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여행] 밖으로 넓어진 의정부성당, 안으로 깊어진 갈곡리성당
경기북부 석조 예배당 순례③ 의정부성당 · 파주 갈곡리성당
전쟁 상처 딛고 튼튼하게 지어 올린 의정부성당
의정부 본떠 소박한 크기로 건축한 갈곡리성당
모양은 닮았지만, 저마다의 색깔로 역사 이어와
[고양신문] 예배당은 세상 속으로 들어와야 할까, 아니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까. 정답이 있을 리 없다. 각각의 종교공동체가 처한 시대와 상황의 지평에서 자신들만의 방향성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오늘 함께 찾아가 볼 두 성당은 외형적으로 아빠와 아들처럼 닮아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2년 늦게 건축된 갈곡리성당이 의정부성당을 본떠서 축소된 형태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의 뿌리는 조금 다르다. 의정부성당이 세상의 한가운데에서 이웃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커다란 공동체라면, 파주 갈곡리성당은 세상으로부터 한 발 물러서서 신앙의 올곧음을 계승한 소박한 공동체다.
서로 다른 색깔들로 조화를 이루는 가을 단풍숲을 벗삼아서, 두 성당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비교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나들이를 떠나보자.
경기북부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의정부성당은 주택과 연립들로 빼곡하게 채워진 구도심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어서 복잡한 일방통행길을 잘 찾아들어가야 한다. 나지막한 건물들이 이어진 골목을 조심조심 지나 성당 입구로 들어서면 한창 가을색을 뽐내는 나무들에 둘러싸인 넓은 마당 한가운데에 지긋한 세월의 흔적을 품은 고풍스러운 석조 예배당이 찾는 이를 반긴다.
의정부성당은 경기북부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성당이자, 전쟁의 상처를 고스란히 품은 건물이다. 원래 양주 덕정리에 있었던 성당을 해방 이후 의정부2동 지금의 자리로 이전해 한옥건물을 올렸으나, 한국전쟁 당시 이 일대가 워낙 치열한 격전지였던 까닭에 성당 건물이 소실되고 말았다. 하지만 휴전협상이 마무리될 즈음 서둘러 재건을 시작해 1953년 8월 지금의 아름다운 석조 성당을 완공했다.
수직으로 상승한 전면부 종탑은 웅장하면서도 신성한 느낌을 전하고, 단단한 인상의 측면 모습에는 시대적 두려움에 맞서 신의 보호를 염원하는 마음이 반영됐다. 화강암 벽면을 타고 오른 담쟁이들도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 정겨움을 더한다.
소중히 기록한 미군 군종신부 이름
성당 건물은 인근에 주둔하고 있던 미1군단의 도움으로 재건될 수 있었다. 군단 군종신부인 로제스키 신부가 중심이 되어 성당 건축비의 3분의 2를 미군이 충당했고, 나머지는 가톨릭 서울 교구가 힘을 모아 경기북부 첫 성당의 재건에 힘을 기울였다. 종탑 아래 입구 오른쪽에 박혀있는 명판에 이러한 역사를 소중하게 기록해놓았다.
기록을 보면 건축자재가 부족한 상황에서 공사비 절감을 위해 덕정리 돌산에서 화강암을 채석해 석재로 다듬었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옛 양주군청사 역시 같은 자재와 기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후 경기북부에 연이어 들어선 석조 예배당의 모델 역할을 한 이 성당은 한국전쟁 전후 시대상의 변화를 보여주는 건축사적 의미를 평가받아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9호로 지정됐다.
옛 성당건물 가리지 않은 새 건물
가톨릭의 역사에서도 의정부성당은 경기북부지역의 여러 성당과 공소들을 분가시켜온, 모태와 같은 성당이다. 마침내 2004년 서울대교구에서 분리되어 의정부교구가 탄생했고, 의정부성당은 주교좌성당(주교의 자리가 있는 대성당)으로 승격했다. 이에 앞서 2003년 웅장한 규모의 새 성당건물을 지었지만, 오래된 석조예배당의 경관을 가리지 않도록 부지 뒤쪽에 배치했고, 새 건물의 외양 역시 화강석으로 마감을 해 옛 성당과 멋진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70년 전에 세워진 석조 성당에 대한 교우들의 자부심과 애정을 읽을 수 있다.
의정부성당은 오랜 역사를 거쳐오며 성모유치원과 성모병원, 신우협동조합 등을 운영하며 지역사회 속 성당으로서의 역할과 공헌을 했다. ‘세상 속으로’ 들어온 종교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조용히 숨은 힐링 명소 갈곡리성당
이제 의정부성당의 아들 격인 파주 갈곡리성당을 찾아가보자. 사실 갈곡리성당은 기자에게 무척 익숙한 곳이다. 포천, 김포, 의정부 석조 성당들은 취재를 하며 처음 찾은 곳들이지만, 가까운 파주에 자리한 갈곡리성당은 우연히 존재를 알게 된 후 주변을 지날 때마다 일부러 들르곤 하는 ‘나만의 힐링 존’ 같은 장소다. 산으로 둘러싸인 고요한 마을, 앞쪽에 개울이 흐르는 너른 운동장, 돌로 길게 쌓은 계단식 축대, 배경처럼 둘러진 키 큰 전나무와 향나무, 그 위에 차분하게 자리하고 있는 아름다운 석조 성당, 성당 둘레에 차례차례 늘어선 비아돌로로사(십자가의 길, 예수의 수난을 형상화한 코스) 조형물…. 이 모든 풍경이 하나로 어우러진 분위기가 감성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박해 피해 이주한 교우촌 신앙 계승
갈곡(葛谷)은 칡이 많은 계곡이라는 뜻이다. 마을의 우리말 이름은 ‘칠울’로 불린다. 주민이 많지 않은 작은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아름다운 석조 성당의 역사를 더듬어보려면 조선시대인 180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강원도 횡성에서 박해를 피해 살아가던 천주교인들이 산속 깊이 숨어있는 골짜기인 이곳 칠울로 이주해 작은 교우촌 마을을 이뤄 살아간 것이 갈곡리성당의 출발이다. 이들은 주변에서 나는 좋은 흙으로 옹기를 구워 생계를 유지해 과거 성당 앞마당에도 옹기 가마터가 있었다고 전한다.
이들이 빚어낸 것은 질그릇만이 아니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종교공동체를 성장시켰고, 서울 약현성당이 관할하는 칠울공소가 설립됐다. 이후 의정부성당의 관할공소가 됐지만, 한국전쟁으로 공소 건물이 소실됐다. 이후 휴전 의정부성당을 모델 삼아 지금의 아름다운 석조예배당 건물을 완공했다. 성당의 건축에는 주변의 국군과 미군 해병대 군종신부의 도움이 큰 역할을 했다. 이 건물 역시 경기도 등록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갈곡리성당은 120년 가까이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공소’로 이어오다가 2018년 준 본당으로 승격하는 기쁨을 누렸다. 의정부성당이 지역사회를 향한 공헌에 충실했다면, 갈곡리성당은 신앙에 헌신한 이들을 여럿 길러냈다. 그동안 이 작은 공소-성당에서 배출한 신부와 수녀, 수도자의 숫자가 20여 명에 이르러 ‘성소의 못자리’로도 불린다.
오래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은 풍경
앞서 언급했듯 화강암 조적벽체와 수직형 종탑, 상부가 뾰족한 아치형 창틀과 입구, 마름모꼴의 보조창 등 변형된 고딕 양식의 외양은 의정부성당의 축소판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훨씬 차분하고 단아하다. 깊은 골짜기에 숨어들어 신앙의 뿌리를 이어온 이들의 담백한 심성이 석조성당과 주변 경관에 고스란히 배어든 느낌이다.
성당 주변을 여러 차례 돌아보고, 비아돌로로사 조형물도 하나하나 감상하고, 너른 운동장도 거닐어보고, 성당 안으로 조용히 들어가 푸른빛 스테인드글라스 창도 감상하고…. 작은 성당이지만 한참을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다.
전쟁의 상처를 딛고 튼튼한 석조 건물을 지은 닮은꼴 두 성당. 넓어진 의정부성당과 깊어진 갈곡리성당은 한나절에 돌아보기 좋은 멋진 한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