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자치회장에게 활동 수당을 지급하자

[높빛시론] 오건호 행신2동 주민자치회장

2024-12-17     오건호 행신2동 주민자치회장
오건호 행신2동 주민자치회장

[고양신문] 나는 고양시 행신2동에서 주민자치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년 10월, 경선을 거쳐 회장이 되었다. 당시, 출마 직전까지 가장 나를 가로막았던 장벽은 다름 아닌 시간과 돈이었다.

고양시에서 주민자치회장은 무보수 명예직이다. 언뜻 동네에서 감투 쓰고 대표자 명함 돌리는 자리로 여겨질 수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주민자치회는 ‘지방자치분권 특별법’, ‘고양시 주민자치회 조례‘에 따라 설치된 법적 조직으로 역할이 막대하고 회장에게 요구되는 업무도 상당하다.

주민자치회는 예전에 주민자치위원회로 불렸던 조직의 후신이다. 3년 전부터 고양시 44개 동 전역에서 주민자치회로 전환되면서 역할도 크게 바뀌었다. 동 자문기구에 가까웠던 주민자치위원회가 주민들과 지역사업을 벌이는 대표조직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고양시 조례에 의하면, 주민자치회는 주민총회, 마을축제, 교육행사 등 고유의 주민자치 활동을 수행한다. 또한 동 행정기능 중 주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무에 대한 협의 권한을 가지고, 고양시 행정 기능 중에서 주민자치센터 업무를 수탁할 수 있다. 이처럼 주민자치회가 조례에서 부여한 역할을 수행한다면, 지역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행신2동 주민자치회의 경우, 올해 고양시로부터 보조금 예산을 받아 5개 사업을 벌였다. 사업별 예산 규모는 300만원에서 1300만원 정도이지만, 지자체 예산을 사용하는 것이기에 세세한 지출결의서, 증빙서류 등 작성해야 할 문서가 많다. 당연히 사업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주민자치회 위원들이 사업을 준비하고, 이후 주민들이 참여하는 주민총회에서 의결한다. 이 과정에서 고양시, 동행정복지센터, 지역단체 등과 협업한다.

예를 들어, 행신2동 주민자치회의 고양시 보조사업 중에서 가장 일손이 많이 사업으로 '행신2동에 연꽃이 피었습니다'가 있다. 창릉천이 행주산성과 만나는 끝자락, 매년 유채꽃과 코스모스 축제가 열리는 하천부지에 약 1000평 연꽃밭을 조성해 주민들과 함께 연꽃 농사를 짓고, 이어 연잎 따기, 연잎밥 만들기 체험, 연씨앗 반려식물 키우기 등 나눔 활동을 벌인다. 아마 성탄절 즈음에는 연꽃밭이 썰매장으로 대변신할 것이다(네이버 ”추억의 썰매장“ 검색).

또한 주민자치회는 동마다 설치된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으로 주민강좌를 직접 주관한다. 행신2동 주민자치회는 현재 교양강좌, 취미강좌, 건강강좌 등 총 24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민자치가 지역사회에서 주민밀착 ‘마을 학원’을 운영하는 셈이다. 

이 일들을 누가 할까? 고양시 주민자치회 모두가 겪는 공통의 어려움이 있다. 바로 실무 자원이다. 이 많은 일들을 수행하려면, 기획, 회계, 총무 등 사무국 업무가 요구된다. 그런데 제도적으로 사무국에 상근 자원은 없다. 보통 주민자치회마다 회장과 사무국장(조례 명칭은 간사)이 사무실에 출근하는데, 회장은 무보수이고, 사무국장에게는 월 최대 60만원의 고양시 지원금이 주어질 뿐이다(주민자치회에 따라 사무국장에게는 자체 재원으로 몇십만원 추가 지원되는 경우 있음). 

이렇게 주민자치회는 법과 조례에서 막대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으나, 이를 수행할 실무 업무에 대한 지원은 무척 빈약하다. 주민자치회 위원 중 한 사람이 사무국장으로서 문서 정리와 회계 처리를 맡아야 하는데, 이 험난한 자리를 요청하기 미안할 정도이다. 또한 회장은 사업 기획과 조정, 수많은 서류의 결재와 회의 주재, 대외 협력 활동 등에 아무런 보수 없이 시간을 투입하고, 심지어 다양한 대내외 활동 경비를 자비로 감당한다. 이러면 지역사회에서 시간과 경제적 여력이 있는 사람만이 회장 직을 맡을 수밖에 없다. 회장도 주민자치회 일원으로서 대내외 활동에서 지출하는 각종 경비를 공적 예산에서 지원받아야 하고, 나아가 활동 시간에 대한 보상도 필요하다.

사실 해법은 명확하다. 법과 조례가 주민자치회 조직을 만들었으면 그만큼의 예산을 뒷받침해야 한다. 주민자치회의 위상과 역할에 맞는 사무국 자원 마련이 절실하다. 사무국장에게는 최소한 최저임금 수준의 경제적 보상을, 회장에게도 그 역할에 부합하는 활동 수당 지급이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