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일푼으로 상경해
1만2천평 시설채소 운영

마을과 함께하는 이웃 이용연 한국농촌지도자 고양특례시연합회장

2024-11-14     한진수 기자

일산열무 지리적 표시 적극 나서
가족과 함께 농업의 성공 이끌어
다양한 시도로 새로운 기회 창출


[고양신문] 1990년, 충남 서산 운산면 원평리에서 자란 7남매 중 다섯째는 홀로 서울로 올라와 건설업을 거쳐 농산물 관련 직장에 취직했다. 농산물 유통에서 3년을 보낸 이 경험은 이후 그의 농업 인생에 중요한 토대가 됐다. 유통의 흐름을 익히며 농업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계기가 됐고, 그의 삶에 새로운 도전을 하게 했다. 이용연 한국농촌지도자 고양특례시연합회장의 이야기다.

이용연 한국농촌지도자 고양특례시연합회장은 "긍정적 마인드를 갖는다면 농업에서 충분히 미래를 찾을 수 있다"라고 했다.

농산물 유통으로 농업에 자신이 생긴 이용연 회장. 1993년 직장을 그만두고 당시 2500만원을 종잣돈으로 덕양구 원당동에 있는 2400평의 하우스를 인수했다. 유통에서 배운 '경험'과 ‘도전’이라는 두 글자만 믿고 열무와 얼갈이 재배를 결심한 그는 열심히 일하며 생산과 유통에 몰두했다. 그러나 생각대로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짧은 3년의 경험은 단 1년 만에 겸손함으로 바뀌었고, 결과적으로는 마이너스 1000만원의 손실을 안게 됐다. 당시 그는 32세였고 결혼한 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큰 시련이었지만, 그저 좌절하며 시간을 보내기엔 아까운 나날이었다.

2024년 생활개선 농촌지도자 활성화 워크숍에서 한국농촌지도자 고양특례시연합회가 최우수상을 받았다.

“적자가 아닌 1년간의 수업료를 낸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며, 새로운 농산물에 도전을 해야 했어요. 처자식이 있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다시 힘을 냈고, 든든한 아내가 있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순간 모두는 아내의 든든한 내조가 없었다면 이루기 힘들었을 겁니다”라며 혹독한 배움의 시간을 이야기했다.

이용연 회장이 부인 김선옥씨와 잉꼬부부 포즈를 취했다. 실제로 잉꼬부부다.

이후 생산물을 변경해 2400평의 땅에 오이를 심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여러 번 고민하고 시장성을 따져 본 후 내린 투자였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저녁 7시까지 하루 종일 내 자식처럼 오이를 가꾸며 정성을 쏟았다. 하지만 땅은 그의 노력을 쉽게 보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의기소침하지 않고 도전해 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조금씩 성장의 징후가 보였기 때문이다. 땅은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준다고 믿으며 부족한 건 자신의 노력이라고 생각했다. 3년 차가 되자 드디어 생산과 수익이 안정되기 시작했고, 농업의 즐거움을 느끼며 아내와 함께 하우스에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빚을 갚아 나가면서 농사의 길과 가족의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들과 딸도 농장에서 함께 일을 한다. 4명의 가족이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농업에 전념하고 있다.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서울 유진상가와 영등포시장의 도매인들과의 교류도 활발해졌다. 오이와 다양한 농산물을 시장에 내놓았다. 그만큼 연구하고 노력한 덕에 시장에서도 그의 농산물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품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사람으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이후 다시 열무도 재배했는데, 바로 그 유명한 일산열무였다. 서울 은평구 수색, 모래내, 영등포시장까지, 상인들이 생산지에서 직접 구매해 판매를 할 정도였다. 신뢰와 품질 덕분에 좋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었고, 그가 생산하는 농산물에 대한 신뢰는 계속 쌓여 갔다.

11월 9일 공릉천 체육공원에서 열린 농업인의 날 화합한마당에서 떡메치기를 하는 이용연 회장(오른쪽).

“그때는 일산열무가 지금처럼 박스 포장이 아니라 나비단(묶음)이라고 해서 판매가 됐어요. 품질도 좋고 아삭하고 줄기도 튼튼하고 푸짐해 서울 도심 소비자들이 좋아했죠. 물론 고양시가 지리적 여건도 좋고 토질과 기후 환경 등의 요건이 잘 갖춰져서 그렇기도 하지만 일단 품질이 좋아 소비자들이 찾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산열무가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종자개선으로 우수한 열무가 생산됐기 때문입니다”라며 여러 환경과 종자개선을 통한 품질 우선이 소비자들에게 잘 각인됐다고 말했다. 

이용연 회장이 가족과 함게 키우는 '고수'. 이 회장 농장의 농산물은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일산열무의 명성이 점점 퍼지며, 그의 열무는 전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서울 송파 가락동시장에 일산열무가 입성했을 때는 무척 기뻤지만, 만족하지 않고 더 열심히 농사에 정성을 쏟았다. 일산열무는 고급 농산물로 평가받았고, 이 회장의 열무는 백화점에서만 만나볼 수 있을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았다. 그는 아내와 함께 꾸준히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며 일산열무의 품질을 지켜냈다.

당시 그는 고양시시설채소생산자연합회에서 활동하며 열무와 얼갈이에 이어 시금치, 대파 등 다양한 채소도 생산했다. 그의 농산물은 뛰어난 품질로 좋은 평가를 받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자부심이 커져 갔다. 그러나 농민단체 활동이 농업 인생에 변곡점이 됐다.

왼쪽 가슴에 달린 한국농촌지도자연합회 배지. 그에게 자부심이고 책임감이다.

한국농촌지도자 고양시연합회 산하 4개 연구회 중 시설채소연구회에서 2008년 총무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2011년부터는 한국농촌지도자연합회 사무국장으로도 3년간 일했다. 꼼꼼한 성격 때문에 사무국 일에 집중하다 보니 농사일에는 소홀해졌다. 그 사이 열무의 품질은 타 생산자에게 뒤처지기 시작했고, 도매인들 사이에서 그의 열무 신뢰도가 줄어들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1년간 품질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 시기가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이후 그는 이 경험을 밑거름 삼아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

그는 늘 가족과 농장일을 논의하고 대화로 풀어간다. 농산물 품질과 신뢰는 소통으로 이뤄낸 결과다.

과감히 열무에서 벗어나 새로운 작물로 전환을 결심하며 오랜 고민 끝에 나물용 들깻잎을 선택했다. 열무와 몇 가지 농산물만을 고집했던 그에게 들깻잎은 예상치 못한 기회였다. 가족들의 손을 거쳐 정성껏 키운 들깻잎은 우수한 품질로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위기는 곧 기회가 됐다. 나물용 들깻잎은 효자 농산물로 자리 잡으며, 그의 든든한 자산이 됐다.
“들깻잎이 효도 작물이 됐어요. 덕분에 현재 1만2000평의 농장과 60동의 하우스를 운영할 수 있게 됐죠. 어려운 시절을 함께해준 동료 농업인들의 도움 덕에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습니다. 본업에 소홀했던 경험이 지금도 한눈팔지 말라는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라고 생산물 전환이 신의 한수였다고 말했다.

트럭에 가득 실려 도매시장으로 출발 전. 이 회장의 둘째딸이 트럭을 직접 운전한다. 

이용연 회장은 애증의 일산열무를 지리적 표시제로 등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산열무의 뛰어난 품질이 지역 브랜드로 자리 잡아, 농민들에게 자부심을 주고 지역 농산물의 가치를 높이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에 농촌지도자 활동을 통해 처음으로 지리적 표시제 도입을 제안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고, 올해 4월에 지리적 표시 115호로 등록됐다.

“일산열무의 지리적 표시 등록은 고양시농업기술센터, 농가, 농협이 함께 이뤄낸 성과입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고양의 농산물이 지리적 표시로 등록되어 좋은 평가를 받길 바랍니다. 농업인, 농협, 농업인단체, 농업기술센터가 힘을 합친다면 충분할 겁니다”라며 당시의 소감을 전했다.

초록 대로처럼 가지런하게 쭉 뻗은 시설채소.. 

이 회장은 고양시에서 처음 문을 연 원당농협 로컬푸드직매장의 창립 멤버로, 개장에 동참하며 지역 농산물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로컬푸드 생산자 교육을 받고, 시금치와 열무를 직접 재배해 생산·판매자로 활동했다. 현재는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며 생산과 도매 활동으로 바쁘지만, 로컬푸드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깊다.

지금은 아들과 함께 원당농협 조합원으로 둘째딸은 청년 농업인으로, 아내의 든든한 지원으로 가족이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고수와 깻잎, 쑥갓 등을 전문적으로 재배하는 시설채소 농사를 지으며 성장의 틀을 이어가고 있다. 

이 회장은 '농산물의 품질은 곧 신뢰'로 이어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무엇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