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로 심고 글로 잇는 미래의 희망

한강 미공개 원고 보관된 미래도서관 안나 비테 호빈 책임자 인터뷰

2024-11-28     이철규 북유럽 특파원
오슬로 다이크만 공공도서관(왼쪽)과 오페라하우스(오른쪽). 도서관 5층에 90년 후 공개될 한강 작가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원고가 보관된 미래도서관(Future Library)이 있다. [이철규 북유럽 특파원]

한강 비롯 올해의 작가 선정
100인 작품 타임캡슐에 보관
1000그루 나무로 종이책 발간
"미래에 대한 믿음 프로젝트"

[고양신문] 오는 12월 10일(현지시각) 열릴 한강 작가의 노벨상 시상식을 앞두고 그의 미공개 원고가 보관된 노르웨이 오슬로 다이크만(Deichman) 도서관을 찾았다. 2020년 지어진 다이크만 도서관은 칼 다이크만(Carl Deichman)의 이름을 딴 공공도서관으로, 고양시 인구보다 적은 70만 명의 도시 오슬로시에만 19개의 크고 작은 다이크만 도서관이 있다. 오슬로의 랜드마크 오페라하우스 옆에 자리한 다이크만 비요르비카(Deichman Gjørvika) 공공도서관은 2021년 국제도서관협회연맹(IFLA) 올해의 도서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공공도서관 5층엔 한강 작가의 미공개 원고가 보관된 미래도서관(Future Library) 타임캡슐이 있다.
도서관 5층, 미래도서관 앞 책상에는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창 밖으로 낮은 구름과 파란하늘, 웅장한 빙하를 닮은 오페라하우스를 품은 오슬로 피오르드(Fjord)가 잔잔히 물결치고 있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발표 한 달이 지난 지금도 한강 작가의 미공개 원고에 대한 관심 증가로 미래도서관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세계 각국 언론사들의 관심 속에 미래도서관도 홈페이지(futurelibrary.no)를 개편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미래도서관 백년 담당 안나 비테 호빈(Anne Beate Hovind) 책임자를 만나 미래도서관 백년 프로젝트에 대해 들어봤다. 안나 비테 호빈은 오슬로시 지원을 받아 미래도서관을 관리 운영하는 퓨쳐라이브러리트러스트(Future Library Trust) 의장을 맡고있다. 또한 도심 유휴지 작은 공동 텃밭 프로젝트 등 다양한 오슬로시 공공예술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안나 비테 호빈 미래도서관 백년 책임자(오른쪽)와 이철규 특파원.

❚미래도서관 프로젝트는 무엇이며 어떻게 진행하나.
미래세대를 생각하는 프로젝트다. 스코틀랜드의 예술가 케이티 패터슨이 기획한 작품이다. 파괴되어가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미래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려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2014년부터 오슬로시 지원을 받아 퓨쳐라이브러리트러스트가 관리한다. 2114년까지 미공개 원고 100개를 보관하는 미래도서관 타임캡슐, 종이책으로 탄생할 가문비나무 10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는 미래도서관숲을 잘 관리해 2114년에 종이책 3000권을 만들 계획이다.

❚미래도서관에 봉인된 원고가 100년 후에 종이책으로 탄생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미래도서관에 봉인된 원고는 저와 지금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살 것이다. 케이티 패터슨은 종이책을 인쇄하기 위해 나무를 키우겠다는 야심찬 생각을 했다. 이 아이디어는 나무의 나이테(Tree rings)와 문장의 챕터(Captures), 종이의 물질적 성질인 펄프(Pulp)와 종이책(Books)이 서로 연결되고, 작가의 생각이 더해져 나무가 되어 서로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마치 나무가 공기나 물처럼 작가의 말을 흡수하고, 나이테가 앞으로 수십 년에 걸쳐 종이책의 챕터(Captures)로 다시 탄생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미래도서관숲이 더 큰 숲 안에 존재해 생태계의 일부가 되고 상상 속에서 더 광범위해지기를 바란다.

미래도서관 숲 가을, 미래도서관숲. [이철규 북유럽 특파원]

❚미래도서관 숲의 나무는 왜 노르웨이 가문비나무인가.
우리는 노르마카(Nordmarka)숲의 작은 가문비 나무 묘목을 가져와 미래도서관숲에 다시 심었다. 노르웨이 숲은 울창한 가문비나무로 이뤄졌는데 이 숲에서 태어나 다시 숲으로 돌아가는 나무를 선정했다. 이곳 사람들은 가문비나무로 목재를 만들어 집을 짓고 방을 만들어 살아왔다. 우리와 함께 살아온 가문비 나무들은 백 년 후 텍스트로 인쇄돼 종이책으로 다시 탄생할 것이다. 작가들은 종이책을 믿고 있다.

퓨쳐라이브러리 홈페이지에 소개된 한강 작가 미공개 원고 소개 자료와 프로젝트를 진행한 스코틀랜드 예술가 케이티 패터슨 소개 자료. [미래도서관 홈페이지]

❚그동안 선정된 올해의 작가는? 작가 선정은 어떻게 하나.
2014년 캐나다의 마가렛 애트우드를 시작으로 영국의 데이비드 미첼 등 매년 한 명의 작가를 선정해 작가가 써온 원고를 가지고 매년 5월 미래도서관숲에서 행사를 진행한다. 다섯 번째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한강은 ‘사랑하는 아들에게 (Dear Son, My Beloved)’라는 원고를 들고 미래도서관숲을 찾았다. 그 원고가 이곳 미래도서관 유리 서랍에 보관돼 있다. 올해의 작가는 저희 단체가 선정해 발표한다. 선정기준은 상상력과 시간이다. 퓨쳐라이브러리트러스트는 모든 연령, 국적, 모든 내용, 혼합된 장르와 스타일, 모든 언어의 작가로부터 100개의 기고를 선정하며 작품 길이는 전적으로 작가가 결정한다. 모든 봉인 작품은 2114년 선집으로 출간 예정이다.
 

미래도서관숲 가문비나무, 10살이 된 어린 가문비나무 몸통엔 사춘기 아이처럼 가시가 돋아있고 빨간 리본이 달려있다. [이철규 북유럽 특파원]

100년 뒤에도 노르웨이 숲은 존재할까? 우리 다음 세대, 다음다음 세대의 삶을 어떨까? 미래세대를 생각하며 나무를 심고, 글을 남기다 보면, 100년이 짧게만 느껴진다. 다시금 믿음과 희망이라 단어를 떠올리며 오늘을 살아가게 된다. 미래도서관 타임캡슐에 저장된 원고의 행간에 묻어난 작가들의 믿음과 바람이 나무가 되어 미래 세대와 조우하길 희망하며, 다시금 노르웨이 미래도서관숲을 찾는다. 초겨울 안나(Anne)와 미래도서관 친구들과 함께하는 숲길은 따뜻하기만하다. 

오늘도 10년의 연륜을 쌓은 미래도서관숲 어린 나무들이 옹골차게 나이테를 키우고있다. 올 겨울엔 미래에 대한 믿음을 되새기며, 미래도서관숲을 자주 찾아 가문비나무 친구들을 꼭 안아주고 싶다. 다사다난했던 지난 여름, 가을 도시의 삶 이야기, 지속 가능한 숲의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금 희망을 노래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