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고양시 고교자퇴 716명, 대부분 '입시' 위해
“입시 위한 효율적 판단” “공교육 붕괴”
수원 772명 이어 도 2위, 졸업생 9%
입시‧검정고시 위한 ‘기타’ 대부분
[고양신문] 덕양구의 A씨는 올해 1학기 중간고사 결과를 받아든 고1 아들이 고등학교를 그만 두겠다는 '선언'을 들었다. ‘고등학교는 졸업해야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A씨는 당황했지만 가족회의를 열어 다함께 논의를 하기로 했다. 보수적인 남편은 ‘자퇴는 절대 안된다’는 입장이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다니고 있는 누나는 동생의 입장을 이해한다며 객관적인 자세를 취했다. 1차 회의에서 아들은 자퇴, 학업중단을 결심한 계기를 상세하게 브리핑했다.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성적이 좋지 않아 학교생활기록부와 내신성적을 중심으로 한 수시에서 불리하다. 수능점수만을 고려한 정시를 준비하려면 지금의 학교 생활은 오히려 불리하다. 검정고시를 보고 정시를 준비하려고 한다.”
검정고시는 공고 6개월 이전 자퇴를 해야하니 가능한 빨리 학업중단을 하겠다는 것이다. 1차 회의는 사실상 설명만 듣고 끝났다.
담임교사와 엄마, 아빠가 각각 면담을 진행했는데 교사는 뜻밖에 이야기를 전했다. “학생의 이야기가 지금의 학교 현실을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정시를 준비한다면 굳이 학교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 맞다. 학교에 남는 이유를 굳이 따지자면 친구관계 정도를 말할 수 있다.”
세 차례 회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A씨의 아들은 스스로 입장을 바꾸고 자퇴를 포기했다. 고등학교가 사실상 입시 ‘준비기관’이 되면서 학업중단 학생수는 전국적으로 가파르고 늘어나고 있다. 일선 학교에서는 일상적 행정 업무가 된 지 오래다.
고양시 학업중단자는 올해 10월 31일 기준 716명, 21년 389명, 22년 558명, 23년 678명으로 급속히 늘고 있다. 23년은 남 289명, 여 389명, 올해는 남 301명, 여 415명으로 여학생이 100여명 더 많다. 경기도에서는 수원 772명 다음으로 고양시가 많다. 용인 699명, 성남 598명, 부천 365명, 파주 251명, 의정부 246명 순이다. 경기도에서 수원, 용인, 고양시순으로 인구가 많다.
학업중단 이유는 ‘기타’가 가장 많고 해외출국 87명, 부적응 47명, 질병 24명, 가사 2명이다. 기타 사유는 입시, 검정고시 응시를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716명 중에서는 일반고가 536명으로 가장 많고 특성화고 136명, 특목고 44명이다.
3학년 졸업생수와 학업중단수가 반비례해 증감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졸업생은 21년 9408명, 22년 9685명, 23년 9466명, 올해 8423명이다. 저출생 시대를 반영해 매년 졸업생은 크게 줄고 있는데 학업중단자는 늘어나서 올해는 졸업생의 9% 정도가 학교를 그만 둔 셈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인 일산아지매 카페에서는 ‘고등학교 자퇴 생각 중인데’같은 글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검정고시를 보기 위해 자퇴를 고민 중인데 방법이나 시기 여부를 묻는 게시글에 ‘저도 아이가 자퇴한다고 해서 큰일이라 생각하고 말렸었는데 그러다가 검정고시 시기를 놓쳤다. 경험해보니 부모의 고정관념 때문에 괜히 아이의 시간을 낭비한 것 같아요’. ‘9월초에 자퇴하면 내년 4월에 검정고시 볼 수 있고 숙려기간도 필요없다’, ‘내년 4월에 검정고시를 보려면 공고가 나오기 6개월 전에 자퇴를 해야한다’는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교사들의 입장도 부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 교사 B씨는 “보통 학업부적응으로 자퇴를 하는 경우는 1학년이 대체로 많으며 그 비율도 적은 편이다. 자퇴를 하는 이유의 대부분 학교 생활 과정에서 내신을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학생들이 정시에 몰입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며 “예체능 입시의 경우에도 자퇴가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일선 학교에서는 자퇴를 하겠다는 학생들을 만류하기 보다는 선택을 존중해주며, 특별한 행정업무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전교조 중등지회 이현규 지회장은 “우리나라 고등학교가 공교육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고등학교 자체가 현재 입시에 맞춰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입시에 유리하지 않아 자퇴를 선택하는 것은 학생들 입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다”며 “교사, 학생, 학부모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대한민국 공교육의 붕괴, 입시 만능주의의 결과물이라 생각돼 안타깝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