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는 기업유치 목말랐고, 데이터센터는 이를 기회로…

데이터센터는 왜 고양으로 몰렸을까

2024-12-21     이로운 기자

고용창출·세수확보 위해 적극 유치
상암 인프라활용 등 지리적 유리
우호적인 조례, 인력확보도 수월
건립규정 강화, 주민반발 커져
업체들 “이젠 우호적 도시 아냐”

중지됐던 공사가 재개된 19일 덕이 DC 부지. 공사 내용은 현재 가설공사와 부지정리공사다. [사진제공=탄현동 주민]

[고양신문] 올 한 해 데이터센터(DC) 건립을 둘러싼 주민 반발이 고양시 곳곳에서 있었다. ‘데이터센터 건립 반대’를 외치며 집회에 나선 주민들은 ‘시·주민·업체 간에 납득할 수 있는 위치 선정과 보상, 실효성 등에 관한 충분한 사전 소통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답답해 했다. 주민들의 반발이 충분히 예상되는 가운데 주민과 업체 간 갈등해소를 위한 지자체의 적극적인 역할도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고양시에서 현재 건립했거나 건립 준비 중인 데이터센터는 총 9개소로, 3개소(장항·식사·향동)는 준공완료, 1개소(오금동)는 공사 진행 중, 3개소(향동·사리현·덕이동)는 건축허가 완료, 2개소(문봉·식사동)는 건축허가 진행 중이다. 이중 장항동 데이터센터(2002년 사용승인)를 제외하곤 모두 최근 2~3년 사이에 인허가를 받은 시설이다. 시민들 입장에선 데이터센터가 ‘왜 유독 고양시로만 몰리나’라는 궁금증을 갖게 마련이다. 

고양시 내 9개소 데이터센터 인·허가 관련 현황.

민선7기 때 매력적이었던 DC
주택가 사이 수많은 데이터센터(이하 DC)가 이미 자리 잡은 서울시에 비해 고양시에 DC는 아직 주민들에게 낯설고 부정적인 인식이 크다. 주민 상당수는 DC의 필요성에 대해선 수긍하는 분위기다. 단, DC 위치가 주택가, 학교 등에 인접해 지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큰 상황.

일산소방서(장항) 옆 SK 데이터센터는 일산 생활권 안에 자리 잡은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최근 DC가 고양시에 우후죽순 들어서는 이유에 대해 해당업체들은 △기업 유치에 우호적인 지자체 △DC에 유리한 조례 △상암 DC와의 인프라 연결 △변전소 활용 가능 △고급 인력 확충 등을 들었다. 취재에 응한 한 업체는 “업체들 사이에서 과거 유리한 도시라고 판단됐다”면서도 “하지만 최근엔 선호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DC 내부는 수많은 기계와 장비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아파트와 비교해 평당 건축비가 더 높은 수준으로 건축비로만 많게는 1조원까지 예상해야 하는 사업이다. 따라서 건축에 따른 허가·준공 등 변수가 적은 도시를 선정하기 위해 업체는 ‘우호적인’ 지자체를 선택한다. 업체는 예상도시의 기존 건립된 데이터센터 허가 사례, 관련 조례, 지자체장, 정치인들 간의 소통 등을 통해 최종 결정한다.

취재에 따르면 DC가 고양시로 몰린 배경에는 민선7기 이재준 전 고양시장과 시·도의원 등의 적극적인 노력이 컸다. 일례로 현재 지어질 한 DC와 관련된 IT회사를 포함한 두 업체와 이재준 전 시장은 2022년 4월 ‘고양시 내에 추진되는 데이터센터 건립을 위한 상호 협력’에 대해 양해각서를 채택하기도 했다.

당시 ‘고양시의 경제·산업 활성화를 위한 상호 협력 양해 각서’ 목적은 시의 세수 확보와 고용 창출이다. 양해 각서 주 내용이 DC 건립이었던 것이다. 또 다른 업체에 따르면, 전 시장뿐 아니라 시·도의원들로부터 적극적인 DC 건립 제안을 받았다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세수확보와 고용창출을 위한 기업유치 방안으로 DC가 매력적이었던 셈이다.

업체 측은 이 서류에 대해 "당시 6번의 내용을 목적으로 작성된 MOU"라고 설명했다. [사진제공 = 관련 회사]

조례 또한 경기도 31개 시군 중 고양시가 가장 우호적이었다는 게 업체들의 설명이다. 타 도시 17곳은 DC 부설주차장이 200㎡당 1대 설치 기준인 데 비해 고양시만 조례상 600㎡당 1대(주차)였다. 이는 오로지 방문객과 상주직원이 적은 DC를 위한 조례 완화로 DC를 적극 유치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도시 내 DC 건축허가 선례도 한몫했다. 일산동구 장항동에 최초 DC가 준공한 지 약 20년이 지난 2021~2023년 식사동과 향동동에 차례로 DC가 들어섰다. 이어 고양시 4곳(오금·향동·덕이·사리현)도 각종 허가가 순조롭게 진행됐다. 시기적으로 올해 DC 반대 시위를 비롯해 각 지역 시위가 이어지는 상황에 비해 과거 DC들은 비교적 순탄한 절차가 진행된 셈이다. 

앞서 △데이터센터 건립을 위한 MOU △유리한 주차장 조례 △수월한 건축허가 등을 근거로 불과 몇 년 전 DC관련 업체들 사이에선 “고양시는 기업유치에 적극적이기 때문에 DC 입지로 좋은 조건을 갖춘 도시”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상암 DC 인프라 연결, 덕양 최적
고양시 내 DC들은 지자체뿐만 아니라 전기 확보와 인력 확충, 상암동과의 인프라를 고려해 고양시를 선택한 것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이미 DC가 넘치는 판교의 변전소로부터 추가 전기를 끌어올 수 없는 포화상태다. DC가 몰린 도시 어디든 비슷한 상황이다. 대용량 전기를 공급받아야 하는 DC는 지자체 동의 여부와 관련 없이 한국전력과 직접계약을 한다. 따라서 전기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각 변전소 상황에 따라 지자체가 다른 두 곳 변전소를 활용하기도 한다. 현재 건립을 준비중인 덕이·식사 DC의 경우가 고양뿐 아닌 파주변전소까지 활용하기에 이에 해당한다. 

단, 업체는 전기를 끌어오기 위한 공사 구간에 도로점용(굴착) 허가를 지자체로부터 받는다. 하지만 지자체가 ‘고양시 전기 부족’이라며 점용허가를 막을 근거가 없고 인입(끌어오기) 공사 등에 따른 법과 규정으로 허가를 결정해야 한다. 

한편 대부분 업체는 지방에 DC 건립을 회피한다. 비교적 전력 확보가 수월하며 땅이 저렴하더라도 DC 운영에 필수적인 ‘고급 인력 확충’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한 DC 관계자는 “만약 사업비에 땅값 비중이 높다면 건물을 지방에 지어 절감된 돈으로 인력 충원 예산에 투입할 수 있겠지만 실제 땅값 비중은 총사업비에서 낮은 부분(약 10~15%)”이라며 “DC 특성상 석·박사급 인력이 투입돼야 하는데 아무리 높은 급여를 준다고 해도 지방까지 가려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고양시는 변전소와 인력 충원 조건을 갖출 뿐 아니라 지리적으로 유리하다. DC는 산업 특성상 주변 DC와의 인프라가 매우 중요해 기존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특징이 강하다. 이미 DC로 밀집된 서울 상암·목동·구로 3곳을 중심으로 추가 DC들이 수도권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추세이기 때문에 상암에 가까운 최적의 후보지 중 하나가 바로 고양 덕양구다. 최근 한 동 준공에 이어 두 번째 건물까지 지으려는 향동 DC의 경우는 특히 상암동에 다양한 DC들과 인프라를 형성할 수 있고 다시 일산까지 뻗어가는 연결점이 될 수 있다.

(△사진 좌측 아파트, 우측 향동 DC.) 올해부터 가동된 향동 DC는 정면에 아파트단지와 약 200m가량 떨어져 있다. 향동 DC는 이곳 인근으로 두 번째 DC를 준비 중이다.

"이젠 선호도시 아니야"
DC 유치에 적극적이던 과거와 달리 최근 고양시 행정과 정치권은 DC에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DC로 인한 덕이동 인근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이동환 시장은 덕이 DC에 대해 직권 취소를 위한 법률 자문을 시도했다. 또한 주민 반대, 주민과의 협의 등을 이유로 업체 측에 수차례 보완조치를 요구했고 결국 시는 착공을 반려했다. 하지만 “시는 허가를 반려할 근거가 없다”는 행정심판 결과에 따라 덕이 DC 공사는 현재 다시 진행 중이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본 관련 업체들은 고양시를 더 이상 ‘우호적’인 도시로 보지 않는다.

또한 지난 9월 고덕희 고양시의원(식사·풍산·고봉)은 고양시 내 데이터센터 확산을 적극 반대하며 부설주차장 설치 기준을 기존 600㎡당 1대에서 200㎡당 1대로 다시 조례안을 발의해 고양시 데이터센터 건립 규정을 한층 강화했다. 고양시 내 예정 부지인 향동·오금·사리현·덕이·식사·문봉 6곳 주민들의 반대 집회 등을 접한 업체들도 “덕이 DC 반대 시위 이후 고양시를 회피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김영환 국회의원(고양시정·기획재정위원회) 또한 덕이 DC를 반대하며 올여름부터 집회 등에 적극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의원은 올 21일 일산서구청 앞에서 DC반대 관련 삭발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거룩한빛 광성교회에서 찍은 덕이 DC 전체 부지 사진. [사진제공=탄현동 주민]