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카펫' 위에 선 한강 "문학, 생명 파괴 모든 행위에 반대"

스웨덴, 노르웨이 일주일간 노벨주간

2024-12-12     이철규 북유럽 특파원

노벨시상식 맞춰 한강에 대한 관심 이어져
‘채식주의자’ 연극으로 제작, 유럽에서도 공연

스웨덴 공영방송, 한국 방문해 한강 영상제작
‘소년이 온다’ 배경인 광주민주화운동 소개도

[고양신문] 한반도에서 시작한 한강의 물결이 희망이 되어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12월, 노벨상의 나라 스웨덴과 노르웨이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은 스웨덴의 스톡홀름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함께 진행된다. 노벨상은 시상식 당일 하루만의 행사가 아닌 일주일 이상 진행되는 노벨 주간(Nobel Week) 내내 문화공연, 강연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노벨 주간에는 푸른빛 조명이 스톡홀름 도심 이곳 저곳을 수놓는다.

노벨상 시상식장인 스톡홀름 콘서트홀(왼쪽) 풍경. 노벨주간(Nobel Week)에는 푸른빛 조명이 스톡홀름 이곳 저곳을 수놓는다. [이철규 특파원]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관련 행사는 12월 6일 수상작가 인터뷰를 시작으로 7일 수상자 강연, 10일 노벨상 시상식과 저녁 만찬 연회로 진행됐다. 행사 중간중간 『말괄량이 삐삐』로 유명한 스웨덴의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생가와 국립도서관, 린케비도서관을 방문해 아이들과 학생들을 만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북유럽 언론 매체도 노벨상 행사 소식과 함께 한강 작가의 작품세계, 동양의 변방 한국 문학과 문화를 알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한강 작가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도했다. 특히 스웨덴 공영방송 SVT는 직접 한국을 방문해 『소년이 온다』 등 한강 작가의 작품 세계와 집필과정, 광주민주화운동 등 작품배경을 소개하며 관련자 인터뷰를 통해 작품의 탄생 배경과 한국문학을 소개하는 27분짜리 ‘빛을 향한 나의 길’ 영상을 제작해 소개했다.

한강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소개 영상 '빛을 향한 나의 길' 자료화면. [스웨덴 공영방송 SVT 화면 캡처]

현재 한강 작가의 작품 중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등 4점의 문학 작품이 스웨덴어로 번역됐으며 『채식주의자』의 경우 문학의 한계를 넘어, 2023년 스웨덴에서 연극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이 무대 예술 공연은 영국, 이탈리아 볼로냐 등 유럽 무대로 확산 중이다.

한편 노벨 주간 첫 행사인 기자회견에서 한강 작가는 “어떤 일이 있다고 해도 계속 말해지는 진실이 있을 것이고, 그런 언어의 힘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문학은 여분이 아니라 필수라고 생각한다”며 문학의 힘을 강조했다. 둘째 날 강연회에서는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진다”며 “함께 연결될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날 행사에는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참석자들과 언론인, 현지 교민, 유학생 등 한국인들이 다수 참석했으며, 강연장 외부에서는 일부 교민들이 한국 계엄령 규탄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흰색과 빨간색으로 되짚는 역사적 경험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진행된 노벨상 시상식은 한강 작가가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상 메달과 증서를 받는 것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블루카펫 위에 검정드레스를 입은 한강 작가가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한편 한강 작가가 받은 지름 약 7㎝ 노벨상 메달 앞면에는 노벨의 얼굴과 이름 글귀가 뒷면에는 한강 작가 이름이 새겨졌다.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오슬로 시청사 앞과 노벨상 메달. 노벨평화센터는 방문자들에게 센터 투어 시 노벨상 메달 샘플을 공개한다. [이철규 특파원]

시상식 직후 스톡홀름 시청사 연회장에서 진행된 만찬자리에서 한강 작가는 “문학작품을 읽고 쓰는 일은 필연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이라고 강조하며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언어는 이 지구에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언어는 우리를 서로 연결한다”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노벨상 시상식 후 저녁 만찬과 연회 행사가 진행된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 야경. [이철규 특파원]

한편 파란 카펫 위에서 진행된 이번 시상식에서 노벨위원회 심사위원인 엘렌 맛손은 “한강의 작품세계는 흰색과 붉은색을 통해 반복적으로 다루는 역사적 경험을 상징하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또한 “흰색은 한강 작가의 많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눈(雪)을 의미하고, 이는 슬픔과 죽음을 상징한다. 또한 붉은색은 우리의 삶, 다른 한편으로는 고통과 피, 칼로 깊게 베인 상처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엘렌 맛손 심사위원은 또한 “인물들은 때때로 본인이 본 것으로 인해 좌절하기도 하며 매번 마음의 평화가 무너지기도 하지만, 그들은 힘을 가지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수상식 이후 한강 작가는 12일 스웨덴 왕립극장 수상자 작품 낭독, 현지 번역가 대담을 끝으로 공식행사를 마쳤다.
노벨상 시상식이 끝난 후 북유럽 국가 언론들은 노벨상 관련 소식과 함께 대한민국의 정치적 불안정 상황을 수시로 보도하고 있다. 

평화상 기조연설에서도 한강 소개
노벨상 시상식은 10일 오후 1시(현지시각)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사에서의 평화상을 시작으로 오후 4시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문학상, 경제학상 순으로 진행됐다. 노벨 평화상은 일본의 원폭피해자 단체인 ‘니혼히단쿄’가 받았다. 그들은 끊이지 않는 전쟁상황에서 인류가 멸망하지 않도록 핵무기의 위험성과 인류의 평화를 강조했다. 한편 노벨 평화상 시상식 기조 연설에서 예르겐 바트네 프뤼드네스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문학상을 수상하는 한강 작가를 소개하기도 했다. “트라우마와 기억에 관한 그녀의 작품활동은 그녀가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계기가 됐다”라고 소개했다.

오슬로 노벨평화센터 만델라홀에서 평화상 시상식을 대형스크린을 통해 관람하고있다. 만델라홀 벽에는 “최고의 무기는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것” 이라는 만델라 대통령의 명언이 붙어있다. [이철규 특파원]

오슬로 시청사 옆 노벨평화센터 만델라홀에서는 노벨 평화상 시상식을 대형 스크린으로 실시간 방영했다. 만델라홀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만델라 대통령의 이름을 딴 연회장 겸 강연장이다. 이곳 또한 언론사와 관계자들이 몰리며 유료 입장표가 조기에 매진됐다.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을 철폐하고 민주화에 힘쓴 공로로 1993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12월 10일 노벨평화상 시상식 스크린 영상 관람 행사가 진행된 노벨평화센터(왼쪽) 입구 바닥에 만델라 대통령의 평화 관련 글귀(오른쪽)가 새겨져 있다.

노벨상 시상식을 지켜보는 내내 만델라홀 벽과 노벨평화센터 입구 바닥에 새겨진  ‘The best weapon is sit down and talk : 가장 좋은 무기는 앉아서 대화하는 것이다’라는 글귀와 한강 작가의 스웨덴 첫 기자회견내용 “어떤 일이 있다고 해도 계속 말해지는 진실이 있을 것이고, 그런 언어의 힘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의 문구가 중첩돼 기자에게 와닿았다. 아직도 전쟁과 무력이 끝나지 않고 있는 지구별에서 점점 기계화 되고있는 인류가 무기가 아니라 말과 글로, 문학의 힘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