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만에 수도권에 날아오른 ‘따오기’… 왜 시흥이었나
[르포] 수도권에 진출한 ‘우포 따오기’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받은 날 시흥 관곡지에 출현 눈길 끌어 자연계와 인간사 치유 복원 ‘화두’
[고양신문] 1979년 경기도 파주 DMZ에서 관찰된 것을 마지막으로 우리 곁에서 사라졌던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따오기가 복원되어 10월 수도권 하늘에 다시 날아 올랐다. 무려 45년 만의 일이다.
비슷한 시각, 1980년 5월 광주의 시공간에서 벌어진 잔혹한 학살로 영혼이 파괴되고 상처 입은 존재들을 고통스럽게 되살려낸 작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강이 세계에 던진 묵직한 화두는 44년이라는 시간의 강을 흘러 희미해진 사람들의 기억을 일깨웠다.
곳곳에 포식자 도사리는 야생의 삶
경남 창녕군 우포늪에서 낳고 자란 따오기를 경기도 시흥에서 목격한 것은 지난 10월 12일이었다. 따오기가 관찰되었다는 관곡지 옆 연꽃테마공원은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초대형 카메라 수십 대와 사진가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축제일도 아닌데 10여 명의 색소폰 동호인들은 오래된 노랫가락을 뿜어대 시골 장터를 방불케 했다. 관곡지는 조선 세조 때 강희맹이 명나라에서 연꽃 씨를 가져와 처음 심은 곳으로, 주변에 3만 평 규모의 연꽃테마공원이 조성되어 관광명소가 됐다. 공원 방죽에 서식하는 붕어, 개구리, 미꾸라지, 우렁이를 잡아먹기 위해 저어새, 백로, 흰뺨검둥오리, 쇠물닭 등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공원 주변에는 시흥갯골생태공원에서 호조벌, 물왕저수지로 이어지는 약 20리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고, 산책로와 나란히 흐르는 하천에는 멸종위기종 저어새들이 공원과 하천, 농경지를 오가며 활발하게 먹이활동을 했다.
따오기를 발견한 곳은 추수가 끝난 호조벌 들판이었다. 하얀 깃털에 가면을 쓴듯한 붉은색 머리, 아래로 굽은 긴 부리를 가진 따오기 한 마리가 논바닥에서 진흙을 뒤져 미꾸라지 사냥을 하고 있었다. 고향인 우포 모곡마을 논에서 매일 했던 먹이활동이었다. 따오기는 논이나 하천에서 작은 물고기나 개구리, 곤충 등을 잡아먹는데, 자연 방사에 앞서 비행훈련, 대인 적응훈련, 먹이 섭취 훈련 등을 석 달간 받았다고 한다.
발목에는 ‘29V’라고 쓰인 가락지가 달려 있었다. 이인식 우포자연학교장은 “2018년 출생해 2021년 10월 우포늪에서 방사된 암컷으로, 지난해 6월 전북 김제에서 확인됐으며 올해 9월부터 시흥에서 관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29V 따오기가 먹이활동을 하던 곳에서 100미터 떨어진 논바닥에서는 매가 운수 나쁜 새를 사냥해 식사를 시작하고 있었고, 포식자인 삵의 발자국도 보였다. 곳곳에 포식자들이 도사린 야생에서 따오기의 삶은 고단하고 위태로워 보였다.
따오기가 시흥을 선택한 이유
동요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으로 널리 알려진 따오기는 과거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겨울 철새였는데 한국전쟁 이후 무분별한 살충제 살포와 서식지 파괴, 남획 등으로 개체수가 격감되었다가 1970년대 말 절멸 상태에 이르렀다. 특히 화학비료, 농약, 살충제를 마구 뿌리는 관행농업은 미꾸라지, 우렁이, 개구리, 곤충 등을 논에서 사라지게 해 따오기, 뜸부기를 비롯해 논에서 먹이를 구하는 수많은 새와 곤충을 죽음의 길로 내몰았다.
따오기가 사라지자 정부와 창녕군은 2008년 중국에서 따오기 1쌍을 들여와 국내 최대 내륙습지인 우포늪에서 증식, 복원에 나섰다. 복원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멸종된 지 40년 만에 첫 자연 방사가 이뤄졌고, 지금까지 9차례에 걸쳐 총 330마리가 자연으로 보내졌다. 야생 방사된 따오기는 주로 창녕 주변에 머물면서 텃새화되고 있는 가운데 부산, 대구, 사천, 경주, 남원, 하동 등 남쪽 지방에서 두루 관찰되고 있다. 생존율은 약 30~35%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오기는 왜 마지막 모습을 보인 파주나 다른 지역이 아닌 시흥을 선택했을까.
시흥은 1925년 동요 ‘따오기’를 지은 아동문학가 한정동(1894~1976) 선생이 묻힌 곳이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는 애틋한 마음을 담은 ‘따오기’는 당시 나라 잃은 민족감정을 노래했다고 해서 금지곡이 되었던 노래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 인연으로 시흥시는 해마다 ‘전국 따오기동요제’도 개최하고 있으며 2022년 물왕저수지 인근에 ‘시흥 따오기 아동문화관’을 만들었다. 지난해에는 산현동 일대에 ‘따오기 문화공원’을 개장하는 등 따오기의 문화적 복원에 앞장서고 있다. 새의 어원이 ‘하늘과 땅 사이’를 잇는 생물이라는데, 따오기가 시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더 잘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야생 7마리에서 1만1천마리로 늘어
동아시아 고유종인 따오기는 영원히 멸종될 뻔했지만 1981년 중국 산시성 양현에서 야생 따오기 7마리가 발견되어 가까스로 되살아났다. 야생 따오기는 중국 정부의 세심한 보호 속에 번식해 나갔고 한국과 일본에 기증되어 3국에서 따오기 야생 개체군이 형성되었다. 중국 국가임업초원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전 세계 따오기 개체 수는 1만1000마리다.
따오기의 학명은 Nipponia nippon이다. 동아시아에 널리 서식하던 따오기 이름이 nippon(일본)이라 명명된 것은 19세기 초 유럽학회에 처음 소개된 따오기가 일본산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조류학회는 1922년 따오기의 학명 ‘Nipponia nippon’을 세계에 발표했다.
번식기가 되면 따오기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턱 주변에서 나오는 분비물을 문질러 머리와 목, 등의 하얀색 깃털을 어두운 회색으로 바꾸는 일이다. 짝짓기를 할 때면 부리를 부비며 서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따오기는 부부 금실이 좋아 예부터 ‘사랑새’라 불렸다. 짝짓기가 끝나면 따오기 부부는 둥지 만들기에 들어가는데 삵, 담비, 수리부엉이 등 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인가에서 가까운 높은 나무를 선택한다.
이인식 교장은 “따오기 방사를 시작한 지 5년 만에 전국에서 따오기 발견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우포 따오기가 자연에 잘 적응하고 있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판단된다”며 “한반도 전역에 따오기가 복원되려면 아직 갈 길이 먼데 작년부터 예산이 많이 삭감되어 따오기와 서식지 복원에 애로사항이 많다. 국가적인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질녘 날갯짓하는 분홍빛 날개가 노을에 비쳐 더욱 신비롭게 느껴지는 따오기 29V. 절멸까지 갔던 따오기는 자연계에서 되살아나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개척하고 있는데, 작가 한강이 고통스럽게 끄집어낸 인간사의 복원은 더 복잡하고 지난하다. 상처받고 외면당한 우리 사회의 아픈 단면들은 언제쯤 재조명되어 치유되고 복원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