아 설문조사를 통해 향후 운영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이라는 특성상 그동안 무명게시판은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왔다. 시장이나 상사에 대한 솔직한 공무원들의 속내를 드러낸 게시글이 밖으로 유출돼 언론보도가 되기도 하고, 게시자와의 소송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폐쇄적인 공직사회에서 무명게시판은 일종의 ‘대나무숲’ 기능을 하며 부서, 직급을 넘어 광장의 역할을 해온 측면도 있다. 
이 때문에 설문조사가 시작된 지난 28일 이후 무명게시판에는 폐지에 대한 찬반 의견이 올라오고 있다. 특히 계속 운영을 주장하는 ‘무명게시판은 잘못이 없다’는 글에 29일 현재 500명 넘게 찬성의견을 달고 있다. 

한 공무원은 “담당부서에서 24시간 관리를 하기 어렵다. 결국 이번 같은 일은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어서 폐지를 계속 주장해왔다”며 “무명게시판에서는 계속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많이 나오고 지지를 받고 있기는 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고양시 무명게시판은 인트라넷 시스템 도입 때부터 만들어져 직원들 여론의 장으로 활용돼왔다”며 “그동안 여러 문제가 있기도 했지만 관리를 강화하거나 실명으로 바꾸는 등 운영 방안을 고민하면 될 텐데 굳이 폐지논의까지 하는 것은 무명게시판이 불편해하던 시가 이참에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터트렸다.

9월 3일 설문조사 결과에 따라 고양시 공무원 무명게시판 존폐 여부가 결정되겠지만 어떤 결과든 후속 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계속 운영할 경우 문제가 되는 게시글 관리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효율적인 관리 방안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한편에서는 고양시가 안타까운 사고와 소문 이후 신속하게 사실상 ‘폐지’를 위한 수순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