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사나이

2001-08-08     정경희
31년전 영국의 런던대학에는 한국문학사를 강의하는 스킬런드 교수가 있었다. 서울에도 다녀간 일이 있는 한국문학사 학자였다.
그는 “한국인의 특징은 사대주의”라고 했다. 왕조시대 중국과의 외교관계에 대해 별다른 연구가 없었던 필자로서는 그다지 유쾌한 얘기도 아니었기 때문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지나쳐 버렸다.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 발표로 또 다시 팽팽하게 맞선 ‘언론정국’속에서 필자는 31년전 스킬런드 교수의 말을 떠올리고 있다. 세무조사와 신문개혁에 저항하고 있는 과점신문들, 그중에서도 특히 조선일보는 유난히 외국인들의 우리 언론정국에 대한 말참견을 좋아한다.
홍석현씨의 거액탈세가 문제됐던 재작년에는 국제언론인협회(IPI)가 “중앙일보 탄압”이라 했고, 지난 4월에는 ‘국경없는 기자들(RSF)’이라는 단체가 언론사 세무조사를 ‘언론탄압’이라고 비난했다.

무지한 ‘프리덤포럼’ 회장

그때마다, 지난 2월 미국무부의 ‘2000년판 인권보고서’를 포함해서 과점신문들은 마치 세계가 한국의 언론탄압을 비난하고 있는 것처럼 대서특필했다. 원문에 없는 말을 덧붙이거나 의도적으로 왜곡을 일삼았다. 이들 국제언론단체들의 비난은 모두 한국의 실정을 모른 채 그들만의 시각으로 ‘언론탄압’이라고 비난하는 ‘무지와 오만’의 산물이다.
조선일보는 엇비슷한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또 하나의 ‘국제언론경찰’을 등장시켰다. 미국의 ‘프리덤 포럼’이라는 단체의 회장 피터 프리처드라는 사람의 인터뷰를 지난 21일 한 면(9면) 통째로 실었다. <정부의 대규모 언론공격은 한국이 처음>이라는 대문짝 만한 제목이 지면을 압도하고 있는 인터뷰 내용은 IPI나 RSF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실정에 무지한 상태에서 언론사 세무조사를 ‘언론탄압’이라는 전제하에 한국을 심판하는 것이다.

그는 과거 멕시코나 푸에르트리코에서 ‘비판적 언론’에 대해 세무조사를 한 적은 있지만, “한국에서처럼 정부가 언론에 대해 대규모로 공격한 일은 없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과점신문들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기관이요, 3개 신문이 적어도 60%, 어쩌면 74%(광고주협회 조사)까지 신문시장을 과점지배하는 바탕 위에서 정부와 국민 위에 군림하고, 또 ‘언론독재’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는 다만 고전적인 ‘시장의 논리’가 살아있는 미국에 국한된 ‘미국식 정의(正義)’를 서당 훈장처럼 설교하고 있다. 그래서 부처는 이르기를 “중생은 자기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줄을 모른다”고 했다(열반경).

‘사대주의’ 빠진 언론이 문제

더욱 가소로운 것은 세무조사가 “비판적인 글을 쓰는 사람들을 얼어붙게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만일 한국에 와봤다면, 그래서 과점신문들이 날이면 날마다 정부와 국세청을 ‘언론탄압’이라는 이름으로 난타하고 있는 현실을 봤다면 자신의 무지몽매함이 부끄러워 쥐구멍을 찾았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는 “중생은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고 일렀던 것이다. 그는 또 경솔하게도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 부인의 죽음에 대해 언급했다.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면서 “세계가 한국의 언론문제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기를 바란다”고 한국을 협박했다.
그는 아마도 조선일보의 시각에 동조하는 것 같다. 조선일보(16일자)는 김 명예회장 부인의 죽음이 마치 세무조사 탓인 것처럼 4개면에 걸쳐서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김회장 부인의 죽음이 세무조사와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만에 하나 관련이 있다 해도 ‘항의(抗議)를 위한 죽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마디의 유언이나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피터 프리처드가 걱정하는 것처럼 오늘날 한국언론의 문제는 ‘자유’가 아니라 ‘자유롭고 공정한 언론’이다. 피터 프리처드는 한국이 아니라 멕시코나 푸에르트리코를 향해서 설교를 했어야 했다. 그래서 부처는 이르기를 “중생은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고 일렀던 것이다.

국내의 과점신문들은 이처럼 무지몽매한 외국의 언론단체나 언론인의 말이라면 용수철처럼 펄쩍 뛰어가고, 그들을 유력한 ‘국제언론경찰관’으로 모시고 있다. ‘사대주의’가 아니라면 국내에서 설득력 있는 동맹자의 글을 찾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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