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숙 칼럼] M16 씩스틴과 SCAR-L 돌격소총

그림책으로 본 세상 「씩스틴」 (권윤덕 지음. 평화를품은책)

2024-12-13     박미숙 『그림책은 힘이 세다』 저자

[고양신문] ‘하늘을 향했던 총구가 일제히 폭도들을 겨누었다. 나는 총알을 총열 안으로 밀어 올렸다. 그리고 세차게 화약을 터뜨렸다. 총알이 공기를 가르고 빠르게 회전해 가며 사람들 살 속을 사정없이 헤집어 놓았다. 광장이 고요하다. … 나는 처음으로 사람을 쏘았다.’   _「씩스틴」 중

있었던 일이다. 계엄군들이 시민들을 총으로 쏘아 죽인 일은. 1980년 5월 17일 자정에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은 1979년 10월 27일 선포한 비상계엄을 대한민국 전 지역으로 확대했다. ‘국가의 안정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다’고 했다. 정치활동을 금지시켰으며, 언론과 출판을 계엄군이 통제하며 파업과 태업을 금지한다고 했다. 유언비어 날조 및 유포도 금지한다고 했다. 위반자는 처단한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계엄 포고 직후 김대중 국민연합 공동의장을 포함해 다수 정치인들이 영장 없이 체포되었다. 계엄군 소속 제33사단이 국회의사당을 점거, 8월 30일까지 의원을 포함해 출입을 통제해 임시국회 개회를 불가능하게 했다. 신군부는 10월 27일 제5공화국 헌법 부칙으로 국회를 사실상 해산시켰다. 이후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해 실질적으로 행정권을 가져갔다. 문화공보부를 통해 언론인 등을 협박해 해직하게 하고 언론통폐합도 강행했다. (중앙일보 2024년 12월 11일 자 일부 인용)

광주시민들은 군부 쿠데타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치며 맨몸으로 맞섰고, 계엄군들은 그런 시민들에게 총을 쏘았다. 5·18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아카이브에 나온 시민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때 희생된 광주시민은 2천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는 다만, 운이 좋았을 뿐일지 모른다. 12월 3일이 계엄령이 선포되고 국회가 멈추지 않은 것은. 시민들이 죽지 않은 것은. ‘술 마시고 한 거 아니냐?’ 는 조롱이 있을 정도로 해프닝 같이 끝난 계엄이었지만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무엇보다 국민의 일상이 망가진 시간이었다. 그래도 운 좋게(?) 총은 발사되지 않았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림책 「씩스틴」(권윤덕 지음. 평화를품은책)은 계엄군 손에 들려 광주로 투입된 총인 ‘씩스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길게 뻗은 총열에 칼을 채운 뒤 강경하고 단호하게 폭도들을 진압하겠다는 마음에 불타올랐던 씩스틴은 끊임없이 모여드는 폭도들이 이상했다. 총알이 지급되고 장전되면서 뭔가 불안해졌지만, 총알은 발사되었다.

‘나는 처음으로 사람을 쏘았다’ 씩스틴은 사람들에게 ‘광장으로 나오지 말아라. 그러면 죽는다’고 소리쳤지만,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외치며 더 많이 쏟아져 나왔고, 씩스틴은 또다시 사람을 쏘았다. 뻘겋게 광장이 물들었다. 뭔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사이 씨앗 망울이 피어올랐고, 씩스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무장한 시민을 피해 잠깐 퇴각하는 게엄군 손에 들린 씩스틴에게 묻는다. ‘갈 거니?’ 하고. (무겁지만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림책 전문을 꼭 확인해 보시길)  

군사용어를 모르는 내가 ‘M16 씩스틴’이란 총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5·18 광주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민들에게 총을 쏘라고 발포명령을 내린 전두환 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두환 씨는 끝끝내 자신은 발포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부인했으나, 1997년 4월 17일 내란 목적 살인죄 등 9개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씨에 대해 무기징역을 확정선고한 대법원은 ‘명령 없는 발포’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하며 군 수뇌부로서 전 씨에게 발포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숱하게  ‘M16 씩스틴’이라는 총이름을 들어왔던 것이다.

박미숙 『그림책은 힘이 세다』 저자

‘SCAR-L 돌격소총’. 1980년으로부터 44년이 지난 2024년 12월 3일. 국회에 들어간 계엄군이 들었던 총이름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을 이름이다. 하지만,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어쩌면, 그날 밤 우리는 운이 좋았을 뿐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 총이름을 기억하지 않아도 된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