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애 칼럼] 작별하지 않겠습니다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문학동네)

2024-11-28     김민애 기획편집자

[고양신문] “어, 나도 머리 한쪽이 아프곤 하는데, 이것도 편두통인가요?”
편두통 환자라고 밝히면 종종 듣는 질문이다. 그 답으로 편두통에 시달리게 되면 맞닥뜨리는 증상을 일일이 나열해 준다. 그럼 대부분은 다음과 같은 반응이다.
“그렇게 심하다고요? 그 정도면 뇌에 이상 있는 거 아니에요?”

CT를 찍어서 뇌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것도 수차례다. 신경차단술, 보톡스 시술도 받아 보고, 최근에는 ‘엠갤러티’라는 주사제를 배에 맞음으로써 통증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하지만 그래도 편두통은 찾아온다.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다. 20년을 지켜본 남편도 편두통의 고통을 자세히 설명하지 못하니까. 

그래서 『작별하지 않는다』의 ‘경하’가 편두통에 시달리는 장면을 맞닥뜨렸을 때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 누가 편두통이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이 책을 읽어 보라고 하면 되겠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이것은 분명 경험에서 나오는 고통의 흔적이었다. 전조증상 때 급성기약을 먹지 못하면 결국 구토가 몰려오고, 그저 이 고통이 끝날 때까지 견디는 수밖에 없다. 나의 종착지는 언제나 응급실이었다. 치료약은 없고, 예방 차원에서 매일 급성기약을 지참한다. 

왜 하필 편두통이었을까? 나는 그것이 일종의 ‘신병’ 아니었을까 싶다. 수천 명의 남녀들과 야윈 아이들이 어깨를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는 듯한 나무들이 꿈속에 나온 것은, 그것을 기록해 내라고 작가에게 주문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절단된 인선의 손가락을 접합 수술 이후 계속 바늘로 찔러 고통을 야기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 계속해서 말한다. 이렇게 한없이 가벼운 우리의 존재를 감각하는 걸, 멈추지 말라고. 그리고 청중의 역할을 다했을 때, ‘경하’와 ‘인선’의 고통은 사그라들 것이다. 부러진 성냥개비의 불꽃이 다 타고 나면, 고통이 아니라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독서 속도는 『소년이 온다』 때와 비슷했다. 몇 장 읽고, 멈추고, 숨을 고르고, 덮어 두었다가 다시 펼치고, 한숨 쉬고, 또 잠깐 덮어 두고. 분량도 많지 않고 행간 여백이 많은데도 그 여백이 구덩이만큼 깊어서 속독을 할 수가 없었다. 오롯이 이 책에만 집중해서 단숨에 읽어낼 수가 없었다. ‘경하’의 편두통을 내가 그대로 감각하고 있었다.

절반 이상 알아들을 수 없는 제주도 방언을 입에 가만히 굴리며 낭독하면서 금정굴 학살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동시대에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족들 인터뷰를 하며 알게 된 그 믿기지 않은 이야기는 나에게도 한동안 ‘꿈속의 나무들’ 같았다. 특히 항아리에 웅크리고 앉아 큰형의 울음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었다는 다섯 살 소년의 고통은 커다란 이미지로 남았다. 박건웅 화백의 흑백 판화 같은 그림 때문이기도 하고.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한강 작가의 초판 사인본. [사진제공=김민애]

한강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눈’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 낮과 밤 사이의 존재같이 ‘사이의 존재’라고 설명했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배경이 눈으로 뒤덮인 산속인 이유다. 공중에 휘날리다가 무언가에 닿으면 사라져 버리는 이 작고 가벼운 눈은, 내가 감각하겠다고 손을 내밀면 손끝에 물방울로 맺힌다. 이 무생물도 이렇게 가벼운 손짓으로 감각할 수 있을진대, 우리는 살아 있는 것에 얼마나 무감각한지. 살아 있을 때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면, 적어도 제대로 된 애도와 작별의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이 아닐까. 

김민애 기획편집자

책을 읽는 내내 ‘인선’과 ‘새’가 상징하는 바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단순히 ‘경하’를 제주도에 내려가게 하기 위한 장치는 아닐 텐데 말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장을 덮어 표지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깨달았다. ‘아, 경하와 인선은 결국 한 사람이구나. 새장 속에 갇힌 한 쌍의 새구나.’ 제목의 의미는 비단 역사적 사건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었다. 작별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진 이 둘도 사실상 작별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독자도 아마 작별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게 될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