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지 칼럼] 공감 가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예술 비슷한 거 하는 M세대의 글쓰기>
[고양신문] 이번에는 수필 공모전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수필이란 에세이의 한국말에 불과한 것이고, 에세이라면 매일 같이 블로그에 쓰고 있으니 어려울 건 없습니다. 쓰던 대로 쓰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수필’이라는 단어를 보고 있자니 묘한 무게감이 느껴졌습니다. 그 고아한 이름을 달고 감히 신변잡기 따위를 쓰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보다 고상하고 드높은 것, 그러니까 사랑과 도덕과 인생에 관한 것들을 써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른의 삶과 사랑을 주제로 두 편의 수필을 썼던 겁니다. 모든 것은 여기서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고작 세 페이지짜리 수필인데도 퇴고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문장을 다듬어도 어딘가 설익은 냄새가 나는 듯했습니다. 매일 책상 앞에 매달려 구성을 바꾸고 문장도 일곱 번, 여덟 번씩 수정해봐도 풋내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설픈 녀석이 열심히 프로의 솜씨를 흉내 낸 글 같달까요? 제가 보기에도 이 모양이니 친구에게 봐 달라고 하기가 민망했습니다. 부탁을 하려 해도 부끄러운 마음이 앞서 자꾸 글을 고쳐대는 통에 마무리를 지을 수도 없었습니다.
여기서 잠시 글쓰기 팁을 드리자면, 글이 빨리 늘고 싶다면 자신의 글을 읽어줄 사람 한 명 정도는 곁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 쓰는 동안엔 자신의 글에 매몰되어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누군가 글을 읽고 의견을 주면 그제야 놓친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누군가를 구하는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에겐 오랜 다독으로 잘 벼린 눈이 있어야 하고, 솔직하게 평할 수 있는 입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책을 읽는 사람을 찾기도 어려운데 정직한 입까지 갖춘 사람을 찾기란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솔직히 말했다가 괜한 미움을 살까 봐서 다들 말을 아끼기 때문입니다.
사실 글의 단점을 잘 말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저도 수년째 글쓰기 수업을 해오고 있지만 글의 단점을 말할 때면 늘 온몸의 비늘이 곤두서곤 합니다. 글쓴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말을 잘 둥글려서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장인의 솜씨가 필요합니다. 그런 솜씨를 주변 사람에게도 기대할 순 없습니다. 결국 진실의 입을 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혹평에도 상처받지 않는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저도 친구에게 따뜻한 수육 한 접시를 사 먹이며 굳이 이런 말들을 늘어놓았던 겁니다. 내 글 진짜 형편없다. 빵점짜리라고 해도 전혀 상처받지 않는다. 그러니 5점 만점으로 해서 점수를 좀 매겨달라.
그렇게 애걸복걸하여 받아낸 점수는 2점이었습니다. 상처받지 않는다는 말은 당연히 거짓말입니다. 세상에 그런 작가는 없습니다. 다음날 새벽 4시에 저절로 눈이 떠졌고, 컴퓨터 앞에 앉아 마치 대단한 복수를 앞둔 사람처럼 동이 틀 때까지 원고를 노려보았습니다. 친구의 혹평이 분해서 그랬던 것만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 눈엔 괜찮아 보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가 무참히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은, 제가 스스로에게 준 평은 더욱 가혹했습니다.
“실상은 교조적이면서 위트 있는 척 구는 게 역겨운 글”
하지만 원래 확인사살이 더 아픈 법입니다. 그렇게 타살당한 영혼으로 글을 노려보고 있자니 무엇이 문제인지 보이는 듯했습니다. 모르는 걸 아는 척하며 쓴 게 문제였습니다. 사랑도 모르고 인생도 모르고 어른도 아닌 것이 온갖 아는 체를 하며 말하니, 글에 공감하기 어려웠던 겁니다. 다행히 지독한 퇴고 덕에 문장은 단정했습니다. 그렇게 단정하게 역겨운 글을 공모전에 보내고 나니 또 한 달이 흘러 있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았습니다. 공감 가는 글을 쓰기 위한 중요한 교훈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아는 척을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