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에서는 논쟁하지만 함께 밥먹는 정치
[높빛시론] 김범수 자치도시연구소장
[고양신문] 우리는 가끔 정치인을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치인들은 앞에서는 싸우고 뒤에서는 악수하고 함께 밥도 잘 먹는다.” 정치인들이 이중 인격자라는 비판이다. 그런데 요즘과 같이 정치양극화가 심각한 정치에서는 논쟁하면서도 함께 밥먹는 정치인들이 필요한 것 같다.
정치양극화는 정치영역에서 진보와 보수로 나눠진 것으로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양극화의 sorting(소팅)이다. 해석하면 '결집 정렬'이다. 소팅은 엑셀과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할 때, abc 순서나 가나다 순서로 많은 데이터를 정열하는 방식이다. 정치 양극화가 소팅된다는 것은 정치뿐 아니라 사회관계, 취미, 삶이 정치 양극화를 따라 결집 정렬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진보적인 사람이 진보적인 사람과만 밥먹고, 진보적인 사람과만 친구하며, 진보적인 사람과만 취미생활을 즐기고, 교회나 절과 같은 종교시설 안에서도 진보적인 사람과 어울리는 결집 현상이다. 보수적인 사람은 친구, 취미, 결혼, 종교 생활을 모두 보수적인 사람들과만 한다. 진보-보수를 기준으로 친구관계, 취미활동, 종교생활, 결혼 등 모든 분야가 진보와 보수를 결집하고 쪼개진다.
정치양극화가 사회 모든 분야로 확대되면, 민주정치는 무너진다. 민주주의는 다수가 다스리는 정치이므로 다수결로 의사결정을 한다. 다수결로 하면 소수자는 불만스럽다. 그럼에도 소수가 민주정치에 동의하는 이유는 설득을 통해 자신도 다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소수가 다수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는 갈등이 다양해야 한다. 환경, 복지, 문화, 정치, 경제, 종교 등 각 영역에서 다수와 소수의 균열이 다르게 형성하는 사회가 다원사회다. 한 개인이 환경주의자로서 요즘에 다수에 속할 수 있지만, 동시에 가부장적인 유교문화를 좋아하기에 문화적으로 소수에 속할 수 있다. 다양한 이슈와 분야에 개인들의 선호가 복잡한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영원한 승자와 패자는 없다. 선호가 교차(cross-cutting)하기에 사람들이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다. 정치-경제-환경-종교-취미 모든 영역에서 진보의 결집이 나타나고 보수의 결집이 발생하면, 공동체는 타협과 협상의 여지가 없이 두 개로 쪼개진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국회의원,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의 국회의원들이 앞에서도 싸우고 뒤에서 밥도 먹지 않고, 악수도 하지 않고 대화도 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큰 일이다. 요즘 최고 권력자가 야당 국회의원이나 대표와 밥도 먹지 않는다. 국회 개원식에 나가지 않아 만날 기회를 스스로 닫았다. 심지어 여당의 대표와 지지자를 제외하고 자기 편 사람들을 초대하여 식사했다. 대한민국의 최고 정치인이 정적과는 앞에서도 싸우고 뒤에서 밥도 먹지 않는다. 고양시 정치에도 심각한 정치양극화 결집 정렬 소식이 들렸다. 고양시장이 야당 시의원들과 함께 밥먹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의회에서 회의를 마치고 식당에 가면 A당 소속 시의원들이 따로 식사하고 B당 소속 시의원들이 다른 테이블에서 식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의회에서 ‘왕따’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민주정치는 설득과 타협이 원리일 것이다. 독재정치는 무력과 억압으로 상대를 제압하여 내 의사를 관철시킨다. 민주정치에서 폭력은 불법이다. 상대에게 내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설득해야 하고, 설득하기 위해서는 만나야 한다. 밥도 먹고, 차도 마셔야 대화와 설득의 기회를 얻는다. 김영삼, 김대중 두 정치인이 다시 회고된다. 이들이야말로 겉으로는 싸우고 속으로는 악수하고 밥도 먹은 대표적인 정치인일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회고록을 보면 재임 시절에 자신을 사사건건 반대했던 김대중 당시 야당 대표에게 진정으로 불만을 품고 있음을 토로한다. 그러함에도 김영삼 김대중 두 정치인은 만나고 밥먹고 악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
2024년의 한국정치,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 입법부의 여당과 야당의 정치인들이 앞에서 싸우고 뒤에서도 밥도 먹지 않는 상황이다. 정치양극화의 결집 정렬이다. 고양시장과 고양시의회만이라도 회의에서는 논쟁하지만, 회의를 마친 후에는 밥은 함께 먹으면서 소통의 기회를 함께 만드는 정치인들이 많아지길 소망한다. 정치인들이 대결하면, 국민들도 진보-보수의 정치양극화에 결집 정렬될 것이다.
정치인들이 모범을 보여야 할 때다. 리더들은 앞에서는 싸울지언정 뒤에서는 만나고 악수하고 밥먹길 바란다. 만남과 대화의 기회를 늘리면, 설득과 타협의 가능성도 커진다. 힘과 무력, 압박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폭력 정치는 최소화하고, 대화와 설득으로 상대와 타협하는 대화정치를 우리의 정치인들이 복원하길 소망한다. 첫 출발은 한 테이블에서 함께 밥 먹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