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석 칼럼] 삶의 교육과정을 위하여

내일은 방학

2024-11-01     송원석 일산양일중 교사

[고양신문] 요즘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수업의 주제는 인구 문제입니다. 교과서는 선진국의 인구 문제, 개발도상국의 인구 문제를 비교하면서 시작합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나누어 인구 문제를 서술하고 있는 배경이야 교육부가 정한 기준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겠지만 저출생, 고령화는 선진국의 인구 문제이고, 인구 급증, 대도시 인구 과밀, 성비 불균형은 개발도상국의 문제라고 일반화하는 것이 영 마땅치 않습니다. 
1인당 국민 소득이 3만 달러를 넘으면서 명실상부한 선진국 반열에 오른 우리나라는 대도시 인구 과밀이 없나 봅니다. 저출생으로 학교 폐교가 낯익은 풍경이 된 선진국 대한민국 한복판, 그곳에 서 있는 지금 우리 학교는 학급 수 49개, 학급당 학생 수 30명입니다. 지방은 이미 OECD 평균인 학급당 학생 수 15명을 달성했고, 고양시 중학교 학급당 학생 수는 평균 24명입니다. 대한민국 공립중학교 최대 과대, 과밀 학교에서 저출생은 공룡 대 멸종만큼이나 전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의 몸이 먼저 느끼게 수업의 문을 열었습니다. 교실을 정확히 100개 면적으로 나눈 후, 1%에 해당하는 하나의 면적에 노란 분필로 선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30명 중 20% 해당하는 6명의 학생을 초대해서 3분간 1%의 면적에 서 있게 했습니다. 좁은 공간에 서 있는 아이들 표정이 일그러집니다. 그 표정이 재밌었는지 관객 24명은 연신 웃음을 쏟아냅니다. 그리고 사실을 하나 교실 바닥에 조용히 내려놓았습니다.

"서로의 몸을 감싸 안지 않으면 도저히 서 있을 수조차 없는 이 작은 공간은 서울의 면적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6명의 학생은 서울에 살고 있는 전체 인구이구요.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학교에서 살고 있는 모습은 이것보다 더 심한 상황이에요."

자기 삶의 문제가 수업과 만나는 순간은 늘 반짝반짝합니다. 우리 학교의 인구 문제가 수업 주제가 되니 독려하지 않아도 알아서 모둠을 만들고, 자기 생각이 담긴 언어들이 교실에 가득합니다. 3년간 익숙해서 보이지 않았던, 느끼지 못했던 노란 분필선 안의 삶들이 필름처럼 지나가나 봅니다.

좁은 복도를 늘 뛰어다니다 정형외과 단골이 된 K는 학교 주변 도서관 공간을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고 제안합니다. 인원이 많아 특별실에서 활동 수업을 제대로 하지 못해 불만이 많았던 미술천재 S는 이제라도 학년별로 특별실 사용 범위를 정하자는 똘똘한 제안을 해서 박수를 받았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교무실에 와서 질문하기를 좋아하는 M은 4인 공간에 9명의 선생님이 근무하는 교무실 들어가기가 늘 죄송했다고 고백하면서 자신들이 쓰고 있는 세치실을 교무실 공간으로 드렸으면 좋겠답니다. 이 대목에서 조금 울컥했습니다.

경험은 지식을 살찌게 하고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학교와 학원, 그리고 유튜브의 세상이 주는 경험이 전부인 우리 아이들이기에 수업에서 다루는 주제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디지털 교과서가 나온다고 해서 국가가 정한 기준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기준안에서의 경험은 나의 삶이 될 수 없습니다.

송원석 일산양일중 교사

삶의 교육과정이 오롯이 학교에서 꽃피기 위해서는 교과 활동과 비교과 활동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연결되고 국가 수준 교육과정이 지역 교육과정으로 대체될 때 가능합니다. 학교마다, 교사마다 각자의 교과서를 가질 수 있을 때 삶의 교육과정은 완성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